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萬戶)는 조선왕조의 무관 관직이다. 지방 군영(진영)의 장수, 즉 진(鎭)의 영장(營將)이며, 품계는 종 4품이었다. 육군은 병마만호(兵馬萬戶), 수군은 수군만호(水軍萬戶)인데, 병마만호는 평안도, 함경도에 일부 설치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만호 직책은 수군만호로 운영되었다. 만호라는 직함은 만호가 부임한 지역의 민가 수에서 비롯되었다. 즉, 1만 호(戶, 가구)를 통솔하는 직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 부임한 지역의 민가 수나 지휘 병력과는 상관이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3품 이상을 만호, 4 품부터 6품까지를 천호(千戶)라고 하였으며, 태종 때 3품 무관을 만호, 3품을 부만호(副萬戶), 5품을 천호(千戶), 6품을 부천호(副千戶)로 설정하였다. 이후 세종 때 3품과 4품을 만호, 5품과 6품을 천호로 개정하였다가 나중에는 종 4품 만호 직책만 남았다. 또 여진족과 같은 북방 이민족 부족장 등에게 이러한 만호, 천호 직책을 부여하기도 했다. 무예(武藝) 시험을 거친 자로 임명하며, 법으로 규정된 임기는 900일이다. 만호는 직속 절도사, 첨사(僉使, 첨절제사) 등과 상피 관계에 있었으며, 만호를 지내면 지방관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품계를 올려주었다.
해남의 땅끝마을 북평면 남창리에 '해월루'라는 곳이 있다. 완도대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위치하고 있어서 혹시나 완도 가는 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들러 보시라고 올려 본다. 주소는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달량진길 36 [남창리 390-3]이다. 들어가는 골목길이 좁아 승용차만 해월루 앞까지 갈 수 있다.
섬마을 완도와 땅끝마을 해남은 오랜 시간 동안 왜군의 침략이 잦았던 곳이었다. 이에 왜군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사시설을 설치하였는데.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통일신라 시대, 완도에 '청해진'이라는 시설이 있었다면 조선시대엔, 해남에 '달량진'이라는 군사시설이 있었다. 진(鎭)의 설치는 전통시대 국가 수호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앞서 소개했던 달도 약샘 이야기에서 이순신이 머물렀다는 '남창 포구'가 바로 '달량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달량진에는 수군만호가 머무르며 외부의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객사로도 역할을 하였고, 제주를 왕래하는 배가 바람을 기다리던 장소였다 하니 추측이 틀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달량진에 해월루가 건립되는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1872년『조선 후기 지방도』에 해월루가 그려져 있고,『대동지지』에 '해월루(海月樓)는 이진(梨津) 남쪽에 있다. [海月樓梨津南]'라고 하였는데, 이진은 현재의 남창을 지칭하던 옛 이름이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1821년~1850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하고, 1963년에 허물어진 것을 복구하지 못하고 폐자재의 일부를 민가에서 재활용하면서 2000년대까지 계속 방치되다가 2011년에 면단위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훼손된 건물을 철거하고 민박용 기와집으로 복원한 것이 현재의 '해월루'라는 것이다.
저녁에 물이 차면 마치 바다에 달이 떠있는 듯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해월루는 잠시 마음의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장소로 주변을 지나는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들러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