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바뀌면 실패한 걸까?

패션사진작가를 꿈꿨던 웨딩사진가

by 강새봄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만, 패션이 아니라 웨딩이었다.


한솔이 수업을 찾은 건 2018년 즈음이었다. 종강 날, 그녀는 말했다. 패션 사진을 찍겠다고. 패션 사진작가는 그녀가 우연히 만난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가진 꿈이자 최종 목표였다. 종강 후 인스타그램으로 종종 안부를 물었다. 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문득 나의 한 때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던 참이었다. 한솔에게 연락했다. 자신이 일하는 스튜디오 오라고 했다. 학생의 일터를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패션 사진이라니! 그 화려한 공간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설레고 긴장되었다.


드디어 촬영 날이 되었다. 네이버 지도에 그녀가 알려준 주소를 적어 내려가는데... 어? 웨딩 스튜디오? 잘못 입력한건가 싶어 다시한번 한 자 한 자 확인하며 자판을 눌렀다. 역시 웨딩 스튜디오였다. 의아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다른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한솔을 기다릴 겸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분장실 안 쪽 행거엔 웨딩 드레스 2~3벌이 걸려있었다. 대기실 테이블 위엔 고급 가죽이 덧입혀진 웨딩 사진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머릿 속에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일이 잘 안 풀린걸까? 비전공자(한솔의 전공은 아동심리학)로서 한계가 있었던 걸까? 견디지 못한걸까?


KakaoTalk_20260212_102238054_01.jpg?type=w966 촬영 날 한솔 몰래 찍은 뒷모습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때 한솔이 코트 앞 섬을 움켜쥐며 들어왔다. 잠깐 아이스 브레이킹 겸 이야기를 나누자며 차를 건넸다. 여전히 진로교육을 하고 있는 내가 대단하다 말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여전히 사진을 하고 있는 네가 더 대단하다고. 차마 왜 웨딩사진인지는 묻지 않았다. 아니, 한솔의 다음 말 덕분에 더이상 질문이 필요치 않았다.


"행복해요. 요즘."


할수록 사진이 더 좋다고 했다. 잠깐 슬럼프가 오기도 했지만, 그때도 실력이 정체된 것 같아 힘들었을 뿐 사진은 계속 좋았다고 했다.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보낸 7년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패션 사진 작가로 살지 않는 삶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 생활이 내 인생에 좋은 방향일까?


수업 후 한솔은 패션 사진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유명 연예인도 보고, 동경했던 분야의 일원이 된 것도 좋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회사(스튜디오)에서 원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간극이 너무 컸다.


첫 번째로는 월급. 어시스트에서 메인이 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다른 어시스트들처럼 부모님이 금전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독립하여 자신의 작품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월급 50만원을 받으며 기다리기엔 너무 먼 시간이었다.


또 몇 년을 버틴다고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네트워크가 없거나 셀링(자기PR)을 잘하지 못하면 아무리 유명 작가 밑에서 일했어도 어시스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물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내 인생에 좋은 방향일까?' 잘 된 작가들도 여럿 보았다. 패션 잡지의 메인 화보를 찍는 분들. 그러나 한솔의 눈엔 그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적막 가득한 촬영장 분위기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달랐다. 모델의 '일'이 포즈를 취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해볼까요?' 같은 다정한 말은 필요 없었다. 대개 현장에서 오가는 말은 당연한 것을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책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내 생각대로' 찍을 수 없었다. 상업 사진이니까 클라이언트의 뜻이 중요했다. 남의 돈으로 내 예술을 할 순 없었다.


KakaoTalk_20260212_102238054.jpg?type=w966 역시 몰래 찍었다. 프로가 되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찡해서 남기고 싶었다.


사실 그녀는 패션 사진 스튜디에오 들어가기 전, 제품 사진을 찍었었다. 수업을 찾아왔을 때 이미 모 전자 브랜드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어진대로'만 찍는 게 답답했다. 매번 같은 배경에서 같은 제품을 각도만 달리해서 찍는 것이 영 재미가 없었다. 그 참에 자신의 생각대로 컨셉도 잡고, 스토리도 입혀 찍을 수 있다고 믿었던 패션 쪽으로 직진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었는데. 패션은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우선시 해야했다.


이 쯤에서 나는 궁금했다. 웨딩이라고 다를까? 언젠가 뉴욕에서 온 사진 작가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지인이 웨딩 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그 분이 말하길, '웨딩 사진은... 좀...'. 대개 패션 쪽 사람들은 웨딩 사진을 '공장을 돌린다'고 낮춰 말한다. 매번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기 보다는 피사체(신랑, 신부)를 벽 앞에 세워두고 반복 촬영만 하는 탓이었다. 제품 사진을 찍을 때와 달라진 건 피사체 뿐일텐데, 어떻게 할수록 더 좋았을까?



내가 찍는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다음 스텝으로 완전 웨딩 사진만 전문으로 하는 곳을 찾지 않았다. 또, 어쨌든 '패션 사진작가'는 그녀의 최종 목표이자 꿈이었으니까 웨딩과 광고 사진을 같이 하는 작가님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업무도 반반씩 했다. 패션 사진 어시스턴트도 하고, 웨딩 사진 조명도 치고.


패션은 생각한대로였다. 하지만 웨딩이 의외였다. 할수록 배우고 싶고,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선배들은 공장 돌리듯 셔터만 누르고 있지 않았다.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행복한 순간을 담아야 하잖아요. 실수가 있으면 안되고, 정확하고 깔끔해야 해요."


또, 그녀가 찾은 스튜디오는 프로세스가 조금 다르기도 했다. 다른 스튜디오 대비 금액이 높고, 대표가 이름 있는 패션 사진 작가다 보니 고객들이 일반적인 사진을 찍고 싶어하지 않았다. 촬영 2~3주 전 신랑과 신부를 만나 컨셉을 논의했다. 그들이 원하는 느낌을 말하고, 한솔도 작가로서 좋은 스타일을 제안했다. 덕분에 매번 다른 사람과 다른 컨셉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람들의 행복한 때를 찍는 것도 생각지 못하게 좋았다. 또, 행복한 사진을 찍으며 '어머니,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어머, 우리 어머니도...' 같은 같은 다정한 말들을 나누는 것도 좋았다. 이 덕에 한솔은 지금의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지 2년 째 되던 해, 웨딩 사진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에게 사진은 함께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시간


사진의 무엇이 그렇게나 좋냐고 물으니 한솔이 말했다.


"제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를 고민해보니까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대화하면서 그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게 좋아요."


마냥 '주어진대로'만 찍는 게 아니어서 좋은 줄 알았는데, 궁극에 한솔에게 사진은 함께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축하선물을 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KakaoTalk_20260212_102352784.jpg?type=w966 포토그래퍼, 장한솔

진로는 목표가 아닌 여정,

좇을 건 답이 아닌 질문


수업 마지막 날이면 학생들에게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찾은 그것(직업, 직무)을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진로는 여정이니까, 그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잘 만들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한솔의 7년이 이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진이 좋다!'를 시작으로 제품, 패션, 웨딩까지. 순차적으로 분야를 옮겨가며 사진작가란 업을 자신에게 맞게 다듬어나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자신을 향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 덕분. 목표로 했던 패션 사진계에 발을 디뎠다고 좋아하만 하지도, 또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만 하지도 않았다. 대신 '이런 생활이 내 인생에 좋은 방향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웨딩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보다 좋다는 안도감으로 끝내지 않았다. '나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추구하는 건 무엇일까?'를 계속 물었다.


또한, '사진이 좋다!'로 시작한 만큼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 나아가 원하는 걸 원하는대로 하겠다는 마음도 함부로 내려놓지 않았다. 대개 기대와 다르면 실망에 아예 다른 길을 나서곤 하는데, 한솔은 자신이 선택한 그 길에 남았다. 패션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이 추구하는 것과 달랐어도 여전히 패션 사진작가라는 꿈을 품고 패션과 웨딩을 둘다 하는 곳을 찾았다. 한번 더 질문을 품고 시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왜 안 된 경우만 가정해서 질문했을까? 오히려 나아가는 길일 수 있는데. 오늘 밤은 나에게 물어야겠다. 나에게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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