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그리고 다음 운동 - 움직임이 먼저인 수업
나는 내 수업에 대해
나만의 철학, 혹은 방향을 가지고 있다.
‘철학’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할 수 있지만,
분명한 기준 하나는 있다.
체육수업의 중심은
아이들의 ‘신체활동’이어야 한다는 것.
체육수업에도 유행과 흐름이 있었다.
처음 체육교과가 만들어졌을 때는
‘신체의 교육’이 중심이었다.
몸을 단련하고, 체력을 기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이후에는
신체를 통한 교육’이라는 흐름이 등장했다.
신체활동을 매개로
인지적·정의적 영역까지 함께 기르자는 방향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수업 모형이 소개되고,
토의·탐색·성찰이 강조된
꽤 화려한 체육수업들이 생겨났다.
체육관 안에 구역을 나누고,
활동보다 설명과 토론의 시간이 늘어났다.
공개수업과 수업대회에서
인정받는 수업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체육에서는
실제 학습시간과 과제 참여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축구 드리블을 가르칠 때도
한 줄로 세워 한 명씩 시키기보다,
여러 줄을 동시에 움직이게 해
서 있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런데 유행했던 몇몇 수업은
아이들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체 능력 외에도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화려한 평가’가 많아졌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 수업은 이렇게 정리된다.
신체활동이 전체 수업의 80~90%
평가는 수업을 위한 보조 수단
절차와 방식은 최대한 단순하게
평가는 학기 말,
아이들이 얼마나 성실히 참여했는지를
점검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평가를 위한 수업이 아니라,
수업을 위한 평가.
두 번째 기준은
즐거움과 자유로움의 보장이다.
현재 교육과정에서
고등학생의 체육수업은
주 2시간 남짓이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는 아이들.
그들에게 체육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체육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표정부터 달라진다.
마음이 풀리고,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싶어 한다.
내 수업의 처음 5~10분은 이렇다.
전 차시 복습,
오늘 수업 설명,
다음 차시 예고까지.
이 시간만큼은 정숙을 요구한다.
그 이후부터는 다르다.
준비운동부터 본 수업까지
아이들은 웃고, 이야기하며
자유롭게 신체활동에 참여한다.
체육관 안에 화장실과 정수기가 있다면
출입도 자유다.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수업 중
교사이자 사회자,
때로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된다.
수업계획서에는
아이들이 잠깐 웃을 수 있는
‘개그 포인트’도 하나씩 넣는다.
언어는
동네 형 같은 말투로.
돌아다니며
개별 피드백을 주고,
일상 이야기와 농담을 섞다 보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학기가 중반을 넘기고
수업이 어느 정도 구조화되면
공식적인 ‘자유시간’도 가능하다.
물론 조건은 있다.
반 전체의 합의,
그리고 나와의 협의.
산책, 피구, 축구, 게임.
대부분 가능하다.
아이들의 피로가 누적돼 보일 땐
스트레칭이나
폼롤러를 활용한 마사지 시간을 갖기도 한다.
수업의 절반은 스트레칭이나 마사지로,
절반은 불을 끄고
취침 시간을 준다.
내가 지향하는 체육수업은 이것이다.
평가를 위한 수업이 아닌
보여주기식 수업이 아닌
화려함보다 움직임이 살아 있는 수업
신체활동이 주가 되고,
자유롭지만 구조가 있는 수업.
그 방향을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고민하고,
조정하고, 다시 시도한다.
오늘도 몸과 마음을 훈련 중이다.
30편의 기록을 쓰며
나는 여전히 부족한 교사였고,
여전히 배우는 중인 어른이었다.
완성보다는 방향을,
결론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 기록은 여기서 잠시 멈추지만,
수업과 삶은 계속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솔직하게
‘수업과 삶 사이의 나’를 써보려 한다.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브런치북
<체육쌤의 하루는 아직 운동 중2 – 수업과 삶 사이에서〉
수업을 넘어, 삶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