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매서운 추위를 느끼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한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마치 내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병자년 그 매섭던 추위 속에 내동댕이쳐진 것만 같은 애처로움이라고 할까.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병자호란,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屈辱)’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오랑캐라 업신여기던 여진족에 국토를 유린당하고 인조 14년(1636)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궁벽(窮僻)한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혹한의 추위 속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으며 성을 지켜야 하는 군사들과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 지위 고하를 떠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한없이 가여운 존재들이다.
그 참담한 심정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전쟁에 이길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대했던 지원군은 오지 않고, 하루하루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지낼 수 있는 식량마저 두 달을 버틸 수 없다. 도무지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적들은 점점 더 성을 죄어온다. 신료들은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파, 최명길이 앞에 선 주화파로 나뉘어 결론나지 않을 논쟁만 계속한다. 앞날에 대한 해법은 없다.
성문을 열고 눈 쌓인 길을 맨발로 걸어 삼전도에 당도한 인조가 오랑캐라 업신여겼던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례를 하면서 백성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길었던 45일의 파국을 맞이한다. 삼전도의 굴욕은 임금인 인조 자신에게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이겠지만,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던 민초들의 삶을 생각하자니 처음에 느꼈던 애처로움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 갔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44년 전에 이 나라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국란을 겪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그 상처를 회복하기도 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정국은 요동쳤고, 이 일이 있은 후 불과 5년 만에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여진족 오랑캐가 물러간 후 불과 아홉 해 뒤에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전란을 다시 겪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44년의 간격을 두고 있다. 정말 지지리 운이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만한 외침을 세 차례나 겪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그저 운이 없음을 탓할 일일까. 현명하지 못했던 군주와 명분에 얽매여 국제 정세를 읽지 못했던 정치인들이 응당 그 고통을 다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 난리 통에도 엄연히 반상(班常)의 차이는 존재한다. 신분에는 귀하고 천함이 있을지 몰라도, 그 생명에는 귀하고 천함이 있을 수 없는데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하루하루 몰락해가는 남한산성에 틀어박혀 말로만 나가 싸우기만을 외치는 신료들을 향한 민초들의 비웃음이 품고 있었던 준엄한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