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 산문집.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햇살이 내려앉은 오전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설 연휴라지만, 여전히 버스는 달리고, 사람들로 거리는 부산하다. 삶은 나와는 상관없이 그저 앞을 향해 흘러간다. 두 달 가까이, 네다섯 시간 잠만자던 오피스텔의 낯설기만한 공간을 둘러본다. 낯선데 무엇하나 변한 것도 없다. 괜한 서운함이 밀려와, 엄동설한의 나뭇가지처럼 마음은 툭툭 꺾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선택과 결과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고, 그 힘은 정신력에 있다는 걸, 잘 안다. 읽지 못한 책을 펼치고, 차마 담지 못한 글을 써야 한다. 마음이 지치고 무겁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있기에는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은 희소하다. 거대한 프로젝트에 휩쓸려 허우적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프로젝트가 산적하다.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야기의 첫 문장을 더듬는다. 함부로 쓰여진 작은 선택들이 결국 여기까지 나를 내몰았다. 벗어나기 위해 애도 써봤지만, 세상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선택은 가까웠고 결과는 멀기만 했기에 선택의 경중을 알지 못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선택들. 몰라도 선택은 해야 하고, 또 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은 책임을 지고, 무게를 감당하는 일이다. 솔직히 지금 나는 두렵다. 무서운 불확실성 위에서 어떻게든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슬퍼할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낭비하는 게 아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더 견디고 나아가야만 한다. 이 일이 시작된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으니까.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나의 고통이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려우니까.
수많은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게 될까. 정말 나아지기는 할까. 이런 질문들이 바늘처럼 스칠때면, 살갗이 따갑고 소름이 돋는다. 거창하고도 당위적인 목적을 삼키며 스스로를 합리화도 해보지만, 유감스럽게도 수단은 여전히 정교하지 못하다. 조금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법률안을 다듬어야 한다. 말들은 자욱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에 대한 심판은 오롯이 후대의 몫일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살아야만 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걸 변명없이 마주해야 하니까.
그게, 나의 양심이다.
덧.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시간의 감각이 사라진 것만 같습니다. 벌써 설 연휴라니. 수많은 이들의 일상에 좋든, 좋지 않든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도 저의 작은 선택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 여겨집니다. 선택과 후회, 그리고 반복. 살아가면서 이런 사이클에 소모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맛있는 거 많이 드시며 보내셔요.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