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9월이었다. 난 군 복무를 마치고 갓 복학한(인정하기 싫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아저씨 같은) 더벅머리의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 기는 것을 끔찍이도 사수하던 시절이었다) 복학생이었고, 지수는 새내기 신입생이었다. 대학교 1학년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뭐든지 전부 재밌게만 느껴지는 시기일 텐데, 지수는 조금 달라 보였다.
지수와 나는 전공수업 시간에 만났는데 그 수업은 주로 고학번들이 듣는 인기 없는 수업이었다. 지수는 고학년들 틈에서 그녀의 무리들과 함께, 수업에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묻어가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 때문에 (혹은 숨길 수 없는 존재감 때문에) 자주 교수님의 눈에 띄어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고, 그녀와 친구들은 참신한 오답으로 대답하며 선배들의 실소를 터뜨렸다. 선배들의 실소에 지수와 친구들은 창피한지 얼굴을 붉혔지만 새내기 나름의 산뜻함이 묻어 나왔기 때문에 선배들은 그녀들을 전부 귀엽게 봤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수는 정말 쾌활한 아이처럼 느껴지겠지만 내 눈엔 그렇지 않았다. 지수의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았으나, 그녀는 주변의 친구들의 기분과 맥락을 파악한 뒤에 적당히 맞춰주는 듯 보였다. 무언가 항상 지겨워하는 듯했으나 그것을 아주 영리한 가면으로 숨기는 거 같았다.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어이 잘 맞춰주고야 마는, 그러니까 한쪽 다리가 짧은 의자 위에서 어떻게든 견디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지만 그즈음 나는 의자를 버리고 걷기를 택한 시기였다.
덜거덕 거려도 앉아있음에 만족하는 건, 자신에게 징벌적인 횡포임을 느꼈기에.
여하튼, 그녀의 행동은 내가 지금껏 아주 능숙하게 해왔던 가면 놀음이었기에 난 그녀의 가면질(?)을 아주 잘 알아챌 수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쟤는 나와 같은 광대임이 분명하다!
그 수업에서 조를 짜게 됐고, 교수님은 1학년이었던 지수와 친구들을 한 명씩 찢어 선배들의 그룹에 넣었다. 원래는 그녀와 동명이인이었던 다른 지수가 내가 속한 조에 올 예정이었지만 그녀 특유의 주접(!)을 떨다가 그만 교수님이 그녀를 우리 조로 넣었다. 그녀의 주접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기억나지는 않으나 (만날 때마다 주접을 하도 많이 떨었기 때문에) 그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나라는 사람을 만나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지수와 나는 둘 다 술과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가면 놀음을 일삼는 광대였으니 죽이 잘 맞았다.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으며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안줏거리 삼아 물어뜯었다. 나는 취하면 자주 그녀에게 이제 그만 덜거덕 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호통 치기도 했다. 사실 나도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시험기간이 되면 같이 공부하자며 카페를 갔다. 나는 10분도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지수는 나와 달리 집중력과 단기 기억력이 뛰어났다. 나는 그런 그녀의 공부를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훼방 놓았으며 결국에는 다시 술을 마시러 가는 만행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술을 마실 때는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마음의 슬픔을 털어놓기도 했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십 대 중반이 돼서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광대들은 구경꾼들에게는 한없이 가면질을 할 수 있으나 자신과 같은 광대를 만나면 그 가면이 너무나도 허술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지수와 나는 서로의 가면 너머를 알아주길 바랐고 고작 어릿광대였던 우리는 그것까지는 해석할 수 없었기에, 너무나도 많이 싸웠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던 지수는 오전 수업에 늦지 않고 잘 왔지만. 난 학교 멀리서 자취를 했고 매일 같이 지각을 일삼는 배울 것 없는 선배였다. 쨌든 나는 두 살 연장자로서 더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생각했기 때문에, 지각을 하면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화해의 표시로 항상 사서 그녀에게 전하고는 했다. 지금의 지수는 당시의 그런 나를 보고, 지각한 주제에 아메리카노 두 잔을 당당하게 들고 (학생들과 교수의 눈치 따위 보지 않은 채) 강의실에 입장하면서 나머지 한 잔은 자신에게 주는 나를 보고는, 쟤는 찐성 돌아이가 맞구나-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나 자주 싸우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화해한 뒤 술로 우애를 다지는 되바라진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졸업을 앞둔 흔한 고학력 백수가 됐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직장을 번번이 때려치웠으며 지수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이 길이 나의 길인 거 같아 걷다가도 지평선을 보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리기 일수였다. 내가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모두가 나의 끈기 없음에 혀를 찼지만 그녀는 달랐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관두는 게 맞다며 같이 퇴사 축하 음주를 해줬다. 지수는 정규직 입사 난이도의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거나 정규직들 상사들의 비위를 맞춰주다가 기를 쏙 빨리고 나면 나와 술을 마시곤 했다. 우린 서로에게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는 광대 정도는 된 것이다. 지평선이 보이려다 말고... 보이려다 말고... 바보 같은 걸음을 계속하고 있어도 우린 서로의 광대짓에 웃으며 주저앉은 채 술이나 마셨다.
하지만 6년 지기가 되어도 (고학력 백수가 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가면 너머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 조용히 운다는 것이다. 왜 우는지 묻지는 않아도 서로가 울었단 사실은 눈치챌 수 있었기에, 그저 같이 술잔을 흘러주기만 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술을 마시면, 서로 자신의 우아한 인품 덕분에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니 자신에게 잘하라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는 했다.
술만 취하면 친구들에게 전화해 주정을 부리던 술버릇은 20대 초반에 고쳤지만 (대신 카톡을 남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난 20대 후반이 되어도 여전히 그녀에게는 술에 취해 통화를 한다. 그녀는 여전한 잔소리와 익숙한 레퍼토리로, 이렇게 주정뱅이의 통화 받아주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며 패악질(!)을 부린다. 나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못지않은 패악질로 응수하며 결국엔 서로 크헝-하고 코를 먹을 정도로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서로 잘하려고 너무 노력하고 참는 관계는 슬프기에, 우린 적당히 자신의 슬픔을 참아내고 사는 것이다.
어쩌면 나와 지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면 놀음을 일삼는 광대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아마도 쭉 불안할 것이다. 아마도 쭉 광대짓에 지쳐 서로 술잔을 부딪힐 것이다. 아마도 쭉 서로의 가면 너머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같은 술을 마신다는 것. 같이 걸어간다는 것. 그것뿐이면 된다. 이런 불안정은 오히려 우리를 더 걷게 만드는 연료일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린 서로에게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우린 지평선을 찾으며, 서로의 광대짓을 함께 감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