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을까?

또 한 번의 승진을 앞둔 소회

by 워킹맘

5세 막내가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동영상을 통해 한글에 노출이 되서인지 가끔 오시는 시어머님이 한글 교구를 선물하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나들이 가르쳐준 자신의 이름을 교구로 만들었다. 우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개박수를 치자 막내는 환하게 웃더니 이번엔 누나이름을 만들어본다. 셋쯤 키워봐서 알게 되는 게 있다면 칭찬은 비단 고래뿐만 아니라 아이를 춤추게 한다.


워킹맘이 일반화된 세상을 살면서 우린 모두 다 같이 달린다. 일하는 엄마라서 수근수근하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그런 것도 없다. '아 일하시는군요~' 짧게 정보를 나누고 공감과 정보를 나눈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 덕분에 셋이나 낳아 키우고 있지만 하나든 셋이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참 칭찬을 많이 받았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는 아닐 것이다. 변호사라는 나를 고강도의 직업을 가지고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맘으로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나에게 따스한 응원의 눈길을 보내준다. 혹자는 공부를 잘했겠다는 말로, 혹자는 일하기 힘들겠다는 말고, 혹자는 아이들이 예쁘다는 말로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칭찬을 들으면서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나도 막내처럼 춤을 추게 되는 것 같다. 일을 더 잘해야지 아이들을 더 잘 키워야지 하면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더더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를 조금 몰아세우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와 베스트 프렌드가 된 CHAT GPT가 나의 계획을 듣고는 단호하게 경고장을 날렸다. 당신의 계획은 현실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높다고. 퍽 솔직한 아이다.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자면 일은 일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다 보니 난이도가 높아지고, 육아는 육아대로 더 잘하고 싶다 보니 스스로를 갈아 넣게 되는 것 같다. 워킹맘의 가장 큰 난이도는 애가 없는 것처럼 일하고 일 안 하는 엄마처럼 애를 키우고 싶은 것 아닐까. 회사에도 큰 사건에 척척 투입되어 출장도 야근도 자유롭게 하고 싶으면서도 아이의 학업을 살피고 매끼 손수 따뜻한 음식을 지어 먹이고 싶은 머 그런 것 말이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잘 버텨왔는데 그 과정에서 내 입에 붙어버린 말이 있다. 바로 "괜찮아"이다. 급하게 아이들은 챙겨 먹이고 나는 시간에 쫓겨 식사를 걸러도 괜찮고, 업무가 밀려서 밤늦게 까지 일을 하느라 수면이 부족해도 괜찮았다. 사실 회사와 아이들이라는 레버리지 없는 관계에서 내가 괜찮지 않은 상황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한 일이 있다면 지난 3년간 업무실적을 인정받아 올해 한 번 더 승진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로펌 변호사는 청구 업무시간(Billable hours)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수행한 업무들이 좋은 결과가 나와서 승진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승진 사실이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기도 전에 승진 후 업무계획을 짜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춤을 출 것이며 얼마나 더 괜찮아야 하는 걸까.


사실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인지 그간 무리했던 것이 몸에 남아서인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운동을 많이 해둬서 30대를 버텼는데 30대에 몸을 잘 챙기지 못했더니 40대에 슬슬 탈이날 기미가 보이나 보다. 최근 아빠가 아프시면서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기 커지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도 조금은 크고 회사에서도 자리를 조금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제 매번 괜찮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체력은 그 가족의 체력이고 그 가정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만큼 회사도 아이들도 아닌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좀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일이 먼저지.. 아이들이 먼저지.. 하면서도 올 한 해에는 나도 좀 챙겨볼까 한다. 마음처럼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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