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방강진이다.
지금 한컴오피스로 내 이름을 썼는데, 맞춤법이 틀렸다고 빨간 줄이 그어지며 지적받고 있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런 컴퓨터 프로그램 따위가 18년 간 각종 시험지와 회원가입 창, 가정통신문에 이름을 써온 나에게 함부로 지적을 하다니.
내 이름은 방강진(方綱珍)이다. 벼리 강에 보배 진을 써서 따로 보면 참 좋은 뜻인 것 같다. 사실 이름 주인인 나도 벼리라는 단어는 생소해서 정확한 뜻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좋은 뜻을 가진 글자들도 이름이 되려면 합쳐져야 하는데, 벼리 강과 보배 진을 합치면 정약용 선생님의 유적이 있는 전라남도의 지명이 되거나 ‘난 이제 지쳤어요’를 외치며 <땡벌>을 부른 트로트 가수의 이름이 된다. 이름을 할아버지가 지으셨다는데 음악적 취향을 반영하신 건지 아니면 전라남도가 고향이신 할머니의 압박이 있으셨던 건지 모른다. 심지어 그런 이름에 흔치 않은 성씨인, 뒤에 꼭 ‘귀’ 또는 ‘구’라는 글자가 올 것 같은 ‘방’이 붙어서 이름이 더욱 특이해졌다.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면 아마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것이다. 이 일은 내가 태어나고 나서 까지도 머리를 싸맸던 나의 부모님의 이야기이다. 네다섯 살 즈음에 할아버지 댁에서 할아버지와 아빠가 언쟁을 벌였다. 나의 이름의 두 번째 자인 ‘강’의 한자를 '벼리 강'으로 할 것인가 '강할 강'으로 할 것인가가 주제였다. 아빠가 벼리 강 편이셨고 할아버지가 강할 강 편이셨다. 물론 난 너무 어려서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터라 중립이었다. 내 기억으론 꽤 오래 그 이야기를 하셨던 거 같은데 결국 '벼리 강'을 가지게 되었다. 옛날에 이 기억을 떠올릴 때면 왜 어른들이 유치하게 그런 거 가지고 싸웠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름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름은 사람을 대표하는 가장 단순한 수단이자 모든 소통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평생의 기억을 좌우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칠판에 이름이 적혔다. (뭘 잘못했었을까) 그날 칠판 당번이었던 은준이가 칠판을 가로로 차근차근 지워나가다 내 이름의 받침을 모두 지워버렸고 내 이름은 바가지가 되어있었다. 바가지는 금방 나의 별명이 되었는데, 전에 있던 별명인 방구보다 더 전후 맥락이 있으며 완성도 높은 별명이었다. 당시에는 놀림받는다 생각해서 복수심에 불타 나도 같이 놀릴 생각으로 모든 친구 이름에 받침을 다 빼보았는데 막상 바가지처럼 하나의 단어로 딱 떨어지는 이름은 없었다. 나도 신기해서 이젠 내가 먼저 웃음 포인트로 사용한다. “난 방강진이고 받침을 다 빼면 바가지야. 이런 이름 처음 보지?”라며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며 이야기한다. 그 어떤 소통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작일 것이다.
성도 이름도 특이한 내 이름은 함께 붙어 있으면 특이함이 더 빛을 발한다. 당장 며칠 전에도 겪었던 일이고 어쩌면 잠시 후에 겪을 수도 있는, 나에겐 자주 있는 일인데 이런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내 이름을 여러 번 발음해 본다. 얼마 전 백신을 맞으러 병원에 갔을 때 접수처에서 오갔던 대화이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방강진입니다.”
“박강진이요?”
“(또박또박 천천히 끊어 말하며) 방. 강. 진. 이요.”
“아~ 방광진?”
“아니요... 노래방 할 때 방이랑 한강 할 때 강이요”
“아, 방강진...”
아무리 발음 연습을 한다고 한들 발음하기는 어렵고 이름은 특이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자주 있어도 그러려니 한다. 근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방'광'진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누가 이름에 오줌 저장 주머니의 명칭을 넣고 싶겠는가? 한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 방광진도 친근한 별명이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신체에 꼭 필요한 기관이니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 말고도 뉴스나 신문에서 ‘○○지역에 규모 △△ 강진 발생’ 같은 헤드라인이 나오면 나에게 왜 그랬냐며 문자가 온다거나, 자식 이름을 추천해 준다면서 ‘방망이’, ‘방정식’, ‘방심하지 마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와 같은 단어를 나열하기도 한다. 이제는 놀림을 받아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이름이라서 할 수 있는 경험이고 나만 했을 경험이라는 생각에 내 이름이 더욱 좋아진다.
앞으로는 내 이름에 특이하다는 표현보다는 특별하다는 표현을 해주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름은 특별하다. 이름을 지으려 고민했던 시간부터 이름 덕분에 생긴 깨달음까지 사람마다 모두 다른 추억이 담겨있으니까. 이름은 당신을 좋아해서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러니 모두 자신의 이름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 중, 아주 조용하고도 평범히 나를 곁에서 지켜주는 게 이름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