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병원 일주일
입대를 앞둔 지인이 있다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다치치 말라는 것이다. 왜 그 많고 많은 단어 중, 하필 다치지 말라는 것인지 이제 조금 실감이 된다.
발목을 다쳐서 MRI를 찍어보려 했는데, 부기가 심하다고 꼼짝없이 입원해 버렸다. 경험상 외상으로 인한 부상은 차도가 가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수없이 달고 살아왔기에 내 몸의 자생력을 믿어보려 했건만 이번엔 무리였나 보다. 다친 당일 날, 아무래도 내 몸이다 보니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만 그 주에 높은 분이 부대 방문 예정이었고, 당일 밤 근무가 있던 나는 발목 보호대를 하며 조용히 고통을 지웠다.
누구도 아픈 걸 숨기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드러눕기엔 소위 말하는 짬도 덜 찼고 눈치가 많이 보이던 터라, 그 상태로 밤샘 근무에 올라갔다. 근무를 마치고 다음날, 보호대를 해제하고 발을 보았는데 머리가 찌릿했다. 오디 열매를 터뜨려 발라놓은 것 같은 복숭아 뼈와, 풍선을 불어놓은 것처럼 부어 있는 발등이 보였다. 내 수많았던 관절 부위 통증을 모두 종합해도 이런 증상은 없던지라 병원행을 결심했다.
내가 다친 것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기 싫었으며 더욱이 주변 사람들이 연민의 감정을 가지길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섭게도 잘만 돌아가는 이 조직은 내가 영락없는 톱니바퀴 하나인 것을 여실히 재확인시켜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공리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나로 인해 그들의 업무 난이도가 바뀌거나 마음이 부산스러워지는 것은 끔찍이도 싫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공포를 동반한 고통스러운 변화에 이리도 무감각할 수 있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새삼 낯설고 놀라워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이곳에 융화되어 있던 것이 분명했다. 당장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아파하며 병원에 오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었으니.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조금 무섭고 역겹게 느껴졌다.
다음날 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고도 이런 무심한 광경들이 믿기지 않았다. 항상 보호자를 동반했던 나의 두어 번의 입원 데이터들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아서, 절차를 떠올릴 틈조차 없이 홀로 호젓하게 병원 복도를 절뚝여댔다.
죽을병도 아니고, 통증이 못 견디게 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작고 어두운 방에 종일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병실은 아주 하얗고 4인실은 꽤나 넓다. 그 하얗고 넓은 곳은 붕 뜬 적막과 함께 간간히 딱-딱- 하는 파열음을 끌고오는 목발 소리가 채울 뿐이었다.
병실에서 잠에 들기 전까지도 무기력함에 파묻혔다. 얼음팩을 칭칭 감은 채 절뚝이는 다리와, 각이라곤 하나 없는 흐물흐물한 흰 환자복, 겨드랑이에 끼워져 지면을 찍어 누르는 스테인리스 목발, 그리고 병원의 LED등과 대조되어 왠지 더욱 어두워 보이는 얼굴. 그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형체인 사람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소통이란 일절 없이 흰 천장을 보고 누우니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날로그 호러 영상에 나올 법한 무언가 기괴한 보사노바 풍의 취침 음악을 듣고 있자니 더욱 묘한 감정이었다.
눈을 떴을 땐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시작되었다. '사람들 속에서 지내고 싶다, 원치 않는 에너지라도 느끼고 싶다.' 빨리 낫는 것보다 이곳이 나에게 앗아가 버린 생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생각들은 또 이렇게 이어졌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니 부대가 떠올라서 깜짝 놀랐다. '내가 있을 곳이 정녕 부대일까? 난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톱니바퀴가 되어 외로움을 느끼던 존재는, 그 이전의 자신을 떠올리기보다 다시 그 톱니가 되어 빙글 도는 작은 소망을 가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곳은 생기를 느끼기엔 너무 하얗고 삭막하다. 무언가 자라나고 움직이고 흔들리기엔 반듯해야만 하는 곳이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고,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나.
머지않아 이 모든 생각이 하루 새벽 안개처럼 걷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적응할 테지만 한 가지 간직하고픈 소망이 있다면
흰 천장에 울리는 보사노바처럼 우습게 까슬한 이곳에서, 남은 나의 1년은 색색의 따뜻한 물감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넘치도록 보내고 싶다. 모든 군인들이 톱니바퀴의 차가움이 아닌 사람의 따쓰함을 계속 떠올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