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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41

최 향 32회 개인전, “파꽃 – 그 자유로움에 대하여”

by 강화석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 2025 3/5(수)~3/11(화)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에서 2025년 3월5일(수)부터 3월11일(화)까지 “파꽃”을 그린 작품들을 전시한 최 향 작가의 32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파꽃-그 자유로움에 대하여”를 주제로 삼아 동명(同名)의 연작들을 그리면서, “파꽃”에 주목하여 “파꽃”의 미학을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파꽃의 자유로움”에 대하여 사유하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작업이 특별하다고 여기면서도, 필자는 실제로 “파꽃”을 눈여겨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이르니, 무관심과 무지를 스스로 확인하면서 최 향 작가의 “파꽃”에 대한 통찰에 놀랐다. 더불어 이렇게도 깊이 있게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파꽃의 세계를 관찰하고 몰입하는 작가정신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한편 “파꽃의 자유”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막상 떠오른 생각이 없었기에 몹시 궁금함이 일었다. 작가는 어떻게 파꽃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었을까 하는 신선한(?) 의문과 함께, 언어적 제안(proposition)으로부터 왜 “자유로움”인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유발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체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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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향 작가가 “파꽃”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였다. 1999년 쮜리히(Zurich) Art Fair에 참여할 때부터 그렸고, 2008년 진화랑 초대전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그렸다고 하니, 그간 “파꽃”을 그린 작가들을 별로 볼 수 없었던 필자의 눈에는 매우 선구자적인 선택이 놀랍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 향 작가는 파꽃을 조형적으로, 파스텔 톤이지만 회화적 측면에서 매우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마치 그래픽(graphic)한 수사를 극대화하려는 듯이 세밀하면서 색채의 조화로운 선택과 채색의 오묘한 터치touch감을 살려내고 있다. 따라서 채색의 정교함이나 색의 배치와 조합을 내세운 회화의 멋을 살리려는 듯하다는 생각이 우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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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예술정신을 담아내려는 의도적이고 내밀한 정신적 사유가 깔려있다. 복잡하지 않게 표면에서 드러나는 미적인 관심이나 반응과 함께 그의 작품 안에는 나름의 깊은 주제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최 작가는 파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읽었거나 자유로움을 찾아내고자 하는데, 이것은 파꽃에게서 받은 영감이지만, 파꽃이 직접적으로 전했거나 작가가 파꽃으로부터 떠올리려는 ‘자유’가 주는 의미는 크고 다양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작가만의 영감이 아닌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도 나름으로 각자가 반응할 만한 주제의식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파”를 채소의 일종으로 보게 되니 “파의 꽃”을 “꽃”으로 여기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런 파의 꽃으로부터 “꽃”의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려 한 것은 작가의 특별한 안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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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에서의 절정(絶頂)을 상징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다다른 후 스스로 쇠락의 길을 떠나지만 곧 열매로 환생하게 된다. “파”의 꽃은 어떠한가?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눈물겨운 희생의 과정을 거친다. 온갖(?) 역경을 거쳐 성장한 후 꽃을 피우고 다음 생명을 위한 “씨앗”을 남기고 자신의 생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씨앗을 남겨 생을 잇게 하는 고귀한 희생인 셈이다. 파꽃의 꽃말이 “인내”인 것이 곧 희생의 뜻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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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은 파꽃에 대하여 쓴 자신의 시 「파꽃」 첫 연에서 파꽃의 본질과 상징을 어머니에 이입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하나 밀어 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하략)”


안 시인은 파의 통통한 줄기를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고생하면서 퉁퉁 부은 어머니의 다리로 은유하고 있는데, 수필가 박수현이 “꽃대 없이 통통해지는 파 잎의 끝에서 꽃이 툭툭 튀어 나온다(「파꽃」중에서)” 라고 한 것처럼 파는 꽃을 피우기까지 꽃자루가 달리는 줄기도 없이 몸 그 자체인 줄기로 버티면서 꽃을 피우기 위해 속이 텅 비어도 비어버린 자신의 줄기를 꺾이지 않으려 애를 쓰며 버틴 끝에 꽃을 피우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눈물겨운 과정을 거친 후에 핀 파꽃은 작은 나팔처럼 생긴 꽃잎이 여러 개 모여 피어나며, 꽃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또한 추운 날씨를 지나 파꽃이 피는 때는 봄이 올 무렵이므로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전령(傳令)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사명을 간직한 생명이라 할 파에 대한 존재를 새삼 알게 된다면, 그저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의 일부로만 보았던 것에 놀라움과 숙연함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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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화가는 작품 제작에 임하기 전에 심사숙고 하는 몽상, 사물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몽상을 알고 있다”고 하였고, “회화만큼 직접적으로 창조적이며, 명백하게 창조적인 예술은 없다”고도 하였는데, 최 향 작가는 “파꽃”을 통하여 단지 “파”가 아닌 우주의 “별똥별 씨앗”을 하나 밀어 올리는 위대한 생명의 잉태 현상을 읽어 내고 있으며, 이러한 아름다운 몽상을 그림으로 시각화하여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순결하고 몽환적인 파꽃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표현해 내면서, 일반적인 파를 연상했던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발견이거나 파꽃에 대한 재해석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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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작가는 파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자기 작품에서 파꽃을 그리는 기법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방식이라 하였다. “특허”로 등록까지 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이프knife를 이용하여 물감을 떠서 캔버스에 찍어내듯 그려낸다고 하였다. 작품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아도 작업 방식은 알 수 없으나 작품 속에 표현된 파꽃의 작은 꽃잎들을 모두 그런 방식으로, 즉 나이프knife로 물감을 뜨고 일일이 찍어서 표현한 그의 수완과 기법이 놀라울 뿐이며, 더불어 필자는 오묘하고 색다르게 표현된 채색과 표상된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화가는 화폭에 그림 도구로 자기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역할을 가진 이들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붓질(나이프 질)의 정교함이나 수시로 겪어내야 할 일정한 동작의 유지를 위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낸 작가의 노력에 충분히 찬사를 보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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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그 자유로움을 위하여”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동명의 연작들인 셈인데, “파꽃” 작품을 통해 “자유로움”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 지 처음에는 궁금하고 또 난감하기도 하였으나, 작가의 귀띔을 통해 작업의 의도와 배경을 읽을 수 있었다. 최 작가는 “파꽃”을 통해 자신의 삶과 정신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거쳐 오는 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세속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로움”을 갈망하게 되었던 듯하다. 즉 파꽃으로부터 교훈을 받아들이고 배운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예술가의 아름다운 각성이라 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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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상의 사물들로부터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변화를 시도하거나 스스로 덧씌운 질곡(桎梏)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순백의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꿈꾸고 희망하면서 풀지 못해 방황하던 현실에서 방법적으로 길을 스스로 변경하거나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최 향 작가는 “파꽃–그 자유로움을 위하여” 라는 주제에 매달리며 매우 행복한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파꽃을 통하여, 흔하지만 주목할 만 하지는 않았던 생명으로부터 발견한 삶의 본질이나 고결함이라는 인식에 대하여 자신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무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행위를 이렇게 계속해 나가려는 의지는 스스로 깨닫게 된 “자유”의 깊은 뜻을 자신의 과업에 대해서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선(善)하며 중요한 영향력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터득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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