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서양의 행복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by 강현숙

고대 서양의 행복론은 이집트 사상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편의상 여기서는 고대 그리스의 행복론을 골조로 서양의 행복론을 살펴보려 한다. 고대 그리스 행복론을 알기 위해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만 알 수 있고 스스로 책을 쓴 일이 없는 것 같이 플라톤 역시 자신의 저서에는 자신의 이야기는 없고 스승 소크라테스를 통해서만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실제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이고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사상인지는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작품에서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관련된 초기의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담은것이고 이후의 작품은 플라톤의 사상을 많이 반영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플라톤의 행복론은 그리스 고유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우주 자체가 태초에 조화와 질서를 갖추고 생겨낸 것으로 믿었다. 온갖 다양한 천체들이 조화와 공존을 이루며 운행하고 있듯이 바람직한 사회 또한 여러 다른 계층들이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각 계층끼리 맡은 기능을 잘 발휘하면서 조화와 질서를 이루며 사는 사회라고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발칸반도, 펠로폰네소스의 각 지역마다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 형태를 갖추고 각각 독립적으로 살고 있었다. 정치제도, 인구, 습관 등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며 하나의 그리스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영향을 받았던 플라톤은 행복이란 온갖 다양한 것들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몫을 누리는것,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며 사람이 살이야 할 모습이며 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올바른 상태이며 정의로운 상태라고 하였다. 또한 정의롭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같은 의미로 정의롭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행복론이다.

플라톤 <국가>441c-d : 사람이 정의롭게 되는 것과 나라가 정의롭게 되는 것은 똑같은 방식에 의해서이다. 나라가 정의롭게 되려면 그 안에 있는 세 부류(통치자, 군인, 생산자)가 저마다 제 일을 함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상식적으로 행복이란 무언가 목표로 한 일이 잘 이루어졌을 때 느낀다. 그러나 그 목표가 반드시 선(善) 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둑질을 계획하고 성공하였을 때 순간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불안감과 죄책감이 목을 조여 올 것이다. 그러면 도둑질 이전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속적이고 훼손되지 않는 즐거움을 얻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에서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적 기능을 잘 발휘하고 발달시켜서 얻는 즐거움,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요체이다. 그렇다면 이성적 기능의 습관적 발휘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생활에서 개인에게 여러 가지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의 양극단을 피하고 균형 있는 중간점을 택하는 것이다. 즉 행복하고자 한다면 중용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세상 이치에 무지한 채로 겉으로 드러나는 현실만 잘 읽는다면 현실주의자, 기회주의자가 된다. 삶의 참다운 목표와, 냉엄한 현실 조건, 타인들과의 관계를 헤아려 슬기롭게 최선의 중용점을 찾는 이성적 능력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 덕을 갖춘 자, 그 사람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아리스토 텔레스 <니코 마스 윤리학> 한 구절 :
행복은 가장 좋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즐거운 것이며, 이 세 가지는 델로스의 비명(碑銘)에 새겨진 것처럼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델로스의 비명(碑銘) :
가장 정의로운 것이 가장 고귀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며, 바라던 바를 얻는 것이 가장 즐겁기 마련이다.




고대 서양 행복론의 골조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그들이 강조했던 요점 또한 위에 나열한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를 파고 들어가 그들의 사상을 모두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행복해지기위해서 취해야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정하는데 조금의 참고가 될만한 정도만 아는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는 중용의 덕과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용과 도덕성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공자 맹자의 시기에 가장 강조했던 단어 이기도 하다. 이는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기본적인 사상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2500년 이상 지난 지금의 사회에서도 중용과 도덕성은 변함없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정답은 아니지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 것이며, 도덕적으로 스스로가 얼마만큼 성숙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만하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을 갈고닦는 수신(修身)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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