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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Mar 12. 2024

아이라는 사치

엄마는 저출산해결방안 수행 중

개인적으로 나는 사치라는 말과 썩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당근마켓을 자주 이용하고, 쿠팡에서 열심히 최저가를 뒤지며, 전자 제품조차 한 철이 지난 기기들을 사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성격이기 때문이다. 소소하게 자주 소비를 하기는 하지만 평소 내가 부여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이라고 생각되면 사고 싶었던 물건도 가차 없이 놓아버리는, 나는 딱 그런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요즘 누구나 한 두 개쯤을 들고 다닌다는 명품가방도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다. 결혼할 때 "남들 하는 것은 다 하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권유로 큼지막한 명품가방을 하나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고는 한 오 년쯤 안 쓰고 넣어뒀다가,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출근가방으로 무지막지하게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라지사이즈 가방인데 그때그때 필요한 노트북이나 책, 물, 간식까지 넣고 나면 벽돌을 넣은 게 아닌지 의심될 만큼 가방이 무거워져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는 바닥에 놓아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해 보고자 머리 위로 들고 다 보니 로고만 없으면 누구도 명품가방이라고 알아보지 못하는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실밥하나 풀리지 않고, 손잡이도 아직 짱짱한 걸 보고는 '아 이래서 명품가방을 사는구나'하며 감탄을 한다. 


그런 내가 인생에서 저지른(?) 최대의 사치는 아마도 세 명의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낳는 것을 굳이 사치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이미 풀타임 직장인으로 애를 돌볼 시간도 여력도 없으면서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나 아이를 낳아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드는 시간, 돈, 체력 등등에 대한 수지타산이 딱히 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사치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 누구도 나에게 아이를 셋을 낳으라고 권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 엄마는 첫째를 낳았을 때 이미 충분히 기뻐하셨고, 둘째를 낳으라고 권하지도 않으셨으며, 셋째를 낳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진심으로 한 때 치고(?) 싶은 눈빛으로 쏘아보셨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깝게 지내는 지인분들도 셋째를 가졌다고 했을 때는 혀를 차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셨다. 마치 월급도 적은 철없는 사회초년생이 36개월 할부로 샤넬백을 샀다고 할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치의 기쁨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졌다는 것에 있다. 아무 물건이나 비싼 것을 샀다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물건이기에, 다른 사람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금액을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기꺼이 그 금액을 지불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조소를 감내한다.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물건을 들고 다닐 때, 그리고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질투 어린 눈빛에서 느끼는 뿌듯함은 덤이다. 이제 셋째마저 어린이집에 입소한 나는 어느 때보다도 나의 보석 같은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어느새 3학년이 되어, 제법 어른스러워진 첫째와, 언니 따라다니며 보고 배운 게 많아 초등학생 2회 차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학교에 잘 적응하는 둘째, 그리고 자신의 기저귀는 스스로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는 자립심 강한 18개월 막내에 이르기까지 함께하는 매 순간이 기쁘고 사랑스럽고 뿌듯하다. 


문제는, 사랑스러운 세 아이들을 할부(?)로 얻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 그리고 아마도 내 경험에 따르면 앞으로도 한 10년 정도는 나는 이 아이들에게 나의 시간과, 돈, 체력을 부지런히 쏟아부어야 한다. 어쩌면 그 이후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손주를 낳아서 데려오면, 부모님들의 황혼육아의 최대 수혜자인 내가 황혼육아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아이 셋을 낳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이미 세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상, 나의 사치를 되돌릴 방법은 전혀 없다. 이미 반품해 버릴 수 없는 샤넬백이 고스란히 옷장에 들어앉아 있고, 할부금을 열심히 갚아나가야 현실처럼 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근에 결단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몇몇 지인들의 말이 딱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보면 전적으로 손해 보는 결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의 사치스러운 결정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어떤 사람이 샤넬백을 샀는데 할부금을 갚느라 얼굴에 계속해서 수척해져 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역시 사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샤넬백을 샀는데 본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고 다닌다면, 그 사람의 선택은 나쁜 선택이 된다. 하지만, 명품가방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잘 활용하여, 일평생 중요한 만남의 자리에 잘 어울리게 들고 다니고, 깨끗이 관리하여 오랜 기간 멋스럽게 쓰다가 심지어 딸에게까지 물려준다면, 주변 사람들은 '역시 살면서 명품가방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아'라며 그 사람의 선택을 칭찬하게 된다.


이렇게 직장인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선택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삶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괜찮아"보여야 한다. 내가 허덕이는 순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딸들부터 엄마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건 역시 무리였지 하면서 본인들이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약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일하면서도 가정과 자녀의 유익을 충분히 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나는 매일같이 하는 선택들에 있어서도 신중 또 신중을 기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충분히 보여줄 필요가 있고, 실제로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을 넘어 실제로 나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 


요즘 정부에서 나오는 저출산해결대책을 보면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주겠다는 식의 정책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돈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꾸 아이를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식의 정책은 출산자체를 별도의 보상이 필요한 행위로 인식하게 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 같다. 또한 아이를 낳으면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모든 보상을 "출산"에 연결시키면, 오히려 출산을 악용하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까도 우려가 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돈을 얼마 받으려고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출산은 그 자체로 완결되는 행위가 아닌, 육아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차라리 이미 아이를 낳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그 환경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삶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분투하고 괴롭게 살아가는 사회라면, 아무리 아이를 낳을 때마다 거금의 현금을 쥐어준다고 하더라도 출산율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일차적으로 나만의 소소한 저출산해결방안의 일환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애엄마가 아이들과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회사에 양해를 구할 일이 있으면 거침없이 구하고, 가정에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주변 가족, 친구들의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괜찮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누군가는 나를 보고 아이를 낳아도 저렇게 하면 일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하고 용기를 낼 것이고, 우리 딸들과 아들도 좀 더 편하게 아이가 있는 삶을 꿈꾸게 되지 않을까 싶다. 


육아와 출산은 결코 누구의 의무 또는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삶이 불행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구나 할 수는 없더라도, 용기 있는 자, 그리고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에게 주어진 빛나는 여정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의 자랑이자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 마치 비싼 값을 주고 샀지만 그 가치가 충분하며, 들 때마다 뿌듯함이 넘치는 명품가방처럼 말이다.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아이를 몇 명 낳을 건지를 물어보면,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 또는 둘을 낳겠다고 대답을 한다. 아직까지는 엄마의 삶이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가끔씩 엄마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에 지쳐 숨을 헐떡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조금 힘든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워킹맘 또는 워킹대디로써 자신의 인생을 영위하면서도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고,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쁨들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워킹맘 선배인 엄마가 좀 더 분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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