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공간은?

어지러운 곳으로부터의 도피처로써

by 방강진



11월 둘째 주 수요일부터 3일간 우리 학과에서는 졸업생 선배님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중, 쓰는 걸 좋아하셔서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적는 선배님이 계셨다. 그분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셨고 나에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힌트를 주셨다.


별일이 없어도 쓰는 행위를 하려고 하는 나는, 글쓰기가 가져야 하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공간이란,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일기장, 더 작게는 공책 구석 작은 메모들이 될 수도 있다.


글이라는 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아무나 쓰려고 하면 쓸 수 있는 데다, 안 써본 사람이 없는지라 어디에나 써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모두가 글을 읽고 써보았기에 본능적으로 공간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평소에 신문만 보던 사람은 신문과 비슷한 회색빛 얇은 종이를 볼 땐 신문기사가 가지고 있는 문체를 떠올릴 것이다.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적는 방법이 사진과 이모티콘을 잔뜩 넣어 보기 좋게 꾸미는 취향이라면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볼 때에도 그런 시각적인 요소를 기대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글이 자기만족이라고 해도 쓰다 보면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나에게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은, 나의 성격과 내가 그 공간을 만들던 방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자니 남은 게 일기 정도였으나, 파란 표지와 수많은 페이지가 있는 나의 두터운 일기장은 퇴고 없이 마구 흩뿌려놓은, 뱉듯이 쓴 글자들만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남기고 싶었다.


(글이라고 하면 거추장스럽게 보일까 싶어 '자(字)' 자를 붙인다.)

여태껏 내가 글자를 조금이라도 적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면 '이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써야지', '이곳에서는 이 정도까지 나를 드러내야지'하는 기대사항이 부여되곤 했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음에도 나의 쓸데없는 눈치와 걱정이 만든 고뇌였다. 그 기대사항들의 스펙트럼을 보다가 너무나 뚜렷하게 비어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분명히 그 비어 있는 지점에 써야 할 글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스펙트럼의 빈 지점을 채울 수 있는 글자를 쓰고 싶을 때,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야만 하는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책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더럽고 어지러운 책상이어도 나름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책상에서 공책을 꺼내려는 행위, 펜을 뽑으려는 행위, 손톱깎이를 찾으려는 행위, 이 세 가지를 하려고 할 때, 그토록 복잡한 책상 위에서 손이 각각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옮겨 가는 것처럼. 나에겐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안부를 물으려면 카카오톡, 일상을 공유하려면 블로그, 사진을 우선으로 하고 싶으면 인스타그램, 창피한 생각은 일기장. 이토록 세분화된 공간들 사이에도, 가끔의 나의 주체하기 힘든 꼴불견스러운 글이 존재할 공간은 없었다.


남에게 자연스레 권유할 수 있으면서 강요는 되지 않는,

나와 글 사이의 거리를 부드럽게 벌려놓고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글만을 위한 공간


그래서 이곳에 새로운 글자를 적는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새로운 공간에 덜컥 초대하려면 공간에 대한 설명과 이유를 세세히 알려야만 당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위에 주저리주저리 적는 와중에도 스스로가 낯부끄러워졌어요. 글만을 위한 공간이라며 못 박으면서도 이 공간이 왜 필요했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꼭 증명하려 하는 모습이 우스웠더라고요. 다만, 글이라는 게 글의 주체와 완전히 동 떨어져 숨 쉴 수 없기에, 그 간극에 최소한의 징검다리를 놓는 과정이라 합리화해 봅니다.


퍽 새로운 곳에서, 구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