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 2회 개인전 “김연희 전”, “가득 찼어도 텅 빈 듯이”
갤러리 루벤, 2025 3/12(수)~3/18(화)
2025년 3월12일(수)부터 3월18일(화)까지 갤러리 루벤(인사동)에서 열린 김연희 작가의 2번째 개인전, “김연희 전”은 그림으로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을 파노라마panorama처럼 펼쳐 보인 사생(寫生)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전시작품들에는 친숙하고 정겨운 삶의 단면들을 읽을 수 있는 일상의 현장과 이미지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 있으며, 그런 중에 자신의 생애를 의미 있게 기억하려는 바람 또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다. 김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인 「가득 찼어도 텅 빈 듯이」가 내포하는 뜻을 통하여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배경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김연희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내 삶의 자화상(自畵像) 같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들은 분명 지나쳤거나 추억이 있었던 그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서, 현재의 그 곳을 그린 그림이었을 텐데, 과거의 어느 때로부터 이어진 시간의 흐름이 담겨 있는 그 곳을 추억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면서 어느 결에 마음은 푸근해지고 가슴이 꽉 차오르는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의 작품들은 한 눈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하면서 친근한 거리의 풍경, 길 그리고 길 위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편안하고 소박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작품들에서 독자들은 새삼스럽게 가슴을 위무(慰撫)하는 즐거움이 자연스레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법하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조금 전에 지나 온 길이나 장소를 다시 보는 듯 반갑고, 그러면서 문득 그 장면을 특별한 감성으로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반전의 매력을 확인하게 한다. 필자는 이렇게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무언가 공유한 기억이라도 있는 것처럼, 언제 적인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친숙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김 작가는 위에서 언급한 책(「가득 찼어도 텅 빈 듯이」)을 통해 자기의 삶이나 마음 상태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삶에 대하여 스스로 느끼는 마음속의 기대와 꿈을 떠올리면서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려고 하였을 것이며, 자기의 삶에 문제는 없었을 지라도, 보다 순수하고 따뜻하게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곳의 여러 대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면서 자신을 내려놓거나 순화(醇化)하려고 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심정에 이르며, 그는 자신과 멀리 있지 않은 대상들을 찾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해 보거나, 새로운 마음의 작용이나 변화를 경험하고자 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필자는 일방적으로 해보게 된다. 그런 까닭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그의 작품들은 순하고 담백하다. 꾸밈을 최소화하고 수수하고 간결하며 기교 없는 자신의 마음으로 대하려는 듯, 대상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자신과 가깝고 익숙한 장소를 다시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하고 확인하려는 듯, 앞에 마주하는 장소들에 등장하는 것들을 재현하고 있다. 물론 생활 반경이나 대체적인 대상들과 무조건 일치하거나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편안하지는 않을 테지만, 작가의 눈길은 애초부터 부드럽고 친근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중이므로 분명 대상도 그리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이나 도로, 지나는 사람들이 수더분하고 까다롭지가 않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김 작가가 길을 나서며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눈에 들어온 것들을 자신과의 교감을 통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며, 그것들이 그대로 작품의 Tone & Manner가 되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듯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선한 자극을 주고 기쁨을 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때마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스케치Sketch하고 채색을 하여 그 소중한 교감의 즐거움을 담으려 한다. 그가 포착한 대상의 장면들은 이런 자극에 대한 반응을 담아내거나 기록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는 즐거움과 활기, 그리고 밝은 기운이 어렵지 않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전시장에 들어선 많은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치 들뜬 기분으로 묘한 즐거움을 느꼈을 법하다. 이것은 선(善)한 기운과 영향력이 그의 작품에 배어있는 탓이며, 이미 작가가 화구를 펼치기 전에 대상과의 즐거운 교감의 순간이 있었고 작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작가는 이런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반복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그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 전과는 다른 무엇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이며, 이전의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닌 것이기에 텅 비어있는 듯하지만, 가득 찬 것으로 느끼게 되는 행복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김연희는 이렇게 담백하고 순수하게 주어지는 세상의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느끼고 담는다. 그는 이미 마음속에 많은 것을 채워 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채움은 사소한 욕심이나 자신의 이해(利害)를 위한 것이 아닌, 이런 일상의 아름다움과 감사함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채움이, 혹 욕심 가득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기에, 그 마저도 비워 두고자하는 버림과 나눔, 또 비움을 통하여 자연에 가까이, 더 순수함에 다가가고자 하는 높은 수준의 성찰적(省察的) 인식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작가 김연희는 거리로 나선 수행자(修行者)와도 같이 거리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 아니면 비교적 많은 것들에 눈길을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이렇게 그는 수행하는 마음, 즉 마음의 찌끼나 눈을 가릴 수 있는 사소하고 선택적인 뜻을 제거하면서 혹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자연의 변화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울창한 초록의 나무들에서, 가을에는 낙엽이 되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갈색으로 변화한 주변 풍경의 모습을 통해서, 일상의 현장과 계절의 변화를 꼼꼼히 기억하고 그것들을 그림으로 남기려 한다. 또한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든 산과 나무, 과실이 달린 나무들, 우리가 기억하는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은 놓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것들은 현재의 모습이면서 과거 어느 때 흐뭇하고 즐거운,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자연의 모습이며 중의적이고 복합적 감성의 실체가 되어 준다.
특히 김 작가 그림의 특색 중 하나는 사생의 “현장감”에 있다. 현장감이란 그때 그 순간에 겪은 작가 자신의 감정을 달리 표현하는 언어적 의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경험한 작가만의 감동 또는 당시의 깊은 인상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기도 하므로, 김 작가는 이런 현장에서 경험하는 대상과 자신의 순간적인 교감을 충실히 담아내기 위하여 채색이나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익숙한 대상에서 새롭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흔하게 마주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새삼 자신을 돌아보며 그간 소홀하였거나 의례적인 자세와 태도로 대상을 대했던 무심함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써 보다 내면을 다듬고 보태는 기회로 삼게 되기도 할 것이다.
김연희 작가의 그림들은 안정적인 구도를 통해 화면이 알차게 채워져 있다. 서두르며 세밀하게 그리지는 않아도 허술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는 그만큼 진지하고 열심이다. 여백의 미를 찾기에는 그의 마음이 채워져 있고, 자신이 바라는 것들은 분명 찾을 수 있다고 믿기에 생략하지는 않으려 한다. 즉 놓치거나 빠뜨릴 것이 없이 모두 소중하며,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배려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라도 챙기고, 함께 있고, 같이 가는 모두를 위한 삶의 공간을 지향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 안에는 집과 나무, 사람과 도로, 그리고 자동차 등이 모두 공존한다. 또한 그의 그림들은 이렇게 작고 사소한, 주목할 만한 것들이 아닐 지라도 그의 눈에서 구성에 필요하고 의미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넉넉함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가득 찼어도 텅 빈 듯이” 라고 여기는 깨달음이 있는 이도 있고, 지금은 비어 있다고 여기면서도 허전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채우려 하거나, 한편 가득 차 있다고 믿으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편 누구든 “나의 삶은 아름다운가?”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데, 이런 때 “가슴이 텅 빈 듯이” 채워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허기가 느껴지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넉넉하고 행복하다고 여기면서도 때론 허전하고 덜 채워진 듯 부족하다고 느끼기라도 하여 당황스럽다면 이렇게 거리를 나설 일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하여, 그대로 대상에 반응하며 그것으로부터의 미의식이나 즐거운 자극을 느끼면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이 이리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김 작가가 작가노트에서 쓰고 있듯이 “앞으로 언제까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은 있기에..., 지금은 텅 비었어도 가득 찬 듯한 꿈으로, 좀 더 나아가선 가득차지는 않았지만, 가득 찬 듯한 자신감으로, 마지막으론 가득 찼어도 텅 빈 듯, 이를 지향하며 그림에 겸손, 충실해 보려한다.”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김 작가의 작품 속에 시각적으로 표현된 소박하고 순수한 분위기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세상을 향한 기대와 자신에의 태도는 그래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혼자가 아니어서, 어딘가에 갇혀있지 않고 스스로 숨쉬기가 자유롭고 마음은 사방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소망을 위해 김 작가는 여전히 집을 나서고 길을 떠나 어디에든 화구를 펼쳐 놓고 세상과 만나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들이 혹시라도 세련되고 정교하지 않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그 속에는 그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열어 보인 듯 작품 속에는 그의 “내밀한 자신”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는 어느 곳에 있든 자신의 넉넉하고 선한 마음들이 보여 지는 것은 오롯이 그의 마음자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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