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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13. 2022

뭘 그렇게 울고 그래

 “내가 사랑하는 책을 쓴 작가와 함께 늙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겠지요. 저는 나이 듦이 억울할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최갑수 작가가 말했고 북토크를 진행하던 책방 주인은 목소리를 떨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주변에 있던 독자들이 으응- 하는 소리를 내며, 몇몇은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갔고 몇몇은 눈을 쓸었다.





 수원을 찾은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7년? 8년? 고등학생이던 내가 대학생이던 누나의 자취방에 몇 번 놀러간 게 다였으니 말이다. 사당역에서 수원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40분 정도 더 걸렸던 거 같다. 책방까지는 더 멀었다. 버스를 환승해 훨씬 걸어야 했다. 정말 이런 골목에 책방이 있단 말이야? 이런 곳을 누가 찾아오기나 한다고? 난 입은 재킷을 벗고 셔츠를 펄럭거리며 가슴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옆에서 친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나 콧물이 쏟아질 때, 폭우나 폭포 같은 비유를 들고는 하지 않나. 그 정도였다. 우리가 흘리는 땀은 도저히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울음처럼 창피했고 귀찮았고 짜증났다.


 친구는 수원 토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가 수원의 한 동네 책방에서 북 토크를 한다고, 같이 가달라는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자기도 이 동네는 처음 와본다면서 그는 하늘을 살폈다. 전봇대에 걸린 까만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길고 복잡하게 늘어져 있었다. 요즘은 땅에 매설한다는데, 그 동네는 높고 탁한 색깔의 전봇대가 여전히 세워져 있었다. 동네가 참… 낡았네. 부유함이라고는, 세련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볕은 수직으로 땅에 떨어졌다. 뜨거웠다. 구름이라고는 정말 한 점도 없었다. 내가 지쳐가고 있나…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몇 개의 골목을 지나치고 나서야 책방에 도착했다. 책방 주인은 그간 인스타그램으로 봐왔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얗고 둥그런 얼굴을 한 젊은 남자였다.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작은 책방을 열었다는 그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한 바탕 퇴사 에세이 열풍이 휩쓸었을 때, 퇴사하고 욜로로 살다가 골로 가는 거라며 어떤 이들이 조소와 내려다봄을 유흥처럼 즐겼을 때, 그는 어땠을까? 직장 다닐 때만큼의 돈을 벌 수 없는 책방을 연 그는… 무언가를 견디지 않았을까. 그는 나의 생각을 알 리 없었고 열심히 의자를 세팅했다.



 여기 앉으시면 돼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말하자 최갑수 작가는 능숙하게 자신을 소개했고, 자신의 아내를 소개했고, 자신의 신간 여행집을 소개했다. 지루했다. 문장만큼 말이 멋진 사람은 아니군. 나는 뻐근해지는 목과 어깨를 풀며 몰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카톡에 답장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하트도 누르고…. 그래도 책은 한 권 샀으니 사인이라도 받자, 나는 스무 명에 달하는 독자들 틈에 섞여 존재감 없이 사라질 작정이었다. 지루한 북 토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나는 휴대폰을 다시 봤다. 5시 반이었다. 조금 더 늦어지면 도로가 막힐 텐데… 어떤 목적지로 향하는 차들이 핸들을 쥐고 빠르게 달릴 텐데. 서로가 서로의 앞길을 막으며, 그래서 경적을 울리며. 그러면서 버스에 앉은 나의 속도를 늦출 텐데….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벌떡 일어나더니 서점 밖으로 나가 전화를 했다. 그는 한참을 문 앞을 서성이다가 화장실로 갔다. 그래, 역시 쟤나 나나 도망치는 데는 선수지. 그 자리를 지겨워 하고 있는 건 아마 나와 내 친구 뿐일지도 몰랐다.


“이제 북 토크를 마무리 해볼까 해요. 작가님,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책방 주인이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는 뜸을 들이다가 옅게 웃더니 말했다. 여러분은 이런 데에 왜 오시냐고. 나 같은 작가를 보러 왜 이렇게까지 공들이시냐고. 자긴 늙고 재미없는 사람일 뿐인데…. 책방 주인은 밝게 웃으면서 섭섭한 체 말했다. 무슨 소리세요. 제 최애 작가님이신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에 있고 어디선가 또 글을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얼마나 기쁜데요. 그 뒤였다. 이 글의 첫 문단에서 큰 따옴표로 적어 놓은 문장이 작가의 입에서 발화된 것은. 죄송합니다 갑자기 울음이…. 책방 주인이 코를 훔쳤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마치고 옆에 앉고 있는 친구에게 들킬까 봐. 들켜도 뭐 창피할 것도 없겠지만…. 그냥.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작가는 내가 가져온 책에다 싸인하며 문장을 적었다. 전강산 님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봄에 최갑수가.



 해가 길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부서진 듯 일부만 이글거렸지만. 핏빛으로 뻗은 줄기는 하늘을 향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떨어지는 볕을 견뎠던 그때처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바람이 불었다. 목, 가슴, 등이 땀 때문에 뜨거웠는데. 정말로 못 견디게 뜨거웠는데…. 쏟아지던 땀이 말라 어느새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지치지 않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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