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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kwon Lee Apr 16. 2020

시련과 자기성찰이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언제 성장했고, 그 때 무엇이 나를 성장시켰을까?

팀원들과 주기적으로 대화를 할때나, 간혹 편안한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게 될 때 종종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과연 내가 지금 제대로 성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나는 더 빨리 성장하지 못할까?"라는 고민들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성장을 해왔는지?",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낀 시점은 언제인지?"라는 질문들이다.


그 질문을 받은 직후에는 나는 곧 바로 대답이 가능할 줄 알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주려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만의 정리된 의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대답하기를 "무언가 그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운 과제에 봉착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루어냈을 때 내가 성장했다고 느꼈다"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말하면서도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내가 만약 팀원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대답이 고민해결에 별로 좋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보고, 생각의 결과를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나의 업적과 성취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나만의 목표를 높게 세우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바탕으로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하면서 실천을 해나가지만 그 결과로 얻게 된 성과에 대해서는 보통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나의 성과를 절대 폄하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성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성과를 얻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투자했다면 그에 따른 성과가 당연하게 느껴지고, 만약 노력에 비해 성과가 과분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성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장의 결실을 만끽하면서 살아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팀원에게 속시원한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내가 한 단계 성장했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기까지 나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때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진정으로 되물으면서 나의 시간들을 파헤쳤다.


첫 번째로 기억이 나는 순간은 컨설턴트로 근무하던 당시 처음으로 PM(Project Manager) 역할을 맡게 된 때였다. 나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컨설팅 프로젝트의 PM을 맡았다. 그 때가 내가 컨설턴트로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안된 시기였다. 누가 보더라도 1년 미만의 연차를 가진 컨설턴트가 기업 프로젝트의 PM을 맡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것도 2개의 다른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는 난이도가 있는 과제였고 국내 대형 증권사로부터 발주된 프로젝트였다. 당시 갑작스런 팀리더의 이직으로 인해, 내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고 나의 역량에 대해서 회사의 신뢰가 높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프로젝트의 범위와 수준을 보고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시련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이것을 무조건 돌파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이를 통해 나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이 시련이었지만, 나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해볼만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모르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열심히 리서치를 하고 정보를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다행히 리서치를 통해 충분한 정보의 습득이 가능했었고 나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 프로젝트가 종료될 즈음에는 해당분야에 있어서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과제와 관련된 질문을 하면 나는 어렵지 않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해줄 수 있었고 그것은 실제로 대부분 정답이었다. 다행히 과제는 애초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면서 매우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회사에서도 크게 인정을 해주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성장한 느낌을 받은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이른 시기에 PM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은 내가 첫 번째로 성장을 제대로 느낀 시기이다. 어려운 과제였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열심히 리서치하고 분석하여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그 결과, 의지와 욕심을 노력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팔로워로서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다는 자기인식도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의 모든 시작은 시련을 동반한 어려운 과제였던 점은 분명하다. 그 동안 내가 통상적으로 해왔던 일이었거나 큰 노력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면 나는 끝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련에 봉착한 모든 사람이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시련을 겪고 실패하고 상처를 받고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성장했다는 느낌보다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위험이 더 높다.


하지만 나는 시련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어려운 상황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갔고 문제를 해결해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나는 문제해결의 방식을 철저한 리서치와 분석을 택했지만, 만약 이 방식이 실패했었더라도 나는 분명 다른 방식의 해결법을 찾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련은 커지고 기간은 길어졌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그것을 해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어느정도 운도 따랐고 첫 번째로 택한 방식이 효과를 거두었고 예상보다 어렵지 않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시련을 마주했지만, 그것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놓여있던 내가 돌파해야할 것으로 인식했고 스스로 연구를 통해 최선의 방식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다.


두 번째 성장의 경험은 비교적 최근이다. 한 동안 나는 팀장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큰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그 전까지 나는 실무자로서의 충분한 역량과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우수한 성과도 창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실무자로서의 자질에 비해, 올바른 리더십에 대한 철학이 부재했고 당연히 수행할만한 역량이 없었다. 그래서 내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고 팀원과 자주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왜 나처럼 하지 못할까?", "나는 잘하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팀원은 이해해주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오래 사업을 하고 계시는 작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무리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어 봐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일반론적인 조언보다는 내가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맞는 조언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털어 놓았고, 작은 아버지는 긴 시절 동안 겪은 무수히 많은 팀 커뮤니케이션 이슈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그 조언의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지나치게 길어져서 별도의 다른 글로 정리하는 것으로 생략하고자 한다.) 나는 이 문제를 내가 앞으로 계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과 나의 모든 것을 필요하다면 전부 바꾼다는 결의에 찬 생각으로 작은 아버지의 조언을 들었다. 다행히 작은 아버지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고지식한 분이 아니고 진정으로 경청하고 조언해주는 좋은 멘토였기에 나도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날로부터 모든 것을 바꿨다. 나는 팀원에게 어떠한 존재로 보여야 하는지, 팀원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 내가 팀의 성과를 높이기위해 제일 집중해야하는 것을 무엇인지 굳게 염두해두고 모든 말과 행동에 신경썼다. 아직은 내가 완벽한 팀장, 리더로서 변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전의 나에 비해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은 멋지게 성장해주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팀의 성과도 높아졌다. 바뀌기 전의 내가 있었던 팀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리더로서의 철학이 생겼고 팀장 역할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편안함이 찾아왔다.


나는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성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시련이 없는 성장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성장하고 싶다면 시련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을 성공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그 수준을 성과로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름답게 끝난 것에만 성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의 성장에 대해서 지나치게 좁게 생각하는 것이고 오해하거나 자만에 빠질 위험이 높다.


나는 성공하지 못해도 시련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무수히 많은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것이 된다. 어려운 상황을 단박에 성공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나는 운이 매우 좋았던 것일 수 있다. 나에게 중대한 목표일수록 난이도는 증가하고, 이에 따라 필수적으로 시련의 상황은 발생한다. 그 결과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에서 이미 분명히 성장했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련은 반드시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시련은 보통 난이도가 높고 고통을 동반하기에 이를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시련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번째의 경우에는 시련을 경험했다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사람이 시련을 통해 성장하려면 반드시 자기성찰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시련 + 자기성찰 = 성장"이라는 말이다. 내가 성장을 경험한 두 번째의 상황에서 나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에 어려움을 겪던 나는 "왜 리더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이 질문을 하기 전, 나는 팀원들을 탓하고 어쩔 수 없는 주변 상황에 책임을 돌리고만 있었다. 나를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작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나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고, 그 동안 나는 무엇이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련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성장의 여부는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성장을 원한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이상 문제에 치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련의 상황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를 외면하고 싶어한다.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을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성장의 엔진은 켜진다. 시련을 외면하는 순간 사람들은 문제를 깊이 탐구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자기 성찰을 시도하지 않는다. 나에게 문제가 있고 부족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시련의 크기보다 미래의 성장의 크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고 자기성찰에 주저하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기성찰과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것에 더 큰 의미부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을 어떻게 보는가? 시련을 성장의 기회로 바라보는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진실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랬다면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도,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분명히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결국 성장과 성공을 둘다 손에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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