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나쁜 사람
눈에 띄게 좋은 일을 골라서 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 사소한 노력들을 합니다. 일 할 사람이 필요하면 나서고, 군 휴가를 나온 친구들을 보러 내일 모레인 시험을 뒷전으로 미루기도 하며,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후배들을 위해 컴퓨터와 핸드폰에 1년도 더 된 파일을 뒤져 필기를 전해줍니다. 그들에게 약간은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 위해서겠죠. 우리가 남을 돕는다거나, 무언가에 열중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은 술집에서 팝콘을 쏟은 직원을 돕기 위해 쪼그려 앉았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보려 했으나 손은 방황하였고 결국 큰 도움을 줄 수 없었어요. 과연 그분에게 저는 좋은 사람이었을까요.
타인의 오지랖으로 본인의 실수를 공유하게 되는 상황이 불편해서 저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부디 그때 그분이 저를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주셨길 바랍니다.
아무리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가려 해도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저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제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 하나는, 조금만 살펴보면 버젓이 알 수 있는 걸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그거 ○○들어가서 □□하면 되는데, 아마 글에 자세히 써있을 거야.”
이런 상황들이 자꾸만 반복되면 점차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저에게 이해의 포기는, 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 아주 큰 소멸감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1년 간 했던 학생회 임원이라는 직책과 저에 대한 신뢰의 소산이라 생각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성실히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간혹, 그 뒤에 돌아오는 대답이 다시 한번 저를 무너뜨립니다.
“ㅇㅋ”
타인의 편의를 돕기 위해서 이해를 포기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행위를 마치고, 겨우 해 낸 설명 이후에 돌아오는 대답이, 이리도 간단하다면... 고맙다는 표현, 그마저도 아닌 ‘오키’ 정도만 돌아왔더라도 마음을 덜 쓰고 넘길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세상에서는, 저런 단 두 번의 터치로는 앞선 상황들을 상쇄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또 한 번 화를 삭이는 작업을 거치며 망설이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얘는 왜 이런 식으로 소통을 하지'
아마 그들은 모를 겁니다. 알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계속 좋은 사람이고 싶은 이유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다만 망설임을 알고 있을 뿐
입 밖으로 나다니는 말들은
조금은 점잖아야 할 테니까요
브로콜리 너마저 -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中 -
대학교에 처음 가던 날 저는, 안 껴본 렌즈를 눈에 가까스로 끼워 넣고, 가끔 하던 면도를 하고, 딴엔 가장 멀쩡해 보이는 옷을 입은 채 학교로 향했습니다. 스스로를 포장하고 좋게 보이게 하는 과정은 비단 겉모습뿐만이 아닐 겁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존댓말로 인사를 건네고, 평소보다 부드러운 말투와 밝은 톤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를 통해 나의 장점을 은은히 꺼내고, 질문을 통해 단점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장 좋은 사람으로 포장한 모습은, 좋은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진 거리로 인해 역설적으로 파괴됩니다. 실수로 감추는 것보다 실수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잦은 실망을 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이미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했다면 앞으로는 실망할 일이 더 많은 게 당연한 셈이니까요. 아주 뜨거운 물도 거리가 생기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가진 관계가 우리를 가장 깨끗하게 만듭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기저기 약속을 잡고, 술자리를 찾아 나가고, 감당할 수 없는 연락을 돌립니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없었을 실망만 되려 만들었습니다. 저의 욕심에서 비롯된 후회와, 타인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면, 누구에게 얼마 큼의 좋은 사람이 되어 가까워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을 만난 대학교의 2년을 보내고 이제야 조금 느끼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세상이 필요의 이치만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어봅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죠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쳐
솔직해질 필요는 없죠 굳이
브로콜리 너마저 -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中 -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입체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다른 것처럼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 저의 사례를 보고, 누군가는 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논리의 범주가 아닌 터라, 참과 거짓, 역과 대우로써 판단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의 상상치 못한 면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은 한순간에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요.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기 위해, 누군가는 부끄러운 일기장을 숨겼을지도 모릅니다.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당신을 미워하는게 아닌 것처럼
좋은 사람을 믿나요?
나쁜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브로콜리 너마저 -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中 -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세상과 조율해야 하는, 어쩌면 불가능한 영역의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