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시작했기에 가능해진 것

by 강라마

아시아티크 부근, 한 학교 앞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벽화를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벽에는 여러 그림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인력거를 끄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단순한 그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 그림 속 인력거꾼은 어딘가 중국 화교 이민자를 떠올리게 했다.

방콕의 오래된 도시 노동. 힘든 일을 맡았던 사람들.

인력거를 끄는 일처럼 몸을 써야 하는 일들.

예전 방콕에서는 이런 일을 중국 이민자들이 많이 맡았다고 한다.

그 그림을 보면서 문득 지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태국 경제에서 중국계 화교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어쩌면 태국 경제를 이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그 그림이 더 묘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가장 힘든 일을 하던 이민자들이 지금은 한 나라의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어쩌면 이것이 삶의 흐름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은 결국 다른 모습을 만들어낸다.


문득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오래전 한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세탁소나 작은 가게 같은 일부터 시작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조금씩 삶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벽화는 단순한 옛 풍경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의 노동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삶의 모습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그림은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도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이 벽화 하나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 자신의 모습도 잠시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아직 작고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도 때로는 답답하고 끝이 없어 보이기도 잘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 결국은 한 계단씩 이어지는 길일 것이다.

아마도 그 그림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천히. 한 걸음씩.

P1003740.jpg 계단 | 2026.03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D.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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