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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kwon Lee Dec 25. 2023

2023년을 정리하면서...

"올 한 해 어떻게 보냈어?"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


어느 한해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 해가 없습니다. 늘 고민이 많았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루 중 불안함을 느끼는 시간도 덩달아 많아졌습니다. 저는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 년의 시간을 돌아보거나 다가오는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을 별도로 갖지 않아 왔습니다. 저에게는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 없는 계속된 고민과 도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알리는 보신각의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호가 저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마치 6월 28일이나 9월 13일과 다를 바 없는 하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자 합니다. 마음을 바꿔 먹게 된 계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의 근황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종종 질문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사이에서는 첫 번째로 받는 질문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또는 "하는 일은 잘 되어가?"로 대화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질문이 그동안 저는 참 난감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라고 말하거나 "바쁘게 지내" 정도의 매우 상투적인 답변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감당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벅찬 어떠한 마음입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감정이 머리와 가슴속에 꽉 들어차 있는데,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아버려 생각의 회로가 고장 나 버리는 듯합니다. 그러면 저는 뒤엉키고 복잡한 머리와 가슴을 억지로 누그러트린 채,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기계적인 대답만 성의 없게 툭 튀어나오고 맙니다.


평소에 정리되지 못하고, 저로부터 소외되어 오던 나의 지난날들을 다시 꺼내어 돌아보고 정성껏 글과 말로 가꾸어 보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앞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앞만 보면서 빠르게 지나쳐 온 내 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렇게 별다른 의미도 갖지 못 한채, '그럭저럭' 또는 '빠쁨'으로 퉁쳐져서, 다른 사람들은 물론 저로부터도 소외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지나온 모든 저의 순간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것들이 합쳐서도 오늘의 나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에 저는 진심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023년만큼은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근황을 묻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가능하다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제가 크게 관심과 시간을 쏟았던 몇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난 1년의 시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상과 현실

저는 제가 생각해도 대단히 이상주의적인 유형의 사람입니다. 이 브런치 글을 통해서 자세히 밝힌 적은 없으나, 저는 이 시대의 자본주의를 인류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컨설팅회사에서 CSR과 ESG를 테마로 메인스트림 비즈니스 세상에서의 현실경험을 쌓은 것도, 한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업을 일구어가고 관련된 비즈니스 역량을 쌓아나가는 것 모두 그러한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한결같은 저의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이상과 사명은 저를 둘러싼 현실적 제약을 잊게 했습니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지, 사회적 영향력의 크기는 얼마나 큰지, 외부환경은 충분한 기회를 갖추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했고 그것들이 저의 꿈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신기해하기도 하고 간혹 저를 응원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도전을 계속하고 새로운 환경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굳건한 저의 이상과 사명도 있었겠지만, 현실적 제약을 신경 쓰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현실의 무게를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과 무관하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저울질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이'입니다. 저는 그동안 대체로 나이를 잊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나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올해는 40살을 향해하는 저의 나이가 유독 자주 눈의 띄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깊이나 범위를 생각할 때, 마흔 살 이후의 나와 그 이전의 내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서글픈 마음이 앞섰습니다.


새롭고 다양한 인생의 기회와 선택에 저를 과감하게 노출시키지 못하게 된 점도 저에게 나타난 변화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앞으로 이뤄야 할 나의 사명과 목표만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었던 적이 많습니다. 선택의 옵션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고, 행동은 늘 과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매우 큰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것도 같습니다. 지금은 내가 갖고 있는 (사명이나 목표와 무관한) 현실적 자산을 고려하고 자유로운 선택에 있어 제약을 느낍니다. 나의 자산들이 나의 자유를 높이고 지켜주는데 도움을 주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현실의 무게를 느끼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내적 고민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무성취의 성취들

올 한 해 저는 많은 진전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저의 한 해를 표현하기에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회사는 2배 가까이 성장했고, 제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부는 전년도와 동일한 인력으로도 전년도에 비해 140%나 성장했습니다. 외형적 성장은 물론 이익률도 크게 개선되었으며, 고객관리에도 성공하여 제법 안정적인 비즈니스 단위를 형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올해 이룩한 성취는 대체로 저의 역량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여보다는, 성장한 팀원들의 역량과 헌신 그리고 그동안 형성한 단단한 고객관계가 성취를 이끌어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적극적인 기여나 개입이 사업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시장의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웃풋이 70~80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의 인풋을 100 이상을 투입할 수 없는 것이 올해 제가 겪은 딜레마였습니다.


수용하는 삶

올해 중순 즈음, 저는 심리상담치료를 한 차례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심적인 불안감이 심해지고, 결정적으로 가정에서의 불화로 번져서 그 심각성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기관에서 심리검사를 받으면서, 저는 수용성(acceptance)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검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이해하게 된 것이 심리상담치료의 큰 소득이었습니다. 혹시 마음의 병을 안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심리상담치료 센터를 찾아가서 전문적인 상담과 조언을 받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수용은 나와 다른 생각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해나 공감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용적 태도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하며 계속해서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랬던 저의 삶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나타난 것은, '수용'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갑니다. 그 전쟁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한 사람이 몇 십 년 동안 치열하게 겪은 고민의 시간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모두 각자가 선택한 최선의 결론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생각과 말은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만 합니다. 물론 행동의 진위나 조직 관점에서의 결론 도출은 객관적인 논의와 합의도출이 필요하겠으나, 표출된 개인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기에 수용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모두는 각자만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누군가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이다"라는 깨달음은 수용적 태도로의 조금의 진전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만약 올해 조금이나마 인격적으로 성장했다면 인간관계에서 수용의 가치를 생각해 볼 작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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