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은 앨범이 아닙니다.
2026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작년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단편선 순간들이 축하 무대를 가졌다. 1번 트랙 'Land of Hope and Glory'와 9번 트랙 '음악만세'를 선보이며 왜 그들의 앨범이 작년 한 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는지를, 사이 8곡이 없이도 가늠하게 만들었다. 무대를 보던 중 작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들의 패기 넘치는 수상소감이 떠올랐다.
2025 한국 대중 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은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가 가져갔다. 단편선 순간들의 기타리스트 박장미는 수상소감에 이런 말을 담았다.
싱글은 앨범이 아닙니다. 막 싱글 13집 이런 거 있거든요... (중략)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과 시간은 점차 변해갔다. 텔레비전의 보편화와 촬영 축음 기술의 발전은 영화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현재의 숏폼 콘텐츠들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 그렇다. 음악도 같이 변해갔다. 종교나 제사에서 비롯되어 민요나 클래식의 모습을 거쳐 현재의 대중음악이 자리 잡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대중음악의 역사는 SP(standard play)라고 불리는 음반에서 시작된다. 이 형태는 기술의 한계로 대략 3분에서 4분의 길이를 가지게 되었고 현대 대중음악의 한 트랙의 시간과도 일치한다. 대중들은 SP의 영향으로 한 곡의 적절한 시간은 3분 내지 4분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보다 트랙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그것을 평균에서 벗어난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LP와 EP의 발명으로 LP 규격의 앨범은 약 1시간 남짓한 시간의 정규 앨범으로 EP 규격의 앨범은 30분을 밑도는 정도의 미니 앨범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박장미가 언급한 앨범이라는 단위는 현대 음악 산업에서 상업 예술과 순수 예술을 나눌 수 있는 보편적인 경계로 자리 잡았다. 앨범의 유무나 정규 앨범의 질을 따져 그 음악가의 역량을 판가름하기도 하며, 앨범의 가치로 음악가의 성향을 특정하기도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마케팅과 브랜딩이 문화 산업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지금, 앨범의 가치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노래 한 곡을 내고 그것에 자본을 투자하여 뮤직 비디오나, 2차 생산이 가능한 콘텐츠, 혹은 자체적으로 상품을 제작하는 것은 주로 단일 곡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싱글에 국한되지 않고 앨범 단위로 확장되기도 하나, 국내 음반 시장의 주축인 아이돌 앨범을 예시로 들면 타이틀 곡과 수록곡의 자본 집중도가 확연하게 차이 난다. 타이틀 곡으로 음악 방송에 나가며, 특정 곡만 매체 노출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반면 수록곡은 정규 앨범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또는 타이틀의 상업적 실패에 따른 플랜 B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또한 음원을 전자기기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사람들에게 음악은 감상의 범주에서 공간에 청각적 요소를 부여하는 역할이나 분위기를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정규 앨범이 지니던 가치를 쇠퇴시키고 음반에서 트랙을 뽑아 듣는 현상을 만들었으며, 나날이 정규 앨범이 가지는 예술적 요소에 대한 주목은 줄어가게 되었다.
앨범이 지니고 있는 약 1시간의 시간 동안 청자에게 단순한 청각적 경험 이상으로 시공간의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그 러닝 타임은 표현과 사유로 이어지는 예술의 근간을 내비친다. 대중들과 창작자들이 앨범의 제작과 발매에 목매고 집착하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자신이 조각해 1시간의 시간을 청각적 자극 이상의 것, 창작자가 떠올려 낸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과 암시로 꽉 채워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이자 모험이다.
대중음악은 세대를 상징한다. 들리는 것을 너머 정신과 사회를 나타내며 발전해 왔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광복 이후 군사정권을 거치며 탄압과 저항의 문화로서 대중에게 힘을 가지게 하기도, 그들을 창작자로 들이기도 하며 이어져왔다.
단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어떠한 사운드로 표현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시작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운드로 표현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어떤 음반은 시대를 대변하고, 시대와 불화하고, 시대를 뛰어넘는다. 그 음반은 음악으로 다른 시대를 열고 다른 시대로 향하는 단단한 다리가 된다. 그 다리를 건너며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한국대중음악사는 그 같은 음반들로 알알이 채워진 기록이다.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김민기 1집, 서정민갑 -
이 음반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데뷔앨범으로 음악적으로 볼 때 이전의 음반들에서도 언제나 신중현을 따라다니는 강박관념 중 하나였던 국악과 양악의 조화가 완성된 음반이다. 신중현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바로 국악의 가락과 장단을 이용해서 서구 록 음악의 뼈대가 되는 리프를 만들었다는 데에 둘 수 있다. 대표곡인 '미인'과 '할 말도 없지만'은 이러한 신중현과 엽전들의 음악성을 대변한다.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송명하 -
70년대 초 김민기와 신중현의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대중들은 그야말로 열광하였다. 우리의 가락을 낯선 턴 테이블에 올려 노동과 억압에 시달리며, 피자국이 군데 묻은 시대에 잠시나마 도피처로서 음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대중들에게 우리 음반은 곧 빛줄기이자 언젠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시간이 흘러 90년대에 들어 많은 향유자들이 직접 음악 작업에 뛰어들며 진정 대중음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규모와 접근성이 만들어졌다. 90년대 초 신해철은 2집 <Myself>를 발매했는데, 이는 국내 최초로 미디를 사용하여 만든 앨범이다. 미디의 사용은 마이크 녹음에 비하여 음질적인 부분에서 비약적인 보완이 되었고, 악기나 녹음 장소가 없이도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이어 90년대 말, 밴드 롤러코스터는 최초의 전곡 홈 레코딩 음반을 만들어 내며 수많은 인디 음악가들에게 진입 장벽을 허물고 그들의 창작 세계를 펼쳐 음악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물꼬를 틀게 하였다. 듣는 이에게 장대한 감각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는 것을, 주체가 원하는 곳에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앨범의 생산과 소비에 큰 길을 열어주었다. 이처럼 앨범의 존재와 창작 그리고 소비는 청자뿐 아니라 생산자에게까지 이어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생산 방식이 보편화되고 안정되자, 음악가들은 내용과 청각적 요인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접근성이 낮아진 만큼 더 다양하고 깊은 시도가 생겨났고 그런 시도를 하는 층에서 많은 명반이 탄생하였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인디 붐 이후 "국내에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를 보여주며 주목받은 수많은 밴드들이 생겨났다. 앨범 생산의 보편화는 다양성을 동반한 좋은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하였고, 그 작은 존재들이 만드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의 인디 음악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앨범들이 드러났다. 앨범이 만드는 그 기나긴 동굴 같은, 작은 물방울 소리도 허투루 들을 수 없게 만드는 시공간적 체험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부딪히고 깨지며 대중문화에서 큰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있는 Land of hope and glory를 이용한 연주곡으로 시작된다. 음악만세라는 키워드를 앨범에 담기에, 음악과 함께한 인류의 기나긴 시간 동안의 모습을 위풍당당하게, 클래식 관악기와 현악기의 부재를 어마무시한 기타 사운드로 대체하여 함축해 놓은 듯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독립'과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는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엿볼 수 있다. 시공간에서 잠시 독립된, 스스로 호젓이 흐르며 희미한 자유를 조각해 내는 음악이 나아가고 있는 곳, 대중들이 온전히 그것을 향유하게 하는 어느 지점을 구축해 낸다. 웅장한 코러스와 선 굵은 기타 연주는 그 공간 속 어느 지점에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그 빠져드는 순간의 온전한 경험과 사유에 그들이 표현한 "오늘" 이 순간에 '보다'라는 조사가 붙어 앨범이 주변 어떤 것도 그저 그대로 둔 채로 청각적인 보듬음을 주며 과연 이 이상의 청각적 경험을 나머지 네 개의 감각이 깊고 축축이 물들인다. 가사 속 "눈 코 입술 혀 태양", "숨 춤 물 혀 부패한", "불 천 삶 핵 무취향"이라는 단어 열거를 통해 틈새에 피어나는 오감을 자극한다. 그들에게 음악과 앨범이란 생에 손에 꼽는 경험으로서 한 가지의 감각이 아닌 모든 감각의 신경을 곤두세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물, Alice in Deep, 아내, 거인, 불에서도 마찬가지로 오감이 합쳐질 때 우리를 타고 감싸는 경험을 전한다. 때로는 피아노 선율로, 때로는 목소리로, 기타로, 그들은 동시대 음악가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고찰, 비관과 착오를 모두 품어내며 한 트랙 한 트랙 스스로 축하하고 위로하며 나아간다. 결국 그들은 앨범의 제목이자 가치인 만세라는 환호를 내지르게 된다. 9번 트랙 '음악 만세'는 추상적인 것에 대한 경탄으로 이어진다. 빠른 템포와 진한 기타 리프는 결국 멈출 수 없었던 그들과 음악인들의 전진을 연상케 한다.
트랙 중반 삽입된 노동 운동가 김진숙의 처절한 연설은 그들이 이 땅에 자리 잡아 한껏 형형색색이 피어낸 인디음악에게 사기를 불어넣는 메시지로 작용한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이라는 이 구절은 우리네 음악이 두발을 강하게 딛고 나아가게 하는, 그리고 인류가 음악과 함께 했던 숭배나 계몽의 역사를 훑어내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고결한 모습으로 단단히 버텨낼 수 있는 오감의 근간이 된다.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음악이란 결국 만세라는 경탄으로 남는다. 수백 수천 시간의 열정과 고뇌를 몇 십 분의 유기적인 앨범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주는 울림과 상징은 절로 만세라는, 음악이라는 가치가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는다. 앨범은 우리에게 오감의 작용과 문화적 순기능을 재촉하며, 진심으로 인해 깨진 유리에 베이고 박혀도 다시 돋아나는 살이 우리에게 있다고 수백 번 고쳐 증명해 낸다. 그게 그들이 앨범을, 음악을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독립’을 선언할 때, 스스로 이유를 찾고 홀로 멀리 가고 홀로 쓸쓸해진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가 인디라 불렀던 30여 년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소명되어 울컥해진다. 울컥은 ‘음악만세’에서 또 한 번 쏟아진다.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연설 일부를 그대로 삽입했는데, 신나는 리프와 투쟁을 외치는 비명이 결합되면서 울면서도 춤을 추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 된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연약하고 예민한 액자를 감싸고 있는 독립과 투쟁이라. 맨땅에 헤딩하며 생존해 왔던 한국 인디씬에 대한 헌사로 이만한 단어가 있을까. 지금까지 단편선의 결과물을 따져봤을 때, 그는 이런 말 할 자격이 충분하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최지호 -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감상한 순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소라의 <눈썹달>이라는 앨범을 1번 트랙 'Tears'부터 12번 트랙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약 50분 간 온전히 몰입하여 앨범의 분위기에 맞춰 한 없이 가라앉는 감정의 경험은 그 이후로 음악 앨범이 줄 수 있는 끝없는 소용돌이를 만끽할 수 있게 해 줬다. 그 많은 예술이 어째서 인간에게 밀접하게 수천 년을 지내왔는지, 창작자가 표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체험과 내용의 요인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큼 눈부시고 풍부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싱글은 아직 앨범이라 부르기에 그 기나긴 길을 독백의 무대에서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창작자들은 앨범이라는 단위로 단일의 예술 형태를 완성시켜 발매한다. 싱글과 정규 앨범의 차이를 느끼고 구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은 수용자가 가치를 느껴야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다. 창작자의 의도와 도전의 시간은 작품의 러닝 타임 이상의 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은 어떠한 작품이든 만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딘가에서 음악이 주는 울림을 전하고자 양질의 소리로 한 시간여를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알고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