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라는 이름의 태도
나는 정리병이 있다.
사실 ‘병’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그냥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정리된 공간을 보면
마음이 먼저 편해진다.
불필요한 물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생각도, 행동도 같이 가벼워진다.
오래된 것, 쓰지 않는 것을 버리고
그만큼 공간이 늘어나는 순간.
묘한 쾌감이 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공부한 흔적을 쓰레기통에 버리던 기억도 비슷하다.
그 순간부터
시험은 끝났고,
나는 자유였다.
생각해 보면
이 성향은 꽤 오래됐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누나들이
테이프를 거꾸로 말아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을 찍어내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사할 때나 짐 정리할 때면
나는 누나들에게
쓸모없는 책과 물건을 버리라며 잔소리를 했다.
대학 시절 자취방의 책들은
항상 키를 맞춰 정렬돼 있었고,
정독실을 떠날 땐
책상 위를 반드시 비웠다.
그래야
다음 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교사가 되고 나서도
이 습관은 이어졌다.
첫 학교에서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 정리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 학교부터는 달랐다.
교무실 책상은 늘 깔끔했다.
문제는 체육관이었다.
체육관은
수백 명의 학생이 드나드는 공간이고,
대부분 체육교사가 둘 이상 함께 쓴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정리해도
하루 만에 엉망이 된다.
그래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는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방학 중에 미리 나와
체육관 정리부터 한다.
오래된 교구, 파손된 교구는 버리고
창고는 종류별로 정리한다.
그렇게
새 학교, 새 학기를 맞는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교사와
정리에 대한 기준이 다르면
이게 꽤 스트레스가 된다.
학생들은 교육하면 바뀌지만,
동료교사는 그렇지 않다.
말하기도 어렵고,
말하지 않으면
어질러진 공간을
매번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동을 앞둔 마지막 해쯤이 되면
마음이 달라진다.
‘올해만 쓰고 떠날 곳인데.’
‘내 공간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마음이 덜 상한다.
정리 문제로
사람과 불편해지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숨이 트인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체육관이든, 도서관이든,
버스 좌석이든.
함께 쓰는 공간은
다음 사람을 위해
처음처럼 남겨져야 한다고.
문제는
이 원칙을
얼마나 지킬 것인가다.
새 학교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깔끔함을 끝까지 지킬지,
아니면
조금 내려놓을지.
아마도
정답은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일단은
모르겠는 채로 시작해보려 한다.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학생들을 보고,
대화해 보면서
나의 기준도 조금씩 조정해보려 한다.
정리는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니까.
오늘도 몸과 마음을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