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깜순이는 재떨이의 도움을 받아 방파제 한쪽에 거처를 마련했다. 포근하지도 않았고 향기롭지도 않았지만 마음은 살아온 어느 날보다 자유롭고 편안했다. 우리보다 먼저 방파제로 온 고양이들 중에는 사람들에게 버려져 죽을 고비를 넘기다 운 좋게 재떨이를 만나 목숨을 구한 고양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 모두는 나와 깜순이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울보 깜순이는 빠르게 적응하며 방파제 암고양이들과 버려진 아기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맡았다. 나는 재떨이와 힘을 합쳐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들을 구하러 다녔다. 한 번은 거의 죽음직전에 이른 앳된 암고양이를 구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발견하고 구해놓았더니 고맙다는 말대신 죽도록 내버려 두지 왜 구했냐고 원망을 했다. 그녀는 한동안 정신을 놓고 있다가 울면서 말했다. 들어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저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어요. 그러니 더는 살아갈 의미가 없지요. 제 이름은 흰냥이예요. 시내 아파트에서 아기 때부터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지난달에 달거리가 시작되었는데요. 너무나 자랑스러웠죠. 이제 엄마가 될 나이가 된 거잖아요?"
주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흰냥이는 자랑스럽게 수다를 떨며 시집보내 달라고 했다. 진심으로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었다. 주인은 얼굴색이 변하더니 소독 내가 진동하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건물로 데려갔다. 다리에 따끔함을 느끼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기저귀가 채워져 있고 주인은 -수술이 잘됐단다- 하며 웃고 있더란다. 이제 막 달콤한 결혼을 꿈꾸던 흰냥이를 아기를 가지지 못하도록 수술을 한 거였다. 암고양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슬픔에 죽으려고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재떨이는 흰냥이를 손수 정성껏 보살폈다. 흰냥이를 운명의 짝으로 생각했다. 건강을 찾은 흰냥이도 재떨이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했다.
"우리에게 더 많은 자식들이 생길 거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더욱 소중할 수 있어, 함께 버려지는 아이들을 거두어 사랑으로 키우자"
재떨이의 청혼 멘트였다. 방파제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으니 구해서 자식으로 키우자고 한 것이다. 아기를 낳지 못하게 된 흰냥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선물이었다.
나와 깜순이를 닮은 아기들도 태어났다.
나비는 6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불행하게도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방파제로 버려졌다. 순식간에 밀물이 덮쳐, 나와 재떨이도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먼바다로 떠밀려가 버렸다. 나비는 자식들을 버린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의 밥을 얻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소심한 얼룩이도 나비를 찾으러 한번도 오지 않았다. 넋나간 고양이처럼 눈물로 지내던 나비는 깜순이가 출산할 때 엄마처럼 돌봐주고 육아도 도와주며 차츰 눈빛에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재떨이의 이름은 방파제 식구들 만이라도 잿빛대장이라고 부르자고 한 내 제안에 모두 동의하여 잿빛대장이 되었다. 내 사냥실력도 무리에서 두각을 보여 먹을 것이 항상 넉넉했다. 방파제의 식구들은 포근한 이불이 없어도 부드러운 음식이 아니어도 서로 나누고 도우며 평화로웠다.
잿빛대장은 가끔씩 시내 거울 집에 가서 시간을 보냈는데 잿빛털 고양이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할 때면 살던 집 마당에 가서 똥을 쌌다. 잿빛대장은 이제 와서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며 말렸지만 나는 빼빼가 내 똥을 치우며 두런거리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이놈의 도둑고양이는 흙이 없는 시멘트 바닥에도 똥을 싸네- 그럴 때마다 나는 빼빼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약 올렸다. -우리가 흙 있는 곳에서 똥을 싸고 감쪽같이 덮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얻어서 사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표현이었어, 야생에서 스스로 사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이제 나는 똥 싸고 덮는 귀찮은 일은 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 내 삶에 당당할 수가 있거든, 하하하-
-부족한 글,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