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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정찬주의 마음기행

by 봄뫼여울

두 번째 인연이다. 책을 통해서 법정스님을 만나게 된 것도, 정찬주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된 것도 모두 두 번째다. 류시화 시인의 잠언집(箴言輯)을 통해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말씀을 접하게 된 행운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은 정찬주 작가의 시선과 발걸음, 마음을 따라 스님의 일대기를 좇는 기행(紀行)이라 할 수 있다.


향기로운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법정스님과 속세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정찬주 작가가 스님이 태어난 해남 우수영을 비롯하여 송광사 불임암, 진도 쌍계사, 미래사 눌암, 하동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봉은사 다래헌, 강원도 수류산방, 길상사 등 스님이 머물렀던 절과 암자를 순례(巡禮)하면서 스님의 흔적과 그리움을 담담히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스님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요, 내게 필요 없는 것을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또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법정스님이 즐겨 읊조리시던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의 시를 저도 따라 나지막이 읊어 본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달빛처럼 연연하지 말고 살라는 가르침이다. 섬돌을 가지려 하지 않는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을 따르고 싶은 마음 간절해지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탓에 괴로움이 늘 뒤따른다.


법정스님은 입적하시면서 절판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스님의 이름으로 펴낸 책들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당부였지만 어찌된 것인지 그 이후로 속세에서 스님의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스님에 대한 당연한 추모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스님의 일관된 ‘무소유’ 삶 속에 담겨져 있던 고귀한 가르침이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세속에 발붙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오롯이 스님의 길을 따라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모든 사람이 탈속의 삶을 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를 얻을 수 있고, 베푼 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된다는 말씀처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나눔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나만의 아름답고 맑은 향기를 가진 꽃을 한 송이씩 피워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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