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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28. 2022

여행이 아이를 키운다

엄마 중심의 여행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자라는지, 아이들의 사고가 얼마나 넓어지는지 매번 놀란다.


처음 기차여행을 했을 때였다. 독일에서 스위스까지 장장 7시간에 걸친 여행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이 기차 안에서 7시간... 가능할까? 그 둘을 통제해야 하는 나는.. 괜찮을까? 아이들은 기차를 타자마자 신이 났다. 창문에 계속 머리를 대고 신기한 듯 차창밖을 계속 바라보며 놀았다. 잠시 뒤에는 기차 승무원 아저씨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책과 기차 장난감을 가져다주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색칠도 하며 놀았다. 지루해질 무렵에는 식당칸에 가서 맛있는 간식을 먹었다. 이 친절한 기차에서는 승무원이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승객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주곤 했는데 초콜릿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지루해 하기 시작했을 때는 야심 차게 준비해 온 노트북을 꺼내 넘버블럭스 영상을 보여주었고, 조금 보다가 피곤해진 아이들은 차례차례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기차여행을 즐겼고, 잘해주었다.


기차를 갈아타야 할 때, 나는 짐과 유모차를 내려야 하니 언니랑 동생이랑 손잡고 조심히 내리라고 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내려주었고, 다시 탈 때도 먼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짐이 많다고 하니, 자기 물건이 들어있는 자기 가방은 스스로 메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여행이 거듭되고 나서는 너무 무겁거나 큰 짐은 챙기지 않고, 자기가 가방 안에 잘 넣고 잘 들 수 있는 만큼만 챙겨 넣는 습관이 생겼다.


네 살, 여섯 살 꼬맹이들의 첫 기차여행


독일에 갔을 때 독일 국기에 관심을 보였다. 폴란드에 있을 때는 항상 하얀색, 빨간색의 국기를 많이 봐오다가 또 다른 국기들이 많이 보이니 궁금했나 보다. 나는 "응 이건 독일 국기야. 까만색, 빨간색, 노란색 순서네. 외우기 힘드니까 '까빨노!'라고 외우면 되겠다!"라고 알려주었다. 스위스에 갔을 때는 스위스 국기를 따라 그리며 왜 십자가냐고 물었다. 폴란드에서 러시아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그들의 국기를 많이 걸어놓는데 그걸 보고 아이는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쟁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노랑과 파랑인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이는 행사나 버스킹에서는 늘 동전을 넣어주고 싶어 했다. 집에 와서는 여러 나라의 국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독일에 다녀온 지 육 개월도 훨씬 지난 얼마 전에 독일 국기를 색깔 순서에 맞게 잘 그려서 깜짝 놀라 물었더니 "엄마가 '까빨노'라고 알려줬잖아." 아이들의 기억력은 정말 놀랍다.


몇 번의 여행 후 아이의 그림에 국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가구회사 박물관인 비트라 하우스(VitraHaus)에 갔을 때, 독특한 가구들이 있는 쇼룸에서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았지만, 그 옆의 의자 디자인 박물관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지루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갔다. 입구에서 직원이 아이들을 위한 워크시트를 주었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형태, 재질, 패턴의 신기한 의자들이 많이 있는데, 워크시트에는 의자의 일부 패턴을 확대해서 7개의 사진이 실려 있고, 그 패턴의 의자를 찾으면 의자 밑에 적혀있는 번호를 적어오는 것이었다. 다 적어 오면 선물도 있었다. 여섯 살 수아는 그 워크시트와 연필을 받아 들자마자 미션을 수행하듯이 의자들을 관찰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여깄다!"


신이 나서 의자들을 발견했고, 아직 숫자 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지만, 의자의 번호를 보고 그림을 그리듯 숫자를 적어갔다. 아이들의 눈썰미는 정말 매서워서, 나보다도 훨씬 더 빨리, 잘 찾아냈다. 놀라워서 칭찬하자 수아는 더 신이 나서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고, 둘째 주아는 잘 모르면서 언니가 하는 대로 연필을 들고 뭔가 적는 척을 했다.


사실 날 위해서 온 곳인데, 이곳에서 아이는 새로운 것을 보고, 관찰하고, 집중하고, 미션을 수행하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곳에 대한 긍정정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Vitra Design Museum


스위스 호숫가로 여행을 갔을 때는 통유리 창 밖으로 호수와 거대한 산들이 줄지어 보였는데, 수아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기 노트를 펼쳐 창밖을 보며 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대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다. '아이가 어릴 때 여행해 봤자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라는 말도 종종 듣지만, 아이라는 무한한 잠재력 속에, 여행은,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아이의 무의식까지 가득 채워주는 엄청난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눈 뜨자마자 창밖의 풍경을 그리는 아이


여러 나라에 다니면서 언어가 달라지는 것도 예리하게 눈치챘다. 나는 폴란드어나 독일어를 잘 모르지만,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는 항상 쓰는 말이기에, 현지어로 자신 있게 말한다. 폴란드에서는 "진도브르(안녕하세요, 상점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직원과 마주하면 항상 쓰는 인사다). 징쿠이엥(고맙습니다)." 독일에 가서도 이전에 주워들은 게 있어서 "할로. 당케슌. 비테슌. 엔츌디궁." 마치 독일어를 하는 냥 인사한다. 상점을 들어갈 때 달라지는 나의 언어와 현지인들의 언어를 듣고 아이는 물어본다.


"여기는 무슨 말 써?"

"여긴 독일 말을 써."

"한번 해봐."

"구텐 탁, 구텐 모르겐. 당케 슌~"

이전에 주워들은 것과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기억나는 극소수의 것을 말해주었다.

"근데 엄마는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랑 다 이야기해?"

"응, 그 나라 말을 다 몰라도 영어로 말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하고도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 영어를 아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래서 엄마가 어느 나라 가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수아는 폴란드 국제학교에 와서 영어 쓰는 걸 부끄러워하고, 한국 친구들과 한국말만 하면서 지냈는데, 수많은 여행 이후 부쩍 영어에 관심을 갖고 잘하고 싶어 했다. "나도 영어 할 줄 아는데!" 하면서 큰 소리로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나인 텐!"을 외치는가 하면, 가끔은 동생에게 "No, not now!"라고 호통을 치거나 "Oh my gosh!"라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이곳에 와서도 따로 영어수업을 시키는 엄마들이 많은데, 나는 그저 영어에 대한 호기심과 필요성,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길게 보면 아이에게 더 큰 가르침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트램을 타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둘이서 유모차에서 일어나 유모차 앞을 들어 계단 위로 올려준다. 이건, 이곳 사람들이 내가 유모차를 가지고 다닐 때 항상 도와주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 것이다. 벌써부터 유모차도 번쩍 들어주고, 이렇게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한지 모른다. (유모차를 아예 타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트램 타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나라의 국기에 관심을 보인다


나는 아이들이 항상 좋아할 법한 놀이터나 키즈카페만 찾지는 않는다. 내가 가고 싶은 반 고흐 전시회에 데려가고, 의자 박물관에 가고, 내가 계절을 느끼고 싶은 공원을 함께 찾는다. 아이들 유치원에 가있을 때 장을 봐 두기보다, 하원하면 장 보러 함께 간다. 그러면 아이들은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알게 되고, 세상에 다양한 의자가 있다는 걸 눈으로 본다. 드넓은 공원에서 뛰어놀며 비둘기 먹이를 주고, 같이 어린이 카트를 밀고 장을 보며 자신이 먹고 싶을 것을 고르기도 하고, 과자와 젤리가 얼마인지도 알게 된다. 차 대신 트램을 타고 나가면 혼자서 자리를 잡고 의젓하게 앉아있거나, 손잡이를 꽉 잡아야 안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익힌다. 거창한 세계여행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소소한 일상의 여행에서도 배우고, 느끼고, 체득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여행이 아닌, 엄마 중심의 여행을 해도 괜찮다. 아이들은 무엇에서든 배우고, 어떤 것이든 자기의 시선에서 소화하는 능력이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엄마가 행복한 여행을 해야 아이들도 같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즈카페에 넣어 놓고 지루하게 핸드폰만 보며 앉아있는 엄마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그림을 설명해 주고, 박물관에서 재미있는 의자 찾기 게임을 하고, 공원에서 함께 도토리를 줍고, 오늘 저녁을 뭘 먹을지 같이 즐겁게 장을 보는 생동감 있는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 아이들도 더 즐거울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엄마 중심의 여행도.


반 고흐 전시회와 가을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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