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의 뉴런들
입대 하루 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 먼저 시작된 훈련소로 가는 길. 내일 혹은 앞으로 펼쳐질 549일의 시간이 없을 것처럼 부어 넣은 술로 인해 종일 숙취와 맞서는 괴로운 아스팔트였다.
뾰족해진 머리와 함께 논산에 도착하여 먹은 물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임에도 쉽사리 목젖 너머로 흘러가지 못했다. 그것이 숙취 때문인지, 이등병을 문전에 둔 압박감 때문이지, 혹 그냥 물회가 차가워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때의 현상에 대해 이유를 찾으려 어중간하게 쌀쌀했던 3월 말을 그려보면, 아직도 무언가 가슴을 턱하고 막는다.
숙소에 도착해서 멍을 때리며 해가 지는 것을 온전히 보았다. 호수 뒤편으로 침잠하는 태양이 괜스레 빨리 가라앉는 것 같았다. 다음날 또 밝을 해임에도, 내일부터 볼 해는 지금의 것과 전혀 다른 빛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매서운 날씨 혹은 고된 하루를 알리는 빛. 앞으로 몇 개의 태양을 미워하게 될까 하는 마음에 잠기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잘 먹던 고기도 물회와 비슷한 이유(이번엔 뜨거워서였을까)로 몇 점 씹어볼 수 없었다. 고기에 올린 푸른 와사비를 통 크게 숟가락째 떠 베어 물고, 눈물이라도 한 사발 뚝뚝 흘려보면 후련하려나 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내가 알바에 가는 날이면 아버지가 으레 하시던 '잘 다녀와', '고생했어'와 같은 말에, 와사비를 안 먹길 잘한 것 같았다.
방에 들어와 여태껏 찍은 사진을 보고, 입대 전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도 읽고, 다음날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벨소리가 하나둘 울렸다. 대학 동기, 선후배,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항상 보던 사람들이었지만 더 반가웠고, 고마웠다.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주접으로 보일까 담담하게 인사하느라 혼났다. 덕분에 지금까지 그 작은 마음을 떠올리며, 100일이 넘도록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담담했다기보다는 너무나 급변할 미래에 대해 아직 실감을 못 하고 있던 것 같다.
어느덧 밤이 깊었고, 숙취가 가져온 피로로 인해 잠을 설칠 여력도 없었다. 자정이 되자마자 군인의 신분이 된 채로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갔을 때 9mm의 머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머리를 민 지 3일째였으나 처음 겪는 어색한 모습은 쉽사리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갈비탕 집에 갔다. 전날 음식을 잘 넘기지 못했던 것이 순전히 숙취의 여파였을까. 국물을 가득 머금은 고기가 부드럽게 위장을 채웠다. 하나둘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열에 아홉은 나처럼 짧게 친 것 같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중에는 부모님으로 보이는 어른과 마주 본 채 우는 사람도 있었고,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에게 웃음을 보이며 허겁지겁 당면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욱여넣는 사람도 있었다.
당일에도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많은 사랑 속에서 지내다 온 것은 아주 느꼈지만, 새삼스레 나의 안녕을 잠시나마 비는 마음에 응원을 제공하는 그들이 더욱이 감사했다.
이제 아버지의 차에 달린 네모난 내비게이션에는 훈련소 주소가 찍혔다. 2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아직 사회의 내 모습을 놓지 못했는지 예약 메시지를 이틀 뒤 날짜로 설정하여 적어두었다. 민간인의 내가 사회의 모습으로 적어 보내는 마지막 글귀였는데 좀 더 정성스레 적을 걸 하는 후회도 든다. 몇 초 간의 고민 끝에 친한 친구들의 카톡방에, 잘 지낸다는 내용의 간단한 문장을 남겼다. 밖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를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동안 연락하지 못할 시간만큼 바쁘게 손을 놀렸다. 바삐 움직이던 엄지손가락보다 아버지의 엑셀레이터가 더 강하게 밟혔는지 어느샌가 형광띠와 경광봉을 든 군인들이 차량을 인솔하고 있었다. 고개를 더 들자, 매체에서만 보던 '호국요람'이라는 글자가 눈앞에 와있었다. '다 왔구나' 찰나의 인지와 함께 입영 심사대에 들어갔고, 나와 비슷한 24시간을 보낸 사람들과 섞여 정신없이 입소식 장소로 향했다.
할 말이 없던 건지 자꾸만 흐르던 정적과 건조하게 마르는 입술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부모님께 농담도 해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내 곧 입영 장병들은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이 울렸다. 국가의 부름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운동장에 나가기 전, 부모님과 포옹하고 하늘을 올려다본 뒤 정해진 위치로 발을 뗐다.
불꽃같이 반짝이던 한 달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갓 찾아온 새 학기의 인연들과 새싹 푸릇한 계절을 미련 없이 등져야 하는 시간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놀았고, 소중한 감정들을 충만히 느꼈지만, 그 뽀얀 행운들 속에서 그것들이 언제 나를 떠나 증발해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스며들기도 했다.
점점 작아져 보이는 가족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부터 통제에 부단히 쌓인 나의 1년 6개월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