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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40

서양화가 박명수의 19번째 작품전,

by 강화석

갤러리 라메르 1층 1전시실, 2025 2/19(수)~2/24(월)


박명수 화백의 19번째 작품전이 갤러리 라메르에서 2025년 2/19(수)부터 2/24(월)까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11월(11/5~12/2) 대학로 ‘갤러리 치유(서울대 치과병원 내)’에서의 전시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여는 개인전인데, 지난번 전시가 갤러리 여건 탓에 대형작품을 전시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채워주며 박 화백의 본격적인 작품 세계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전시작품들은 박 화백의 작품 concept나 화풍에서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작품에서 전달되는 감흥의 크기나 정서적 자극의 정도가 전에 비하여 배가되는 느낌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100호, 200호, 그 이상의 작품들과 함께 500호에 이르는 대작을 통해서 대자연의 웅장하고 깊은 정취를 호흡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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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화백은 풍경화를 정직하고도 정결한 교감으로 그리는,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솔직히 드러내는 자연주의자의 자세를 항상심(恒常心)으로 유지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평소에 추구하던 자연 대상에 대한 그의 정서적 반응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필자의 눈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보다 멀고 넓은 스탠스stance를 유지한 작품들이 특히 눈에 띈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와 같은 전시의 기획의도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가의 마음 자세와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심적 내면의 변화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즉 필자는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산천경개(山川景槪)를 정성스럽게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에 대한 동화(同化)를 반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분명 대상을 그리기 위해 투시원근법이나 재료, 채색 기법 등 모두 서양화의 방식이나 도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느낌이나 담기는 정서는 한국화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맛과 멋이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많은 부분을 담고자 하는 내적 몰입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의 작품들은 뛰어난 관찰과 표현력, 자연을 해석하는 개인의 천부적 능력 외에도 자신을 작품 속에 동화시킬 듯이 빠져드는 혼신의 노력이 느껴진다. 이처럼 박 화백의 작품은 과거 우리의 문인 선비들이 자신의 정신수양이나 이상향(理想鄕)으로서의 산천(山川)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이입하고자 하였던 그런 심경으로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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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의 작품에는 “자연을 닮고자 하는 자세”가 담겨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자연을 닮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표상된 풍경화들이다. 그의 풍경화는 비록 서양식 재료와 도구, 그리고 투시원근법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으로부터 담아낸 “산수화(山水畵)”라고 할 수 있다. 산수화는 산과 물이 있는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서 “만물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통하여 “늘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닮으며, 삶의 바른 모습을 찾고자 한 옛 문인 선비들의 삶에 대한 자세를 담으려는 그림이다. 이미 박 화백은 이러한 산수화의 정신을 터득하였을 터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자연주의는 이런 정신적 바탕을 기반으로 한 예술관이며 지향하는 사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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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자연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다. 그리고 자연주의 정신이 깊이 박힌, 자연에 대한 편애가 심한 편이라 할 만큼 순수자연주의자이다. 그는 신이 내린 그대로의 자연을 향하는 자신의 마음과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자신의 기억과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화폭에 자연대상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모방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는다. 반드시 자신이 받아들인 자연과의 교감이 전제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조차도 담기기를 원하고 있는데,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는 자연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자신의 마음과 교류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예술가라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자세를 견지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부분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기에, 그의 그림에서는 분명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이다.

박 화백의 풍경화에는 물과 산이 공존하거나, 물이나 산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물은 지혜를, 산은 인자함을 대신하면서(知者樂水, 仁者樂山),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덕목을 가르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가르친다. 즉 “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인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처럼 우리에게 수신(修身)이 필요하다면 곧 자연의 산수(山水)에서 찾으면 될 일인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변함이 없고 정직한 모습에서 자연에의 의탁(依託)이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기도 한다.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고 있고, 다가갈수록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으며,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표상인 자연은 인간의 삶의 덕목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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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신활동의 흐름을 확인하고자 끊임없이 자연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때론 거칠고 험난한 세속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를 향하기도 하고, 험한 산세를 과시하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이 주는 소리와 영감을 듣고 느끼고자 한다. 이때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즉 강하게 포효(咆哮)하며 달려드는 파도와 그 함성, 또는 잔잔한 오후 햇빛에 실려 오는 부드럽고 온화한 자연의 소리를 받아들이며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넉넉함으로 맞이하고 교감하며 그 대상을 느끼려고 한다.

「삼척 해안」에서의 파도소리는 마치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모양으로 달려들지만 차근히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그 속에 담긴 정돈(整頓)과 고요, 안정과 평화의 기운을 찾아보기도 하며, 이런 자연의 본 모습에서 결국은 조화와 질서, 나아가 소음은 소거되고 정적인 순간을 맞으며 평온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자연, 그가 그린 경관은 단지 보여 지는 대상 그대로는 아닌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 속에는 그의 머물던 자리, 시선, 호흡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이 느껴지게 되므로, 멀리 원경이든, 근경이든 그의 시선이 시작된 곳으로부터 그를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작품에 담고자 한 그의 숨결이나 온기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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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고 세심하게 자신이 포착한 대상을 담고자 한다. 한 겨울 눈에 덮인 하천과 수풀 더미를 보며, 그가 느낀 정서는 무엇이었을까? 아침 해가 뜨면서 대지는 서서히 더워지고 있지만, 추위를 체감하며 추운 느낌조차 여전한 하천의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아무래도 허전하고 싸늘한 광경에서 오는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정성들인 세밀한 붓 터치touch는 겨울의 것들로 덮어져 정지된 체 고요하고 허허로운 대지의 모습만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대지의 생명력이나 자연의 순환이 여전하며, 예정되는 새로운 기대에의 환희를 꿈꾸는 중일 수도 있다. 이렇게 박 화백은 홀로 자연에 나아가 사물을 대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서로 호흡하고자 한다. 분명 이런 과정 속에는 남모르는 그들의 대화와 교감이 있을 터, 누구도 알 수 없을 비밀스런 내용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 속에 은연중에 담겨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그의 「따뜻한 겨울」이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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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빛을 매우 중시하는 작가이다.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우주의 에너지 원천이며 자양분인 “빛”과의 조화를 통해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더욱 빛이 나기도 한다. 당연히 빛을 통하여 사물이 드러나고 색이 가시(可視)되는 것이며, 빛의 농도는 사물의 존재와 색(色)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박 화백은 대체로 한낮이나 쨍쨍한 햇빛 보다는 아침이나 오후, 석양, 구름이 낀 흐린 날의 빛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따라서 대상 자체의 실재를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하여 빛이 보태지는 효과를 기대한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런 계산을 통하여 빛의 소중함을 잘 알면서도 대상을 중심으로 한 선택을 통하여 자연 대상을 본질적으로 드러내려 하는 것일 것이다.

박 화백의 작품 속에서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아름답다. 그 사이를 비추며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의 줄기는 그 곳에 있는 만물을 빛나게 하면서 더욱 생기를 돋운다. 그리고 빛의 줄기가 들어오는 각도와 양은 자연의 여러 사물들 간의 어울림과 그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는 절묘한 순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박 화백은 때에 따라선 이런 순간을 찾거나 기다리면서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눈앞의 풍경을 재현하려고 한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심정뿐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이고 허용한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 때까지의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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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아침」은 아침 햇살에 밝아지기 시작하는 계곡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깊은 산 계곡과 물기어린 바윗돌은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처럼 Sizzle감을 표현하는 채색기법이나 세련된 재능도 주목할 만하지만, 대상에의 정확하고 섬세한 포착과 이해는 단지 그림이 구도와 형태, 채색으로 착시효과에 의한 이미지이며, 뛰어난 기술의 산물만이 아닌, 그대로 자연의 어느 장소를 실제로 재현한 듯하여 놀랍다. 서로 다른 색으로 드러난 바위와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물기와 이끼까지도 적나라하게 재현함으로서 사실주의 작가의 깊은 시선과 세밀함에의 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흐르는 계곡물과 물기를 머금은 바위, 계곡의 가을 단풍이 햇빛을 받아 빛나며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깊은 계곡에서 목격한 아침나절의 생동감에서 작가는 비현실의 어느 이상향에 와 있는 기분을 겪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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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황혼」은 늦가을의 설악의 정취를 그려내고자 하였는데, 느지막한 오후의 햇살을 받은, 그리고 늦가을이라는 계절의 시점과의 조합을 통하여 한 계절을 잘 이어온 설악의 늦가을 모습의 연대기적 순간을 잡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장엄한 설악산의 자태가 늦은 계절의 외양을 한 체 당당하고 의젓하게 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한편으론 눈물겹기도 하고, 그간의 수도 없는 스토리를 쌓고 남긴 한 세월을 모두 담아 이 순간에 이입하려는 박 화백의 내면 정서를 오버랩overlap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가을 풍광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설악의 세월과 현재의 상태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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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박명수 화백의 작품을 통해서 『최순우』 관장이 생전(生前)에 했던 말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운치의 멋과 그 속에 몸을 담고 느끼는 즐거움"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빼어난 명산이라 할 설악산의 비경을 마치 하늘을 날아야 만 바라볼 수 있는 새의 시점(조감鳥瞰)으로 그려, 설악의 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현실의 시점으로 느끼는 운치와 멋을 통해 마치 보는 이들이 그 위에서 편안히 안기는 듯한 감흥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이런 장엄한 경치를 박 화백의 인내와 관찰 덕분에 적절한 시점에서 조화된 빛의 영향으로 대상의 제대로 된 모습을 재현해 내고 있기 때문에, 인상주의자들의 개성이나 순간 포착과는 또 다른 정취를 가슴에 담아 낼 수 있게 된다. 그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고 선택하여 자신이 이해하고 판단한 태양 빛의 각도와 양을 찾아내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경관(景觀)의 본질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고려한 작가의 심미안(審美眼)을 더불어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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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오래 전 프랑스 노르망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Claude Monet』의 수련정원을 다녀왔다. 모네는 스스로 조성한 자기의 정원에서 수많은 수련을 그렸는데, “수련 정원”은 인상주의 작가 모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박 화백은 당시의 기억을 살려 자신 만의 “수련”을 그렸다. 노년에 백내장을 앓았던 모네의 시력 탓도 있었지만, 모네의 수련 정원은 나름 아름다움 그 자체였을 텐데, 모네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정원과 수련을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자신의 화풍으로 해석한 인상주의의 작품으로 만 남기게 되었다. 사실주의 작가 박 화백은 이국의 화가이지만 대 선배라 할 모네의 수련정원을 자신의 화풍으로 해석하여 그려냈다. 자연주의자가 본 수련이 피어있는 정원의 모습은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그의 섬세하고 세련된 붓 터치touch로 재현한 수련 정원의 모습은 박 화백이 애정하는 자연을 본질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네의 수련이면서, 박 화백의 수련을 어느 누가 우열을 가려 달리 보고자할 것인가! 모두 그대로 예술가의 숭고한 정성과 정신을 담았으니 그대로 아름답고 고귀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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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화백은 자연 풍경을 그리면서도, 꽃을 그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 꽃들은 아름답다 못해 고혹적(蠱惑的)이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꽃들, 그 꽃들은 주로 “양귀비”꽃이다. 태생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꽃들을 주목하여 그리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시인 안도현은 자신의 시 「꽃」 첫 연에서,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라고 노래하였다.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꽃에 대해 이런 탄생의 반전(反轉)이 있다는 것인가? 안 시인이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이렇게 노래한 것처럼, 박명수 화백 역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양귀비” 꽃을 이리 “고혹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박 화백의 내면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끄집어내어 표상하지 않으면 괴로운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 「꽃」의 마지막 연이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지나치게 연관시키려는 것이 되겠지만, 박 화백에게 “꽃” 그림은 그저 아름다운 풍경 속 대상으로가 아닌, 작가의 가슴 속에 치열하게 자라 성숙해진 삶의 열망을 담고 있는, 그래서 이리 처절하게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내어 삶의 상징으로 표상하려는 것은 아닌가? 라고 필자는 비약 아닌 비약을 해 본다. 따라서 박 화백에게는 한 무리가 되었든, 한 묶음이 되었든 꽃을 그리는 것 또한, 산천경개(山川景槪)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신의 가슴에 담아 그려내는 심정이나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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