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일기 (上)

6번 훈련병에게

by 방강진


훈련소에 입소하고 생에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이 됐든 잠시 떠오르는 생각이 됐든 거르지 않고 적어냈다.


보통의 20대 남성이 겪는 2년가량의 시간. 생에 존재하는 각자의 수많은 시간이 있겠지만, 아마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시간들, 시공간의 초월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에 아주 많은 부분이 부합하는 시간. 그 초입에 들어가는 찰나. 보통의 일상을 누려왔고 누릴 수 있었음에 한 없이 감사하게 되었던 각들이다.


입대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나고 있는 지금,

그때의 글들을 다시 읽어 보면 무언가 발췌하여 덧붙이고 싶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해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네모 상자에 있는 글들은 전부 일기장에 있던 그대로의 문장을 비문이나 오탈자에 관하여 최소한의 수정만 거친 후 고스란히 가져온 것입니다.




1년 6개월의 이 짓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진짜
"1일 차" 이게 말이 안 됨. 오늘 한 걸 548일 더 해야 나간다고? 갑자기 한 사람이 사라진 세상은 어떨까.

막막함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아는 사람 또는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549일이라는 까마득한 숫자에서 단 하루를 보내는 중이란 사실이 시야를 어둡게 만들었다.

당시 마음엔 긍정이나 희망이라는 양(+)의 성질을 띈 명사는 들어올 자리도 없었으며, 실감조차 나지 않아 뿌예진 머릿속으로 하루를 겨우 보냈다.


논산은 벌써 벚꽃이 꽤나 피었다. 인천은 어떨까?
주말도 안 오는데 수료는 올지, 첫 휴가는 올지, 전역은 올지..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더욱 힘든가 보다. 언제쯤 적응될지 모르겠어서 더욱 두렵다. 5억 년 버튼이 생기면 절대로 안 누른다.

돌이켜보면 훈련소에 있는 내내 정신은 인천에 있었다. 집과 학교, 내 인간관계의 90퍼센트 이상이 존재할 그 공간. 그때 내 마음속엔 그곳이 유토피아이자 이데아였다.

그리고 까마득한 남은 날들과 단절이 주는 고통에 머리를 감쌌다. 잘만 가던 시간이 이토록 느리게 흐를 수 있음이 놀라웠다.


5억 년 버튼
누르면 100만 엔(한화 약 900만 원)이 나오는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을 누르면 누른 사람의 정신은 어딘가로 워프 해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5억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는 타일 바닥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죽거나 잠자는 등 의식을 잃는 행위가 불가능하며, 그저 살아야 한다. 하지만 끝나는 순간에 정신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시간도 몸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기억은 지워진 채로. 누른 사람 입장에서는 "어, 뭐야 벌써 끝났어? 순식간에 100만 엔을 벌었네! 럭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5억 년 동안의 기억이 사라진다.
- 나무위키 설명 -

아무래도 5억 년 버튼은 내게 무리일 것 같다.

현재 180일 정도가 지났고 이제는 일기장을 뒤져보지 않는 한 꽤나 희미한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희미해지다 영영 사라진다 해도 내가 겪은 막막함이 어딘가에도 존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어쩌면 생김새도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 곳에서 왜 이리 외로울까?
나중에 이 글을 읽어 보면 웃기려나..

나와 공통된 부분이 가장 많을 사람들 투성이인 곳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5억 년 버튼은 정말 웃기는 소리다. 훗날 내 549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시간이 얼마나 외로까를 생각해 본다면.


조선일보, (2017.04.11).
논산은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 캠퍼스엔 분홍빛 봄바람이 솔솔 불겠지?? 훈련소 연병장에서 제식 훈련을 하는데 노을이 정말 예쁘더라. 그 와중에 저 석양을 몇 번을 더 봐야 수료할지, 전역할지 생각이 들고...

내가 보내는 시간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보낼 것임을 생각했다. 이때부터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만 겨우 하루를 넘기는 것이 아닌 보고 싶은 사람들의 하루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약 2년 간 보고 느낀 새 학기의 설렘과 파릇한 분위기.

풍성한 분홍빛 벚꽃 잎이 온 공기를 덮은 미묘하고 쑥스러운 시기를 멀리서 떠올려 보았다.

주말마다 들려오는 '○○랑 □□가 사귀는 것 같다' 하는 제보는 200km 멀리 있는 사람의 입꼬리도 올리게 했다.

논산의 노을은 아주 예뻤다. 20년 넘게 왔던 하루가 꺾이는 광경이지만, 그곳에 태양은 20대 초반들의 열기만큼이나 유달리 뜨겁고 선명하게 불타고 있었다. 내 긴 하루를 활활 보내주는 노을 덕에 하루하루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군대에 오니까 평상 시면 그냥 할 연락도 고민이 된다.
아직도 밖이 날 잊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나 없이 잘 지내려나. 나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사람은 타인의 반응으로 하여금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게 맞나 보다.

'갑작스러운 연락은 받는 사람에게 어떤 생각을 들게 할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난 좋은 사람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갑작스레 연락을 건넸을 때 기분 좋게 받아주려나?'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죽을 때까지 온전히 알 수가 없다.로 기쁨뿐인 관계여도 마음 한편엔 옹졸하고 움츠러든 응어리를 지닐 수밖에 없다. 혹, 내가 원하던 모양과 다르게 나를 생각한다면 그곳으로 숨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궁금하다.




생일은 본지 오래된 사람이랑 안부 묻는 재미가 있는데..

1년 중 아무 날을 뽑아도 누군가의 생일이다. 결국 365일 중 다를 것 없는 하루임에도, 끝없는 기대와 미소를 선사하는 날인 생일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오래된 인연들에게 연락의 구실을 만들어 주는, 그리고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시간. 직진 도로 같은 일상에 한 번씩 방지턱이나 약간의 커브를 심어주는 이벤트처럼 여겼다.

22살의 생일은 훈련소의 수요일이었다. 이런 설레는 이벤트를 타인이 던져도 닿지 못하는 상황은 안 그래도 서글픈 생일을 더 쳐지게 만들었다.

주말에 받은 핸드폰으로 쌓인 연락을 보았을 때 아직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바라던 연락도, 서프라이즈 같은 연락도 모두 있는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종일 흐뭇해했다.

다만 핸드폰의 사용 시간이 한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다시 역으로 안부를 묻긴 힘들었다. 남은 생일들엔 그런 여유가 꼭 피어나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하다. 평생 나를 괴롭히던 관계의 굴레도 이 안에선 아무 의미 없다. 아직도 밖에 언제 나갈까만 생각한다. 무언가 관계의 비대칭과 소홀함이 있어도 아쉽고 조급하지 않다. 사회였으면 걱정했을 텐데, 훈련소의 정해진 시간이 한정된 관계에 대한 허무감을 만들었나 보다. 모든 관계에서 현재를 소중히 하자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5주라는 시간 덕에 후회나 기대가 전혀 없어졌다.

쓸데없는 생각도 많고 걱정도 필요 이상인 내 인간관계에 대한 마인드 맵은 훈련소에서는 끝내 펼치지 않았다. 2주 차 즈음에 한 차례 소동이 있었는데, 이해나 공감의 과정이 아닌 회피를 택했다. 이 사람들과 붙어 있어야 할 날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다는 점과 당장 사회에 대한 미련으로도 바쁜 내 머릿속이 겹쳐서 '요 며칠만 조용히 넘겨보자'라는 마음으로 훈련소를 지냈다.


어딜 가든 인간관계의 선은 연속되어 있었다. 초중고대학 어디든 친구를 사귀는 경로는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그물망처럼 타고 뻗어나가는 그림.

하지만 군대처럼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인간관계와 꼼짝없이 붙어있어야 하는, 마치 점이 선에 부딪히는 듯한 그림은 평생에 한 번 겪기도 힘들 것이다.

평생을 강박과 기우로 채운 인간관계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림을 포용할 수 없었다. 많은 고통과 함께 그간 조금씩 정립해 놓은 나의 기준들을, 억지로 어겨가며 스스로 합리화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기에, 점은 선에게로부터 부딪히지도 멀어지지도 않기를 택했다. 단 하나 모질어지지만 말자는 마음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런 끝이 분명한 상황과 나의 노력이 충돌할 때마다 항상 떠올려 보는 영화이다. 세상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다정함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내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후회 없을 것이라 자부한다. 가뜩이나 힘들었던 내 훈련소의 마음에 턱 하고 깊은 곳에 걸려 있을 뻔한 생각을 철저히 도려냈으니까 말이다.

가끔 나보다 늦게 군대를 가는 친구들이 이것저것 물어본다. 나도 아직 복무 중인 흔히 말하는 짬찌인지라, 어떤 행동이 좋은 것인지는 명확히 말하지 못해고 있다.

다만,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상처받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기대를 버리라는 말은 꼭 하곤 한다.

나도 아직 잘은 안 된다. 사람을 만나면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기제가 자동으로 발동되나 보다.

내 태도가 모질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사람들과 멀어지려 했던 자신이 한심하다.
사람들과 멀어지려는 과분한 생각은 적어도 나를 가까이 생각한다는 걸 알아서 했던 생각인가 보다.

가끔 옹졸하고 움츠러든 응어리 밑으로 숨어 있을 때면, 극단적인 생각으로 사람들과 멀어지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당연히 그 마음으로부터 어떤 모진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조차 과분한 상태여서 나올 수 있음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군대에서의 인연은 나와 잘 맞기 어렵다. 서로의 장점도 단점도 전혀 모르고 만난 것이까. 억지로 같은 방에 밀어 넣어 붙어있게 한다면 열에 아홉은 실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과 결국 끝이 정해진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모질어지지 않으려 다듬는다면 그게 최선의 다정함이 아닐까.


축하는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더라, 연락을 건넸을 때 몇 차례의 핑퐁과 선물에 대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22살의 생일이 이렇게 지난다. 누구나 경험할 하루임에도 생각보다 일찍 대비도 못 하고, 겪었다는 생각조차 못 들게끔 바람처럼 지났다. 내년 생일도 군대일 텐데 어쩌지.

생일 축하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할 것 같더라. 축하의 의사가 도착하면 어떤 축하든 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어 번 성의를 보이며 대화를 이어가 본다. 사실 축하하고픈 마음뿐이었다면, 그 두어 번 이상은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메시지

매주 수요일마다 친한 동기들이 있는 카톡방에 예약메시지를 걸어놓았다. 내가 밖에 없어도 예약된 메시지를 믿고 있으면 내 분신이 바깥에서 하루 살아주는 느낌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2024.07.10 군산
...
대학교에 온 후로 해가 뜨고 지는 걸 야외에서 몽땅 볼 경우가 없었는데, 요즘은 내 등 뒤에 해가 언제 눈앞으로 떨어지는가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너희는 일어나서 강의 듣고 술 먹으면 새로운 해가 훅 뜨고 있겠지?
...

언젠가 보냈던 예약 메시지의 내용이다. 읽는 사람들의 일상을 고려하여 시간대도 수업이 끝날 즈음으로 맞추어 보냈다. 월요일 화요일은 그다음 주의 메시지를 적으며, 목요일 금요일은 금주 메시지에 대한 반응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무작정 소통을 시도해도 어찌어찌 반응을 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주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락을 잘 돌리는 게 나을까? 적당히 돌려야 할까. 덜하면 내가 소홀한 사람일까?
많이 돌리면 주접과 부담이려나?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갑자기 연락을 안 하려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렇다고 만나지 못하는데 꾸역꾸역 연락을 보내는 것도 부담이 아닐까.

다만 이 고민은 내가 생각보다 이기적이었던 터라, 결론을 내지 못 한 마음과는 다르게 적당한 정도로 유지가 되는 것 같다.


3주가 지난 지금도, 내가 하고 있는 것 입고 있는 것, 걷고 있는 곳이 안 믿긴다. 체험을 온 것 같기도 하고.. 1년 6개월이 정말 거짓말 같아서 말이다.

3분의 1 가량을 하고 있는 지금도 안 믿긴다. 여전히 나에게 버겁고 새로우며, 외로움을 주는 곳이다. 휴가나 외박일 때 집에서 하루 자고 깨어나면 군대라는 곳이 정말 체험처럼 느껴진다. 적응이란 몸이 완전히 녹아들어 그전과 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뇌에서 이질감을 잊기 시작한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영원히 안 끝날 것 같던 훈련소도 지나가는 찰나를 보이는구나. 여긴 이제 벚꽃이 하나 둘 떨어지고 초록색 잎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걸으면 슬슬 땀이 난다. 곧 여름이 올 건가 보다. 계절이 바뀌는 걸 실감해야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져서 좋다. 빨리 매미도 울고, 단풍도 물들고, 눈? 은 안 오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훈련소에서의 시간이 절반을 넘겼을 때다. 하루가 버겁고 일주일이 아득했는데 그런 위태한 마음으로 꼿꼿이 해내는 게 지금 봐도 신기하다. 어느덧 나를 반기던 벚꽃도 지고 나무가 제 옷을 갈아입고 있었나 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여름도 한 풀 꺾이고 습도가 한껏 빠진 아침 공기를 콧구멍에 잔뜩 머금을 수 있는 시기이다. 결국 계절은 두 번이나 바뀌었고 시간은 꾸역꾸역 갈 길을 간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많음을 알아도, 두려웠던 그 시간을 마주하고 몇 글자 더 얹어 쓸 수 있는 지금이 감격스럽다.


제발 금방 가길. 1주일 사이에 큰 변화가 없길. 나를 잊지 않길.

핸드폰을 제출한 일요일 오후면 항상 들었던 생각이다. 군인의 나는 없는 사람이고 사회의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구분 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마음가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역하면 뭐가 남지?" 하는 회의 섞인 생각이 불쑥 들곤 한다. 그 허무를 느끼는 와중에도 결국 내가 있던 곳은 회전목마처럼 밝게 돌고 있을 것이라, 이곳에서의 상실감을 에너지로 바꿀 좋은 발전기를 찾고 있다. 아직도 갈피가 안 잡히는 마음가짐이라 그런 것이 실재한다는 믿음 자체에 의구심이 생긴다. 그럼에도 벌써 내던져 놓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엔, 남은 날이 너무나 많다.


<미스터 션샤인>

작품의 극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매일이 새로웠고, 하루가 달리 바뀌었다.


빠른 듯 느린 논산의 반환점을 그렇게 가까스로 돌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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