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겨울

겨울이면 기억을 뒤적이다 차고 외로이 있던 것을 발견합니다.

by 방강진


작년 겨울 잔뜩 곱은 손을 들고 집에서 한 시간쯤이나 떨어진 화관에 갔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영화가 자꾸 떠오르는 건지 그때의 찬 공기와 바닷속 같은 하늘이 떠오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때 제가 걷던 길엔 가장자리 조그마하게 웅크려 있는 눈만이 발자국과 까맣게 탄 타이어 흔적을 가진 채로 있었어요. 한 시름 덜었다는 안도감과 다시 아무것도 없어졌다는 공허함 덕에, 얼마 없는 눈더미였음에도 세상이 온통 새하얘 보였던 시간이었어요. 당시에 봤던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과 <러브레터>입니다. 때마침 재개봉 해준 덕에 제가 맞던 스물한 번째 겨울을 더 한가득 움켜쥘 수 있었어요. 입대가 손에 닿을 정도의 겨울이었는데, 벌써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바람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따가워졌네요. 세차게 얼굴을 스치는 빠른 공기를 맞고 있으면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상으로 돌아갈 것만 같고, 그런 생각을 하면 이제는 강제성을 띤 도피처가 없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기도 해요. 사랑에 관한 두 영화가 저에게 남긴 것들은 사랑인 듯 사랑 아닌 몇 가지 생각들이었어요. 조급해진 마음에 직접적인 해결책이 되어줄 순 없더라도, 그때의 기억과 맞물린 스물두 번째 겨울은 보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에서 남자 주인공 '조엘'과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은 서로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지워지는 기억 속에서 현재의 본인을 조각해 낸 감정들을 마주합니다. 이미 잊고 있던 수많은 일들을 다시 겪으며 서로가 당장의 감정보다 더욱 소중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기억은 지워지고, 서로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는 채로 우연히 바닷가에서 둘은 다시 만납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있던 일들의 정황을 발견하며 다시 겪을 이별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엘'은 결국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기억이 남긴 감정의 씨앗들로 "오케이"를 말하며 재회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나눕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든 현재로 돌아와 떠올려보면 그때의 두근거림과 포근한 느낌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던 파편화된 감정들은 재조립되지 못한 채, 당장의 확신 없는 말들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누군가를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기억이란 너무나 불명확한 것이라 자신이 타인에게서 얻은 것들이 무엇이고 얼마나 있는지 쉽사리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지게 된 생각과 욕심은 모두 그 무의식의 기억 속에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도, 얻은 것도 타인 때문이라면, 당장의 감정으로 그 사람을 배척하기엔 너무나 섣부른 판단일 겁니다. 기억 속 저 편에선 단 몇 시간이라도 서로가 서로의 전부를 채워 준 순간이 있을 텐데, 그런 시간을 다른 나머지의 시간 때문에 경시하고 맙니다.


행복의 반대는 고통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가 고통스러워도 어딘가에 있던 행복이 있기에 그것이 느껴지는 것일 거예요. 과학이 발달하고 AI가 인간을 대체해도, 사람의 뇌는 예상보다 더욱 세밀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여러 스위치가 작동합니다. 때론 그것이 멍청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으로 우리는 "오케이"를 선택합니다. 부실한 기억과 만지면 으스러질 것 같은 감정들로 지금의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기대가 동반하는 실망과 그로 인해 생기는 처절한 좌절은 용서라는 선택으로 넘어가집니다. 기억에 의거한 속단과 허술하게만 보이는 내 안의 가치들을 알게 되는 순간이면, 용서도 무작정 뱉는 '오케이'도 해볼 만한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있지만, 그것을 다 떠올릴 수 없음을 알기에, 기대와 실망, 다툼 그리고 용서의 순환이 계속된다 해도 나에게 무언가를 남겨준 이들을 위해 영원토록 없을 영원을 바라봐 봅니다.



러브레터

<러브레터>에서 여자주인공인 '히로코'는 남자주인공 '이츠키'가 좋아하던 동창이자, '히로코' 자신과 똑 닮은 동명이인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남자 주인공 '이츠키'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과거의 기억만을 되짚으며 실채를 알 수 없는 편지로만 서로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히로코'는 '이츠키'를 진정으로 떠나보냄과 동시에 사랑을 느끼고, 동명이인 '이츠키'는 자신이 느끼던 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일한 기억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소멸되지 않고 - 다른 기억이 물밀듯 들어오는 상황에서 - 어딘가에 앙금이 되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그저 잊혀질 것들이 아닙니다. 우연의 상황 속에서 매번 새롭게 마주하는 경험과 그것들이 남기는 감정의 소산들은 더욱이 새로운 우연을 맞을 수 있게 자신을 넓혀 주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큰 틀이 아니어도 언젠가 상실할 가치임이 분명하기에, 사람 사이의 기억과 시간은 언제까지라도 소중히 남기고 싶습니다. 아주 가깝다가도 이제는 자주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사람들,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미안함과 고마움이라는 애정 어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 또는 그런 애틋한 감정을 내게 주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제 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기에, 흘끗 떠오르는 잊혔던 혹은 잊힐 사람들에게 꼭 잘 지내냐고 묻고 싶습니다.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기에, 개인과 개인을 잇고 있던 만남의 기억이 우연 속에서 싹 터 언젠가 헤어짐을 가로질러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새하얀 설원에서 '히로코'가 외치는 "오겡끼데스까"처럼 그들과 나에게 물어봅니다.

잘 지내세요? 저는 잘 지냅니다.


글을 쓰며 한 가지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꼭 잘 지내게 해달라거나, 우연의 발생으로 인연이 닿기를 바라는 거창한 마음은 조금 접어두고, 주위의 안녕을 바라는 소중한 마음이 언제나 제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어봅니다.


작년 겨울의 기억은 기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요.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과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 것들을 돌아보았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조금 더 채워지고 있다는 감정이 들어요. 날이 갈수록 사람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져요. 더욱이 주변인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어요. 제 기억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앞으로 수많은 평행우주를 만들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게 해 주실 분들께, 지금 이 표현보다 더욱 고맙다고, 곁에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2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도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는 과장 섞인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 11월 27일 집 앞을 나왔을 때

공교롭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릴 수 있다고 메일이 왔을 때가 <러브레터>를 보러 가던 길이었어요. 잔뜩 신나서 송도의 상가를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니게 경쾌하게 지나던 기억이 있네요.

작년 겨울에는 추운 걸 잊게 할 정도로 눈이 많이 왔던 날이 있어요. 영화를 보러 가던 신난 발걸음처럼, 모든 구름이 그곳에 모인 것같이 눈이 내리던 날처럼, 풍성하고 들뜬 기분으로 기억을 채워가려 합니다.



산들산들하게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 <산들산들> 가사의 일부분입니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영원한 기억은 없어도 어딘가 남아있는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따라 누군가의 별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감희하며 안녕을 빌겠어요.


기억은 영원한 것일까요, 감정은 얼마나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요. 아마 알 수 없겠지만, 곱은 손을 비비면서 이번 겨울을 산들산들 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