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속에 숨긴 진심 하나. _ 양평 책보고가게.
지난 한 주간, 단 한 줄도 읽지 못하였고,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였으나, 살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저물어 가는 삶에 의탁해 간혹 글을 내팽겨치고 싶은 조악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으나, 문장의 중력들은 이내 나를 하얀 조명 아래로 침잠시켰다. 문장들의 사이에서, 계절의 사이에서 기어이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어처구니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나는 멈출 수가 없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둔탁한 장맛비는 소실되고, 하얀 구름들의 사이 사이로, 번져갈수록 선명해지는 햇살이 참으로 반가웠다. 지루하고도 사나웠던 장마를 지나서 끝내 맞이한 깨끗한 하늘과 태양이 선사하는 창백해 보이는 금빛이 반가워 오랜만에 평상으로 밥상을 가지고 나와 앉았다. 감나무 아래에서 적요한 풍경을 벗 삼아 밥을 먹는 일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평상에서 밥을 먹는 일은 사실 조금 수고스럽기도 하였기에 누군가는 한 끼 식사에 요란스럽다 할 수도 있겠으나,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려면 특별한 기다림과 수고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본능처럼 알게 되었다. 지극한 정성이 언젠가 꽃을 피울 거라는 자명한 법칙을 자연은 알려 주었고, 종이로 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과 한 문장 한 문장 비루한 문장을 눌러쓰는 것은 이와 유사한 듯하다며, 쌀밥 한술을 뜨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의 글 쓰고자 하는 욕심이 그저 글을 뱉어내는 철없는 욕망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기를 바라며, 조명을 켜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은 깨끗하였고, 서재는 고요하였다. 7월의 그윽한 한밤에 아직 다하지 못한 말들이 많아 이렇게 나는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의식은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그릴 때에도 작가는 분명
그걸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 '황순원', '말과 삶과 자유' 중. -
지도를 살펴보다 까만 점의 '양평'에서 시선이 오랜동안 머물렀다. 그건 항간에 소란스럽고도, 폭력적인 뉴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의 삶이 닿아 너의 삶이 되길' 바라는 동네책방인 '책보고가게'가 그곳의 들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끌리듯 따라가 나는 그곳을 만나야 하였다. 일을 마치고 햇살이 차분하게 내려앉은 동대구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문득 책과 글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책처럼 살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책과 함께 살고 싶다고 결심한 어느 아름다운 봄날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들을 따라 달려 들어오는 열차는 기억을 소환해 데려오고 있었고, 사람들의 오렌지빛 살결은 꿈이 익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뭐하던 사람이었지.'
차창 밖으로 아직 떠나기 싫어 때를 쓰는 아이처럼 빗발이 사선으로 다시 흩날렸다. 그래. 나는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소중한 인연이 전해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책이라는 아주 싼값의 장엄한 우주를 알게 해주었다. 한 우주가 또 다른 우주에 닿는 경험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책이라는 실체에 의해서만 구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이 점멸하는 날까지 삶과 사랑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씨앗이 마음에 흩뿌려진 어느날이었다. 하얀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듯, 나의 삶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반고흐'의 별 하나가 되어 번져나가길 욕심 내던 그런 날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으나, 어느새 완강한 주홍빛이 나의 삶에 번지고 있었다. 우주는 그렇게 이동하며 팽창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말을 잃어갔고, 대신 그 자리를 글이 바꿔앉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뇌는 침묵을 먹고 자라나는 듯하였고, 고뇌를 통해 수많은 사념들이 태어나고, 부유하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하였다. 그 와중에 간혹 한 문장을 건져올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쾌감을 닮은 듯한 전율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자물쇠로 꼭 잠겨진 책상 서랍을 조심스레 열어 꺼내 보는, 내동댕이 쳐진 침묵들의 행간에다가 남 몰래 진심하나 숨겨두었고, 누군가가 발견해 주길 바라였다. 당신만 그런게 아니라는 수많은 위안의 단어들, 지금도 괜찮지만 앞으로는 더욱 좋아질 거라는 위로의 언어들, 나의 영혼에 닿아주길 바라는 희망의 온도들을 문장 사이 사이에 우겨넣었다. 글쓰기는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책과 문장들은 나와 타인을 구하려는 시도들이었다. 광명역에 다다를수록 노트북의 깜빡거리는 하얀 커서는 문장을 갈구하였고, 역사에서 목을 빼내어 쭈삣쭈삣 두리번 거리며 나를 기다리는 친구의 모습을 따라 열차는 까만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느라 고생많았어.'
'수도권에 사는 친구 덕분에 촌사람이 호강을 다하네.'
'강작가 덕분에 오랜만에 나도 여행하고 좋지.'
지금까지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나를 아껴주고, 믿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듯, 느리지만 지치지 않고 문장을 이을 수 있었던 건, 이 곳 글밭에서, 저 곳 일상에서, 그 곳 자연에서, 움켜진 내 손가락들을 하나 하나 펴고서, 그들이 가만히 쥐어주는 격려와 응원들 덕분이었다. 묵묵히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건재할 수 있는 건, 아직까지 종이 책을 아끼는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들의 다정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한평도 안되는 자존심도 애써 써내려간 문장들 사이에 존재하였다.
양평 강상면에 위치한 책보고가게는 빌라 건물 일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책방 하나 있을 뿐이었지만, 책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래된 건물은 우아한 풍경으로 치환되는 듯하였다. 책보고 가라고 조곤거리는 듯한 달콤한 오렌지빛 문은 나의 말라버린 입술을 촉촉하게 적셨다. 책보러 왔다며 문을 열고서 들어가자 책방지기 두분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목사님 두분과 함께 모두 네분으로 이루어진 책방지기들은 분주해 보였다. 오른편 책방지기의 공간은 단정하였고, 마실 것과 먹을 것들이 정갈하게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세상에 태어난 책들을 두손으로 받아내며, 아날로그한 독서의 세계를 나누려는 미세한 마음들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본질을 수호할 것이라고 그들을 향해 고조곤히 읊조렸다.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공간을 지나 공감서가로 향하였다. 공감(empathy). 사전적 의미로는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비슷하게 느끼는 심적현상이었다. 책과 문장의 기능은 시각적인 언어를 통해 타자와 동화시키는 것에 본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활자화된 간절한 누군가의 이야기들이 처절하게 다가와 살아내려는 의지. 그 의지조차도 가뭇없이 사라지지 않게 꼭 붙들고픈 마음을 잉태시키는 것이 책의 고귀한 특성인 듯하였다. 나의 글이 부디 단 한사람에게라도 공감되어진다면, 써야할 이유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 한 사람이 비록 포효하는 자신 뿐일지라도 말이다. 공감서가에는 확신에 찬 듯한 하얀빛 레일 조명 아래에서 그림책들부터 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새책들이 다양하게 큐레이팅 되어 있었다. 가급적이면 작은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기에 읽고 싶은 책을 기록해 두었다가 책방에 가게 되면 책을 몇권씩 가져오곤 하였다. 이번에는 '반고흐'의 '영혼의 편지'와 '융'의 '영혼의 지도'를 집어 들었다. 이성의 체계적인 결과물이 세상을 움직이기보다는 움직이려는 마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기에 인간의 심리에 대한 책에 자주 시선이 멈추곤 하였다. 10년 남짓 그림을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반고흐'에게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그의 고독과 헤게모니에 사로잡힌 시선들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죽었으나, 끝내 죽지 않는 태양의 화가가 되어 우리에게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듯하였다.
'색이나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다.' -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 -
공감서가에서 나와 공유서가로 향하였다. 책보고가게는 작은도서관 인증을 받은 책방으로서 책을 자유롭게 읽고, 독서모임과 그림책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진행되는 곳이었다. 공유서가는 누구나 함께 읽으며 나누는 맞울림 작은도서관이었다. 나만이 알고있는 이야기를 타자와 공유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은밀한 만족감을 얻곤 한다. 비밀스러운 나의 문장들을 아름답게 각색하고, 편집해서 공유하며,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는 황금같은 눈망울들을 떠올렸다. 그 눈망울들은 나에게 가없는 희망의 징표였다. 내가 바라보는 꽃망울들을 그들도 바라봐주길, 문장 속에 숨어든 마음 한조각 살펴봐주길, 그리고 틀림없이 있었던 고통을 지나 기쁨은 다시 태어난다는 걸 알아봐주길 바라며, 그들에게서 우정을 느끼곤 하였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반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신성해 보이는 이유는 욕망을 억제한 채, 소소하지만 함께 나누며, 내일을 기다리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간만이 영유할 수 있는 중력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슬픈 듯한 눈망울은 언제나 바람같이 다녀가며, 따듯한 말들을 그렇게 여기저기 흘리곤 하였다.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 -
책보고가게의 넓은 목재 테이블에서 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책모임과 마을학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행동으로 보였고, 의지로 읽혔다. 문장과 책 자체가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공유와 공감을 통해 비슷한 의식들과 삶의 흐름들이 세상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 화창한 날 하루로 계절이 온화하게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많은 날들을 또 견뎌야 할 것이다. 10년간 870여점의 그림을 남겼으나, 생전에 오직 한점만이 팔렸던 '반고흐'는 삶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또 무엇을 기대하였을까.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고독을 친구로 삼았던 그에게서 예술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였다. 어느 촌부의 말처럼 그냥 잊어버리고 무작정 걸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는 만날 수 있었을까.
'마음의 평화와 믿음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것뿐이라고.'
-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 -
내 삶의 결에 새겨진 진주같은 순간들과 인연들, 기억된 풍경들을 빈약한 활자로 복기해 나갈 때, 내 앞에 놓인 포악한 생을 활자들이 뛰어다니며, 내적 결핍을 유순하게 메꾸어줄 밑천 같은 것이 되는 듯하였다. 그 밑천으로 여기저기 줄을 던졌고, 우리 함께 견디어 나가자는 바람이 줄을 탄탄하게 내려 주었다. 인간의 태생적인 결핍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질료로 삼은 책과 문장들의 곳곳에 널려있는 파란 희망들을 보았다. 고마운 친구도 같은 방향을 함께 보았다. 작가의 위기니, 책의 소멸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긴 하지만, 그럼에도 책과 활자에 대한 온당한 믿음이 있는 건, 내가 죽을 때 편히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장대비가 멈추고 심장이 미어질 듯 햇살은 찬란하였다.
책과 세상도 반드시 따듯한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