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붐은 온다

청춘 속 '전자양'의 의의

by 방강진

[밴드 붐은 온다]
202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에 가장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한 슬로건이자 화두가 되는 주제이다.

최근 전자양의 보컬 유정목이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글을 읽었다. 글의 전문은 이러다.

밴드 붐이 왔다고요? 밴드는 청춘과 낭만이라고요? 그럼, 청춘과 낭만이 끝난 밴드는 무엇입니까? 음악이 생활이 되어버린 우리는 곧 정규앨범 《합주와 생활》을 공개합니다. 그전에 청춘도 낭만도 없는 우리에게 남은 것, 질주하는 것을 들려드립니다.
- 전자양 인스타그램 -


2023 멜론 뮤직 어워드 - 실리카겔 무대 캡쳐

2010년대 중후반, 한국 대중음악은 밴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K-POP과 <쇼미더머니>로 대변되던 아이돌 음악과 힙합의 초강세가 기울며, 무한도전에서 이름을 알렸던 혁오와, 인디밴드에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올린 잔나비, 그리고 데이식스, 엔플라잉 같은 아이돌 밴드의 성행, 인터넷 방송 문화와 혼재된 QWER 등. 그 무렵부터 대중가요의 중심부에는 록 음악이 슬며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0년 대에 들어 범세계적 전염병이 한 풀 꺾이며 록 페스벌이나 공연 문화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연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록 음악과 밴드들의 입지는 전염병과 미디어의 교차 지점에서 급격히 팽창했다. 2025년 현재, 밴드 음악은 국내에서 록 음악을 침몰시켜 버린 2005년 카우치 사건 이래로 역대 최대의 인기라고 봐도 가히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 록 음악이 뿌리를 내릴 때부터 줄곧 유행하는 주제는 존재했다. 들국화를 필두로 80년대 억압받던 시대상에 대한 저항정신, 90년대 대중문화의 사회활동을 이끈 신해철과 인디문화의 태동을 함께한 크라잉넛과 자우림의 사회 비판들,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 못 등이 지니던 관계나 내면에 대한 고찰들을 너머 청춘과 젊음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의 록 음악은 자리를 잡았다.


금지곡으로 지정된 들국화의 '행진', 동성동본 혼인 금지를 비판한 넥스트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미군 범죄 '윤금이 사건'을 다룬 자우림의 '동두천 Charlie',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세태 비판이 담긴 크라잉넛의 '지독한 노래'


음악이 지닐 수 있는 가치와 메시지는 무한하기에 청춘이라는 키워드는 항상 함께 했다. 과거 한국 최초의 사이키델릭으로 대표되는 산울림부터 발랄하고 펑키한 검정치마, 풋풋하고 서툰 모던록의 브로콜리 너마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소식을 줄이기 시작하고,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여 SNS 통해 젊은 층이 사회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현재는 어느 때보다 가장 청춘과 낭만에 열광하는 시대가 되었다.

#청춘 #낭만 과 같은 해시태그로 SNS 숏폼에서 자주 보이는 음악들



2025년 현재 국내 인디 음악의 청춘이라는 메시지는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에서 엿볼 수 있는 찌질함과 구질구질함이 담긴, 자연스러운 형태의 묘사에서는 멀어져 가고 있다. 낭만과 젊음이라는 아름다움을 다듬으려 심혈을 기울임에 따라, 푸르른 가치가 음악에서 전치되어 다소 획일화된 주제만을 표현하는 형태로 응고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여러 사회 요인과 문화적 변화, 음악 트렌드가 작용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 차치하고 다시 돌아와, 유정목이 말한 청춘과 낭만이 끝난 밴드들의 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유정목이 속해 있는 전자양은 2000년대 초 인디 문화의 활성화와 함께, 창작의 폭과 접근성을 폭발적으로 높인 홈레코딩을 시작한 밴드로 유명하다. 이들의 1집 《Day Is Far Too Long》은 슈게이즈와 드림팝, 사이키델릭 장르를 한국형으로 녹여낸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2001년에 나온 이 앨범은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몽롱한 분위기와 함께 추후 한국 인디록 하면 떠오르는 분위기의 지반을 다졌다. 이들은 25년 간 긴 텀이지만 간헐적으로 앨범을 발매했는데,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평단의 호평을 자아냈다. 이들의 음악은 청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젊음의 양상을 띠기도, 다소 난해한 표현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도, 특정 현상에 대해 독특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의 2001년 1집 1번 트랙 《흑백사진》과 2017년 3집 1번 트랙 《던전》의 가사를 보면 분명한 변화가 느껴진다.

신호등 조명 아래 보도블럭
급류를 건너서
난 우산을 받쳐드네
웅크리고 흑백사진 피해
이어폰을 끼고서
흐르는 강에 내 안개를 맡기고
...
나의 흑백사진 속에 그대
노랑나비를 쫓아서

< 전자양 - 흑백사진 中 >


1집의 미시적이고 세밀한 표현, 그리고 서정적인 감성들로 그들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분위기는 방황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젊음과 아날로그의 향기가 짙은 2000년대 초반의 모습을 지지직 거리는 화면처럼 들려준다.

3집의 색채는 비교적 관조적이고 어딘가 내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1집의 로우파이 한 느낌을 줄이고 전자음악의 색채를 키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상한 소문이 돌아 세상 모든 좋은 것
여기에 쌓여있고 길과 벽뿐인 곳에
횃불을 몰려오고 더 깊이 달아났지
우리가 꿈꾸는 곳에서 온 것들로부터
우리와 마주칠 때 쇠들 노래부르고
우린 너무 눈부셔 울며 팔을 휘둘렀지
분명 넌 이걸 즐겨 영혼 몸을 떠날 때
우리가 떨구는 것 단지 동전 몇 개뿐

< 전자양 - 던전 1 中 >


위 가사를 본다면 전반적인 앨범의 정서가 느껴진다. 한층 또렷해진 목소리와 명확한 전자음들은 그들의 방황과 아날로그의 시대상에서, 견고해지고 간소화된 가치관을 나타낸다. 전자양이 표현한 음악에서의 청춘은 어쩌면 지는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음악은 변하지 않는 양질의 사운드를 항상 동반했다. 홈레코딩으로 시작한 한국형 슈게이즈와 사이키델릭은 더욱 발전하여, 추후 발표한 여러 음악들로도 수많은 청각적 자극 속에서 청자를 만족시켜 내었다.

<[온스테이지] 272. 전자양 -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영상 댓글


2000년대 후반을 청춘의 풋풋한 음악들로 꽉 채웠던 브로콜리 너마저와 전자양의 드럼 류지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청춘이라는 울타리가 점차 흐려져가는 시기에 접어 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농도는 달라진다. 이는 짙어지거나 얕아진다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맛의 변화이다. 그 변화에 집중한다면 한층 더 다각화된 시선으로 밴드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과 낭만이라는 가치를 이미 넘긴 밴드에겐 또 다른 밀도의 매력이 남아있다. 그들의 음악은 때론 정형화되고 과거의 모습들을 탈피하지 못했을 때도 있지만 맹목적인 이상을 따라는 것을 초월하여 여전히 부드럽게 이어가는 선이 남아있다. 우리의 음원사이트를 조금만 더 내려보면 젊음과 낭만이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 다른 의의를 탐구하고 있는 밴드들이 있다.


일례로 가까운 한편엔 국악기와 밴드음악을 퓨전 하여 한국적인 색채를 녹이려는 시도들과 해외의 장르에 우리 정서를 담으려는 시도 등 수많은 음악적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만끽하고 사랑하는 이 문화에서 정말 그것이 주류 문화의 크기를 가진 채 남아있길 바란다면, 이제는 통속적인 키워드에서 좀 더 넓어져, 꾸준히 그 산업 속을 질주하는 밴드에게도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잠비나이의 '온다', 1인 슈게이즈 밴드 브로큰티스의 '당신의 사랑이 늘 행복하기를'


밴드붐이라는 단어는 현 상황을 곧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밴드음악의 붐 보다는 그것들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매체에 붐이 온 것이다. 수많은 밴드들이 주목받고, 이전과는 다른 규모의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음악성과 문화적 의의는 외면받은 채 스타성과 바이럴 요소에 좌우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중문화산업은 무엇보다 대중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가 진정한 밴드붐 현상을 만끽하고 즐기려면, 현시대 음악이 득달같이 모여드는 주제도 좋지만

그것들을 등지고도 다른 가치를 창조해 내는 곳으로 시선을 옮길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발라드와 후반 아이돌 후크송 열풍, 그리고 2010년대 힙합 붐이 있었을 때에도 록 음악은 항상 발전하며 우리 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게 여러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낭만 없이 남은 것들로 달리는 그들의 질주가 정말 낭만이 아닐까. 예고된 전자양의 신보 《합주와 생활》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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