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動線)

골목에서 스쳐간 세 개의 시간

by 강라마
IMGP0175.jpg <동선(動線)> 2025.11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Gaeun)

이 골목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딸랏너이.
몇 번이나 오갔고, 사진도 찍었고,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장소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골목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고, 예전엔 없던 가게들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낡음은 여전했지만, 그 위에 다른 리듬이 얹힌 느낌이었다.

골목 한편에는 여전히 그 차가 있었다.
녹이 슨 오래된 비틀.
딸랏너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눈에 담아봤을, 이곳의 작은 표식 같은 존재다.

‘아, 아직 있네.’

그렇게 스쳐 지나가려던 순간


차 옆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정리하는 듯 보이던 한 소년.
태국인 같기도, 서양인 같기도 한 외모.
여리여리한 체구에 중성적인 분위기.
그는 골목을 오가는 오토바이와 차들을 피해 조금씩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잠시 후에야 알았다.
그가 하고 있던 건 그림이었다.

비틀을 중심으로 주변의 낡은 벽과 길, 사람의 흐름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그는 집중을 잃지 않았다.
선 하나, 색 하나를 놓을 때마다 ‘이건 내가 해낸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겉모습은 연약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예술가다운 고집과, 자기 세계를 지키는 집중력.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꽤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나를 건드렸다.
부러움이라기보다는, 자극에 가까웠다.

나 역시 이곳에서 사진과 영상, 그리고 글로 태국을 기록하고 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순간들을.

그 소년을 보며 내가 왜 여전히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더 정확하게 보고, 더 다른 시선으로 담고, 팩트 위에 나만의 언어를 얹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

딸랏너이는 여전히 낡았고, 여전히 시끄럽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동네다.

하지만 그날, 오래된 차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한 소년 덕분에 이 골목은 다시 한 번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한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