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
이전의 매출은 복구가 되었지만..
자존심이라는 녀석은 스스로 잘 나간다 생각할 때 빳빳하게 고개를 든다. 꺾이면 꺾였지 구부리지는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자존심이 어느 날 '내가 언제 그랬어?' 하며 슬그머니 구부러지는 때가 있다.
누구도 날 따라오지는 못할 거라며 내장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나를 하나둘 손님들이 외면하는 일이 생겼다. 나 아니어도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어느 순간 적지 않은 매출의 감소를 체감하면서 다행히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선 손님들을 다시 오게 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아니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는 사실이 맞을 것이다.
후회를 하면서 거래처를 바꾼 손님들에게 호의적인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그중 몇 분은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못 시켰어 주문 오면 연락할게" 하면서 그나마 여지를 갖게 하는 말씀을 했다. 그러나 몇 분은 마음이 상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분도 계셨다. "많이도 못 팔아주는데 그냥 저쪽에서 사갈게" 또는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전화하기 미안해서 안 하게 되네" 하는 식으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했다.
"죄송합니다 한 박스도 괜찮으니 필요하실 때 전화 주세요" 자존심 따위는 집에서 나올 때 안방에 꼭꼭 격리를 시켜놓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내 발길은 무겁기만 했다. -잘 나갈 때 잘할 것이지..- 마음속 깊이 반성하며 다시 내게로 오기만 하면 정말 잘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의 간절함은 이미 초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공동운송차량에 함께 실려오는 경쟁상인의 물량에 잔뜩 신경이 쓰였다. 성수기 하루 물량 10 파렛트씩 실려오던 내 물건은 절반정도 줄었고, 경쟁상인의 2~3 파렛트씩 실려오던 물량이 5~6 파렛트씩으로 늘어났다. 내 심장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된 상황이 모두 이미 잡힌 단골이 내 의도가 아니면 떠나지 않으리라는 시건방진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누가 알까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습한 날씨에 망가지는 해초류의 특성을 기억하고 최소 물량만 준비하고 거래처마다 상황을 설명하며 그날 꼭 필요한, 주문받은 물량만 팔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평상시에 비하면 거의 매출이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물량만 판 것이다. 그날 상황은 내 예상과 적중했다. 한나절도 못되어 망가지기 시작한 물미역이 오후에는 삶아도 잎이 녹아버려 줄기만 남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산지에서 작업할 때 습기를 먹은 물미역이 진열대에서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경쟁상인은 손님이 늘어나는 상황에 맞추어 오히려 물량을 더 늘렸고, 내가 오늘은 안 좋으니 하루쯤 쉬자는 말을, 물건을 다른 곳에 다 팔고 하는 말로 오해했던 사람들과 이미 그곳으로 거래를 바꾸었던 상인들이 그곳에서 사가서는 결국 못 파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 손님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손해를 본 손님들이 다음날 반품을 요청했을 때 경쟁상인은 -재고가 아닌데 무슨 소리 하냐고, 자기는 떳떳하니 반품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상인이 이렇게 나올 때 손님들은 견디지 못한다. 화가 난 일부의 손님들이 내게로 와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 놀란다는 말처럼 내 물건을 확인하고 내게 재고 아니냐고 확인을 거듭 한 다음에 내 물건을 가져갔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나는 오랜만에 완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팔아치우던 물량의 80프로도 안 되는 거였다.
상황이 바뀔만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그날 내가 완판을 하는 동안 경쟁상인의 물건이 남았었던지 다음날 그곳에서 물건을 사간 몇 분의 손님들이 또 장사를 망친 것이었다. 하다 보면 완벽하게 하자 없는 물건만 팔 수는 없다. 산지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지방으로 분산 유통되는 구조에서 하자가 날 수도 있다. 이때 판매자의 대응 태도에 따라 손님들이 계속 유지될 수도 있고 떠나버릴 수도 있다. 경쟁상인이 내가 했던 실수를 했던 것 같다. 안 와도 그만이니 반품해 줄 수 없다는 태도! 깊이 반성하며 자존심도 버린 체 손님들을 찾아다니는 내게 하늘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한 각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도 돌아온 손님들로 인해 내 이전 매출의 어느 정도는 복구가 되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내 소득이 늘어나면 누군가는 그만큼의 소득이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이 돈의 흐름이라는 현실에 슬펐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남들 잘 먹고 잘 살도록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내 배가 고프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해야 한다. 언제든지 내 밥줄을 빼앗아갈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있으며 내가 빈틈을 보일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이다. 장부 정리 하면서 겨우 되찾은 이전의 판매량을 확인하고 제로섬게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자는 다짐을 해본다
제로섬게임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을 합하면 영(0)이 되는 게임을 의미하는 말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게임에서는 승자가 득점하면 패자는 실점하게 되므로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임 참여자 모두 양보를 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