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은인입니다.

손님에게 배우며 하는 장사

by 강현숙

장사 초창기의 이야기이다.


비수기라고 다들 긴장을 풀고 있을 때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오징어 한 마리 고등어 한 마리 사시는 단 한 분의 손님도 내게는 한 박스 이상을 파는 듯 소중했다. 더듬거리며 생선손질을 하고 있을 때 손님은 –그거 구워 먹을 거니까 얇게 해 줘- 라든가 -조림할 거니까 어슷하게 토막 내줘- 또는 -데쳐먹을 거니까 내장만 빼줘- 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구이용이요. 조림용이요. 한마디만 하면 되는 것을 우리 가게에서는 손으로 생선의 위치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했다. 손님들은 내가 초보자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구매를 해 주셨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갈치를 병원에서 쓸 것이라고 했다. 10마리 들어있는 냉동갈치 1박스였다. 가격을 흥정하고 손질을 맡기고 다른 일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병원에서 쓸 거니까 잘 좀 해줘요- 하고 갔다. 나는 –병원에서 쓸 거니까 특별히 깨끗하게 해 달라는 말이겠지- 하고는 갈치를 자르기 시작했다. 냉동 갈치를 토막 낼 때는 기계를 이용해야 한다. 칼로는 대충 자를 수는 있겠지만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길이도 고르지 않아 손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배운 손님들이 요구하던 사이즈대로 했다. 잘라진 갈치는 살짝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했다. 거의 손질이 끝나갈 무렵 손님이 오셨다. 다됐다며 갈치를 보여드리자 손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너무 큰데-

가정에서 먹는 갈치는 보통 한 마리로 다섯 토막을 내던 갈치였다. 그 정도 토막이 되어야 먹을 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병원에서는 환자식으로 식판에 올라가는 작은 그릇 사이즈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도 내가 장사꾼이니 병원에서 쓸거라 말하면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만약에 사이즈가 안 맞아서 쓸 수 없다고 다시 해 달라하면 갈치 1박스를 새로 작업해야 했다. 그럼 이미 잘라놓은 저 갈치는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긴장하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손님은 아줌마 장사 초보자죠?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이제 석 달 됐는데 병원재료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분은 그대로는 도저히 못 쓴다면서 이미 토막 난 갈치를 다시 세 도막으로 나누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짧은 것을 기계로 하다가는 다칠 확률이 높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대는 내게 칼로 자르자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음덩어리인 갈치는 마음대로 잘라지지를 않았다. 몇 개를 시도하던 그분은 –이거 녹으면 칼로 자를 수 있죠?-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메뉴변경을 해서 다음날 쓰도록 할 테니까 살짝 녹으면 토막을 내서 병원까지 배달을 해달라고 했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손님을 보냈다. 적어준 배 달지는 40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10월의 날씨는 조금 움직이면 겉옷을 벗어야 할 정도였지만 갈치가 녹기를 기다리는 마음에는 한겨울처럼 차갑기만 했다. 어쨌든 서서히 녹아가는 갈치를 재작업 해서 배달을 마쳤다. 그 후 그분은 우리 가게에 오지 않으셨다. 녹기를 기다려 작업칼로 다시 도막 낸 갈치는 이쁘지도 않았고 사이즈가 고르지도 않았다. 아마도 주방 조리 담당자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그날 나는 병원용, 학교용, 일반 식당용마다 원하는 사이즈가 다 다르다는 걸 배웠다.




위 글의 내용은 하나의 예에 불과 하지만 같은 갈치라 해서 똑같이 손질하지는 않는다는 걸 장사하면서 알았다. 얼마 후 나는 생선장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손님이 어떤 용도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요구에 맞춘 손질법이 나왔었다. 그런 기술이 모두 손님에게서 돈을 받으면서 배운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하면서 -나 저거 못하는데, 또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하며 위축될 필요는 없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돈을 받으면서도 배울 수 있다.

손님은 은인이다! 는 마음만 잊지 않으면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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