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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Oct 01. 2023

차순이 24

교복! 양희가 꼭 입고 싶은 옷

중고등학교가 파하는 시간대는 괜스레 긴장이 된다. 아침 등굣길에는 몰려다니는 학생이 없어서 장난을 치지 않다가도 하굣길에 대여섯 명씩 일행이 타면 양희는 곧잘 당하기 일쑤였다. 서울대를 돌아오는 길 신림사거리에서 교복 입은 남녀 학생들이 우르르 탔다가 곶감 빠지듯 하나둘 내린다. 배방동에서 여섯 명의 남학생이 일어섰다. 요금을 달라고 하자 맨뒤의 학생을 가리키며 -쟤가 낼 거예요.-라고 한다. 버스가 서고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다. 요금을 낼 거라고 지목을 받았던 학생은 마지막으로 내리며 회수권 1장을 낸다. -앞에 학생 들 것은?-  하고 물으면 -재내들 나 모르는 애들인데요.- 라며 능청맞게 가버린다.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이 타면 의기양양하게 순번을 매기며 내리다가도 마지막 학생은 자기 것만 내거나 -앞에서 냈잖아요?-  하며 그냥 가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버스를 세워두고 잡으러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열다섯 살 때 좋아했던 교회오빠! 항상 교복을 입고 교회에 오던 그 오빠생각이 난다. 멀어져 가는 그들에게 차마 사나운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다. 배고픈 시절에 흙바닥에 떨어져 터져 버린 홍시를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여학생들도 만만치 않다. 양희가 서있는 문 뒤쪽으로 앉은 서너 명의 여학생들이 껌을 내민다.

"언니 피곤하죠?  하루에 18시간씩 일한다면서요?(18시간은 그 어감 때문에 껌 씹는 여학생들이 종종 써먹는 단어였다.)  힘들어서 어떡해요?  잠은 언제 자요? 얼굴도 이쁜데 안내양 하기는 너무 아까워요. 우리 언니차 단골인데... 호호"

굳이 나이를 따질 것도 없이 여학생들은 꼬박꼬박 언니라고 칭하며 갖은 말로 양희의 감성을 쥐락펴락 한다. 안 그래도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설레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데, 말까지 걸어주면 양희는 자신이 교복을 입은 듯한 동일감을 느껴 그녀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금방 마음을 열어 보인다. 그 틈을 타서 한 학생이 갑자기 가방을 뒤지며 지갑을 학교사물함에 두고 왔다고 난감한 척한다. 주변의 친구들도 어쩌냐고 서로 너만 믿고 그냥 왔다고 울상을 짓는 척하며 양희를 쳐다본다. 양희는 -다음에 줘- 라며 내려준다.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언니 고마워 다음에 꼭 줄게요.- 하지만 그 학생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양희는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너무 부럽다. 안내양 오기 전 TV에서 보았던 검정고시 우등생 안내양의 이야기는 안내양들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공부하는 안내양을 보고 안내양이 되었지만 공부는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서울시내버스 안내양의 근무체계는 이틀 일하고 하루 비번이다. 월 20 일이 기본 근무일이 되는 것이다. 새벽 5시 첫차에 배차될 경우에는 4시 30분에 기상해야 된다. 그리고 보통 6회 정도를 왕복하면 밤 10시가 지나서 순차적으로 퇴근을 한다. 막차로 끝나고 기숙사에 들어오면 새벽 1시가 된다. 그것도 무조건은 아니고 안내양 이 부족하거나 펑크 나는 경우에는 언제라도 대타근무를 할 대비를 해야 한다. 최악일 때는 일주일을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있다. 대타근무를 했을 경우 대타수당을 지급받아 월급봉투가 두툼해지니 몇 번의 대타근무는 희망사항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을 일하다 보면 걸으면서도 졸게 된다. 그러니 근무가 없어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눅눅한 기숙사 방바닥에 누워 깊은 꿈속을 여행한다. 그 꿈조차 버스에서 진상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삥땅 안 준다고 날아다니는 기사와 일하다가 센타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날 막차로 자정이 다 되어 종점으로 들어오는 길에 한 아저씨가 술에 취해 탔다. 돼지기름냄새와 파냄새 마늘냄새가 차 안에 퍼졌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해 앞쪽과 뒤쪽으로 피신하듯 몰려있었다. 아저씨는 담뱃불을 붙였다. 사람이 술을 먹으면 연체동물이 되어버리는 것을 양희는 처음 보았다. 담배연기가 유령이 되어 버스 안을 돌다가 꼬리를 물고 차창밖으로 줄지어 나갔다. 승객들은 그 진상과 양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보통때는 별거아니라고 여기다가도 그런 상황에서는 차장이 이런것도 해결안하고 뭐하냐는 압박을 주는 것이다. 에이! 에이씨! 하며 바닥에 침을  뱉자 승객들은 한 걸음씩 더 물러났다. 양희는 정수리로 수증기가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한마디 했다. 술 취한 아저씨들 잘못 건드렸다가 따귀를 맞았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못 본 체할 수도 있었지만 차장인 자기가 나서서 선량한 승객들 불편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불은 아저씨집 화덕에 피우시고 침은 안방에나 뱉으시지요? 이차는 혼자 타는 차가 아니잖아요?"

눈에 힘이 풀린 아저씨는 양희를 노려 보며 일어서려 했다. 한 대 때릴 분위기였다. 그때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아저씨는 시계불알이 제멋대로 흔들리듯 좌우로 흔들리다 도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양희도 다른 승객들도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양희에게 험담을 퍼부었다.

"이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른을 놀려? 이년! 넌 나중에 술주정뱅이에 골초를 신랑으로 만날 거다. 에이~"

그리고 종점을 한 정거장 남겨둔 정류장에서 요금도 내지 않고 내렸다. 요금을 받으려다가 실랑이가 커질 것을 염려하여 달라고도 못했다. 그날의 일은 양희에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일이 되어 간간히 꿈속에서도 양희를 기분 나쁘게 한다.     


안내양 하면서 꿈속에서조차 다닐 수 없는 학원을 실제로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건 술 취한 아저씨가 버스에 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안태우면 승차거부가 되고 태우면 모두가 불편하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꿈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TV에 나왔던 안내양이 근무했던 회사도 근무환경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공부에 간절한 한두 명의 안내양을 회사가 크게 배려해 주고 그 안내양들도 자신의 좀더 많은 수입을 포기하면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 어쩌면 회사 임원의 친척일 수도 있다. 공부하는 안내양의 인터뷰 모습은 마치 자신의 모습인 양 4년간 잊지 않았지만 아무리 근무일수를 조절해도 학원에 갈 시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양희는 안내양 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노 없는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라리 얼른 돈을 모아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반드시 대학까지 가고 말리라는 꿈만은 한시도 깨지 않았다.  

   

돈이 아까워 옷도 안 사 입고, 화장도 안 하고, 군것질도 안 하는 양희에게도 한 가지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매달 책을 사는 일이었다. 공부에 대한 욕망을 좋은 책 몇 권씩 사서 읽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양희의 사물함에는 어느새 수십 권의 책이 쌓였다.


-다음은 목요일 마지막 편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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