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없음을 걱정하던 학생의 브랜드 창업기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
그녀가 내게 했던 첫 질문이었다. 2020년 즈음, 내가 열었던 특강에서 처음 만났다. Q&A시간이었다. 강의의 주제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이었는데, 그녀가 내게 물은 건 재능이었다. 어떤 디자이너를 동경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그 만한 작품은 그리지 못한다며, 혹시 재능이 없는 건 아닌지 물었다. 나는 답했다.
“아니요. 분명 재능있어요. 동경은 재능이 존재한다는 증거니까요.”
그녀를 응원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초짜강사로 질문한 학생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시간 안에 무사히 특강을 끝내는 것만이 나의 미션이었다. 내가 아는 지식*을 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기어코 그 말을 확신으로 받았다.
3년 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띠링. 인스타그램 DM알림이었다. 그녀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 글을 한참 읽어 내려가는데… 으악. 마지막 문장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제 브랜드를 만들어...’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그것도 직접 그린 그림으로?! 분명 자신은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녀는 건축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 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진짜 좋아했는데 어쩌다 이과를 가게 된 것이다. 이과에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곳을 찾다보니, 그게 건축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잘못 온 것 같았다. 자신은 2D(도화지 같은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가 좋은데 건축은 3D(입체, 공간을 만드는 작업)를 자꾸 요구하는 탓이었다. 졸업 후 다시 학교를 갔다. SADI(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 삼성에서 만든 소수정예 디자인 학교였다. 정확히 디자인이 뭘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디자인을 공부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뷰 도중 나도 모르게 이 대목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싸디(SADI)라고요? 싸디를 나와놓고 재능을 고민했던 거예요?”
그만큼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좀 과장하자면, 최강록 셰프가 세계3대 요리 학교를 졸업해놓고 ‘전 요리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계속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는 것과 같달까. 그러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그녀가 재능을 고민했던 분야는 드로잉(Drawing)이었다. SADI를 졸업하고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패션 일러스트 책을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패션 회사로 이직했다. 옷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디자인 하는 일을 했다. 오래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디렉션 같은 건 없었다. 알아서, 혼자, 많은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퇴근 시간은 거의 매일 자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인정 한 번 받지 못했다. 오히려 단톡방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안을 당하기 일쑤였다. 매일 눈물을 쏟았다. 누가봐도 버겁고 불합리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환경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실력에서 원인을 찾았다.
나의 특강을 찾아온 게 바로 이 즈음이었다. ‘SADI까지 가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취업해놓고 겨우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다니. 난 정말 안되려나봐.’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재능이 있었다면, 실력이 더 뛰어났다면 그 정도로는 힘들지 않았을거라고. 이 탓에 퇴사를 하고 나서도 쉽사리 자신을 위로하지 못했다. 어딘가로 떠나지도 못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제주도에서 열리는 청년 취업 및 창업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짐을 챙겨 내려갔다. 도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하러 가는거라 합리화하며.
그러나 이 합리화는 현실이 되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취업과 창업 중 한 가지 과정을 선택해야 했는데, 어차피 하는 ‘새로운 시작’이라면 한번도 해보지 않는 창업을 해보자 싶었다. 그녀가 만든 브랜드는 이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자신이 그린 드로잉을 티셔츠, 핸드폰 케이스 등에 입힌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였다.
참 대단하다 싶었다. 창업 프로그램은 제주도로 떠날 구실일 뿐이었는데 정말 브랜드를 만들다니. 번아웃이 그렇게 쉽게 극복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했던 디자인과 드로잉을 다시 하다니. 재능에 대한 확신이라도 갖게 된 것일까?
“인생의 시간을 제가 쓰고 싶은 데 쓰고 싶었어요.”
'그 와중에' 창업을 하고 브랜드를 만든 이유로 그녀가 전한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당시 특강에서 확인한 건 자신의 마음이었다고. 동경을 너머 질투까지 들었었는데, 돌아보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동경은 재능의 증거라는 말도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계속 해보자 다짐했다고 했다.
인생의 시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까지도 원하는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냉정하게 보면, 난 진로 전문가일 뿐 디자인이나 드로잉은 문외한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재능의 유무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장 잘 아는 법. 일개 강사의 말을 믿기로 ‘선택’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특강 날 그녀가 했던 건 질문이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식견이 짧아 팩트만 뱉고 말았지만, 돌아보면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 제가 하고 싶은 그 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세요. 정말 하고 싶단 말이에요.’ 그녀에게 배웠다.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건 재능이나 실력 같은 게 아닌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싶다는 바람이라는 걸.
인터뷰 후 그녀는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창업을 해보니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일러스트가 먼저 사랑을 받아야 제품도 사랑 받는다는 걸 몸소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림도 다듬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먼저 자리를 잡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다고 했다. 공부도 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회사들의 문도 직접 두드려 볼 계획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하고 싶고 욕심을 느끼는 게 있으면 해야겠더라고요.”
Likid. 그녀가 만든 브랜드 이름이다. Like kid.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는 게 있으면 일단 만져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보는 아이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말이다. 참 잘 지었다.
*동경은 재능이 존재한다는 증거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동경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우와!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라고 느끼는 거잖아요. 신기하지 않나요? 동경하는 대상에 대한 어떠한 지식이나 정보도 없이 찰나에 본 것만으로 그렇게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다니. 그렇게 느끼게끔 뇌에 세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석처럼요. N극과 S극이 만나면 촥 달라붙듯, 재능(N극)이 뇌에 잠재되어 있던 거예요.(어려운 말로는 관련 뇌신경연결망이 발달되어 있는 것)그러다 마침내 동경 대상의 동경 포인트(S극)를 만나 반응을 한 거죠. '우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