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미화되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살던 10년 전의 그곳은 지금과 전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잔잔했다. 햇살도 얼마나 따뜻하고 밝던지, 창문 틈새로 내리쬐는 빛 한 줄기가 무수한 먼지 가닥을 비추는 모습이 선하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살면서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고(그랬던 것 같다), 가지고 있던 고민이라고는 태권도장에 가기 전 문방구에서 무엇을 사 먹을지가 전부인 어린이였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축구나 지탈(지옥 탈출이라는 놀이)을 하고, 주말이면 자전거 페달을 15분 남짓 밟아야만 나오는 상가 피시방에 가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부여되지 않았다. 무한도전 토토가의 영향으로 부모 세대의 음악을 접했으며, 메르스의 창궐로 잔뜩 겁먹어 마스크를 챙겨 다니기도 하였다. 저녁이 되면 가족과 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았고, 어른들은 당시에도 한참 전이었던 1988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12살이었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먼 이야기 같던 수능을 치른 지도 꽤 지났고, 영영 어색할 것 같던 성인이라는 단어는 이제 나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도 이미 몇 해 전 일인 것이고 당장에는, 어렸을 때 들었던 '너 군대 갈 때쯤이면 통일될 거야'라는 문장이 결국 성립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제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피시방도 멀지 않다. 축구는커녕 친구들을 만나 모래흙을 신나게 밟고 뛴 적도 오래다. 티비를 대신한 작은 화면 속 OTT 덕에 가족과의 시간은 점점 줄었고, 우리를 찾아왔던 범세계적 전염병은 팽배한 개인주의를 남긴 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성인이 된 나의 입은 항상 카페인이나 알코올을 흡수하고 있고, 10년 더 먹은 간은 다크서클과 함께 열심히 움직인다. 눈은 내 앞의 풍경과 핸드폰을 바쁘게 번갈아 보고,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피하기 위한 헤드폰이 걸려있다. 22살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내가 그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달갑지 않다.
나는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이 글도 기차에서 쓰고 있을 정도로. 다만, 기차를 예매하는 순간의 떨림과 타기 직전의 설렘은 이내 기차가 출발하고 삼십여 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바라던 행위의 끝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생생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든다. 이 행복의 종말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의 강요 덕분에. 나에겐 20대에 들어온 이 순간들이 그렇다. 지금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미 출발해 버린 20대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아주 큰 상실감을 숨기며 살아가야 한다.
2024년 7월, 군산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다.
기차를 타기 전의 시간만 평생 지속된다면 매일이 설렐 것이라는 착각 섞인 기대와 함께 시간이 멈추기를 바란다. 청춘은 언제까지나 주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그 직전에만 머물고 싶은 마음이다. 12살의 나를 떠올린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앞둔 설렘만 간직할 수는 없을까. 준비가 덜 된 나를, 자꾸만 부추기는 젊음이라는 단어의 위압감은 계산보다 무거웠다.
12월에는 정말 쉼 없이 술을 마셔댔다.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무언가를 잊고 싶어서는 아니고, 다가올 한 해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져 보려, 약속을 이리저리 잡다 보니 달력의 빈칸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매일을 얼큰하게 취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숙취와 함께 찾아왔다. 알코올이(정확히는 알코올을 해독하는 과정이) 잡아간 시간을 아까워하다가 보면 다시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나에게 2024년의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먹는 것도 능사지만, 그 외의 시간 역시 나에겐 같은 2024년인지라 술을 먹지 않을 때면영화도 보고 책도 읽어보려 애썼다.
하루는 아침밥과 함께 시각적인 요깃거리로, 여러모로 평이 좋은 짱구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을 보았다. 행운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스쳐 지나가는 애니메이션이 나의 오래된 걱정들을 크게 덜어 가져갔다.
극 중 어른 등장인물들은 모두 20세기의 향수에 빠져 어린이처럼 행동한다. 그런 향수를 이겨내고 현재로 돌아오려는 것이 주인공인 짱구 가족의 욕망이다. 영화를 꿰뚫고 있는 메시지는 과거로의 도피가 쉽고 달콤해도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의 짱구 아빠의 회상 장면에서는 짱구 아빠의 어릴 적 기억부터, 첫사랑의 실패, 취직과 결혼,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는 장면에 이르러 한 사람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난 이후 짱구 아빠는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려고 한다.
아주 어려서 볼 때와 사뭇 다른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우리가 그리워하던 과거는, 좋든 싫든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프리퀄이 된다. 짱구가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며 되찾으려 했던 21세기가 어떤 모양일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러한 시련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데 아주 필연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나는 가장 찬란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10년 전 기억에 잠겨 지금의 가치를 죽여가고 있었다. 당장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현재와 미래임에도 말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포항에 여행을 다녀왔다. 쉬이 볼 수 없는 황홀한 수평선과, 섬세하게 놓인 바닷가의 배와 사람들을 보니 잔뜩 벅차오름을 느꼈다. 고개를 들고 조금 걷다 보니 옛 감성이 잔뜩 묻어있는 문방구가 보였다.
“와, 아폴로다. 여기 뽑기판도 있어.”
적어도 10년 전에 보았던 불량식품들과 장난감이 있었다. 잠시나마 추억에 잠겨 시간여행을 다녀왔지만, 그곳에서 다시 나올 때는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야만 했기때문이다. 2015년의 문방구에서 2025년의 포항으로 이동한 것이다. 눈앞에서 10년의 시간을 상쇄시키는 공간이 펼쳐지더라도, 그 공간의 바깥을 경험할 이유가 있다면 그곳에서 나오고 만다. 이미 봐왔던 것보다 새로 보고 싶은 것들이 더욱 많기에. 그런데 어째서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공간에 멈춰서, 내 앞의 새로운 풍경을 밀어내려 하고 있을까.
새로운 나이가 되어 20대를 달리고 있는 나는, 부득이한 걱정과 외로움을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것이 현재의 가치를 배반하고 과거로 도피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갓 22살의 나에게, 짱구와 문방구는 뜻밖의 깨달음을 주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말이 아니다. 미래는 언젠간 과거가 된다. 과거에 몰입하여 미래를 등지기보다, 과거가 될 미래의 매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10년 전만 바라보는 루저, 외톨이, 겁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몸통의 반만 한 계단을 뛰어올라 미래를 되찾아온 짱구처럼, 미래를 만들 현재의 아름다움을 꼼꼼히 꿰차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