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른 태국] 강과 검

핏사눌룩(feat. 앙통) | 1

by 강라마

핏사눌록

태국 북부와 중부의 경계, 난강(Nan River) 유역에 자리한 도시.

이곳은 한때 아유타야 왕국의 북쪽 관문이자 방패였다.

그리고 바로 이 강가에서 한 왕이 태어났다.

나레수안 대왕(Somdet Phra Naresuan Maharaj)

태국인들에게 그는 ‘자유의 아버지’이자, 굴욕을 넘어 해방을 이룬 영웅으로 기억된다.


강의 도시에서 태어난 왕자

핏사눌록의 강가에 서면, 도시가 왜 늘 ‘북방의 관문’이라 불렸는지 알 수 있다.
난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강 건너엔 오래된 벽돌기단이 남아 있다.
그곳이 바로 찬 왕궁(พระราชวังจันทน์), 1555년 나레수안이 태어난 자리다.

그의 부친 마하 담마라차는 이 북부 요새를 지키던 영주였고, 핏사눌록은 아유타야 왕국의 마지막 방패였다.

그러나 그 방패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1563년, 버마의 바인나웅 왕이 ‘흰 코끼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다.

마하 담마라차는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항복했고, 아들 나레수안은 볼모로 끌려갔다.
그가 향한 곳은 버마의 수도, 페구(Pegu). 찬란한 왕궁의 금빛 정원에서 소년은 포로의 이름으로 자라났다.

핏사눌록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지만, 그 강물 아래엔 그 시절의 침묵이 남아 있다.
굴욕의 시간 속에서도 소년은 언어를 배우고, 검을 익히고, 조국을 되찾을 때를 기다렸다.
왕의 첫 걸음은 그렇게, 패배에서 시작되었다.


귀환과 재편

핏사눌록의 옛 왕궁터에 들어서면, 먼저 붉은 흙 냄새가 난다.
기단 아래엔 오래전 불에 그을린 벽돌이 남아 있고, 그 사이로 복원된 성벽이 절반쯤 하늘을 가르고 서 있다.
이곳이 바로 찬 왕궁(พระราชวังจันทน์) 소년 왕이 다시 돌아와 군을 재편했던 자리다.

1569년, 버마는 아유타야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나레수안의 아버지 마하 담마라차를 봉신왕으로 세웠다.
나라의 심장은 멈췄지만, 핏사눌록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2년 뒤, 버마는 젊은 나레수안을 석방했다.

그는 열여섯 살의 몸으로 이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버마식 옷을 입은 병사들, 무너진 성문, 침묵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군을 모으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창을 곧게 세우고, 훈련장 한가운데 서서 검을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조국’이라는 단어가 살아났다.

2025.09 | Thailand_Phitsanulok | Copyright © llama.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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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바친 맹세

핏사눌록의 중심을 가르는 난강(Nan River)을 따라 서쪽으로 걸으면, 강 건너편에 황금빛 첨탑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사원이 있다. 왕궁의 폐허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곳, 왓 프라 시 랏타나 마하탓 워라마하위한(วัดพระศรีรัตนมหาธาตุวรมหาวิหาร). 현지인들은 단순히 ‘왓 야이(Wat Yai, 큰 절)’이라 부른다.

이 사원은 핏사눌록의 상징이자, 태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불교의 성지다.
사원 안에는 프라 붓다 치나랏(Phra Buddha Chinnarat)이 모셔져 있다.
은은한 금빛 미소로 알려진 이 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불상(พระพุทธรูปที่งดงามที่สุด 3 องค์ของไทย)’ 중 하나로 꼽힌다.
방콕, 수코타이, 핏사눌록 세 도시의 불상 가운데서도, 핏사눌록의 불상은 가장 인간적인 미소로 불린다.

전해지길, 나레수안은 전장에 오르기 전마다 강을 건너 이 불상 앞에 섰다고 한다.
그는 신에게 승리를 빌었다기보다, 자신의 결심을 다지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불상의 눈빛은 부드럽지만 단단했고, 그 앞에 서면 누구든 잠시 말을 잃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들은 각자의 싸움을 앞두고 그의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도한다.
향이 꺼지고 종소리가 멀어져도, 그 기도의 울림은 여전히 ‘자유를 지키려는 맹세’로 남아 있다.

2025.09 | Thailand_Phitsanulok | Copyright © llama.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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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상징

핏사눌록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리면, 앙통(อ่างทอง, Ang Thong)의 들판이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 바람에도 장엄한 무게를 지닌 공간이 있다.
‘란 이쎄라팝 ๑๐๙ (ลานอิสรภาพ ๑๐๙, 자유광장 109)’ 나레수안 대왕의 독립 선언을 기념해 세워지고 있는
태국 최대 규모의 기념 프로젝트다. 광장에 들어서면 먼저 세 개의 거대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약 15미터, 왕과 장수, 그리고 병사를 상징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조각된 근육의 긴장감, 갑옷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밀히 새겨져 있다.
그 자체로도 이미 장엄하지만, 이 이름에 숨은 숫자 ‘109’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더 큰 꿈을 뜻한다.

지금 이 광장의 뒤편에서는 높이 109미터에 달하는 나레수안 대왕의 입상이 건립 중이다.
공식 설계 조감도 속에서 그 거대한 형상은 푸른 하늘을 가르고 서 있으며, 완공 후에는 ‘태국에서 가장 높은 왕의 동상’이 될 예정이다. 기단 주변에는 전쟁사 기념관과 의식용 광장이 함께 조성되어, 하나의 ‘역사도시’처럼 재탄생할 계획이다. 현재 세워진 동상만으로도 현실감이 사라질 만큼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금속의 실루엣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다.
자유를 향한 신념, 굴복하지 않았던 왕의 맹세, 그리고 그 정신을 지금의 세대가 다시 세우려는 의지.

핏사눌록의 강가에서 태어난 소년 왕은 세기를 넘어 앙통의 대지 위에서 다시 서고 있다.
돌과 금속으로 빚은 형상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피와 신념으로 쌓인 ‘자유의 시간’이 흐른다.

2025.09 | Thailand_Ang Thong | Copyright © llama.foto
2025.09 | Thailand_Ang Thong | Copyright © llama.foto

*아래는 109미터 동상이 완성되었을 때를 나타내는 가상 조감도

최종 완성 조감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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