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담요

요즘군대

by 강수화


2025년 7월 입대한 둘째 아들이 한 달 간 훈련을 마치고 2박 3일 휴가를 나왔다.

현관에 들어서며 늠름한 모습으로 ‘필승!’을 외쳤다.

입대하기 전 약간 뚱뚱한 편에 속했는데, 살이 빠지고 단단한 근육이 붙어 보기 좋고 건강하게 느껴졌다.

“후와아아! 대한민국국가 쥑이네, 30여일의 짧은 기간에 한 인간을 이렇게 개조시키다니!”

거실로 들어선 그는 군복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군대에서 부모에게 선물이라도 주었을까?’

그의 모든 것이 신기하여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은 물건은 상하의 속옷 한 벌과 양말 두 켤레’였다. 귀대할 때 입고 들어갈 여분이라 했다.

옷과 양말을 살피던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속옷은 최고급 등산용 재질로 땀이나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신소재였고, 양말은 100% 고급 순면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속옷과 양말, 아빠 주고 가면 안 되겠니? 아빠는 이런 고급 제품 한 번도 걸친 적이 없어서….

-Ok! 자대 배치되면 하나씩 빼내볼게요, ‘영창’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푸하하하…킄킄킄킄....

아들 소지품 하나하나마다 처음 보는 보물인양 신기해하며 농을 주고받는 사이, 곁에서 빙그레 웃기만 하던 남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너희 담요는 어때?

-담요? 글쎄.

-훈련병 너도나도 동급인데 군복 세탁과 다림질은 누가 하니?

-호실별 세탁기ㆍ건조기가 갖춰져 있고, 다림질은 따로 하지 않아.

-군복을 다리지 않는다고?
-예스! 건조기 돌려 바로 입으면 돼.

-뜨거운 열로 건조하니 다림질 효과가 있구나. 참 세상 좋아졌다.

부자간 대화를 들으며, 아들의 군복을 살피던 나는 다림질한 듯 반듯하고 구김 하나 없는 옷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아무 준비 없이 늙어가는 줄 알았는데, 세금을 많이 내고 대한민국 군대를 이렇게 발전시켰구나, 그나마 국가에 최소한의 의무는 한 듯하다.

-우리 때는 신참들이 선임 병 군복 맨손으로 빨고, ‘칼각’으로 다리는 게 큰 임무였는데, 요즘 군대 정말 좋아졌다. 근데 담요는 어떤 종류야?

-종류? What does it mean, Dad?

-아니, 뭐어 촉감이 좋다거나, 재질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글쎄, 나도 엄마가 군복 재질 좋다고 하니 그런가 싶지, 차이는 모르겠어.

-담요 색깔은, 여름인데 덥지는 않아?

-아빠는 군용담요가 탐나? 아까부터 담요에 대해서만 물어?

-그러게, 고스톱 칠 때 필요한가보다, 나중에 하나 몰래 빼서 아빠에게 선물로 드려라.

-어휴우! 난 보급품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사용하는 거라도 빼내려다 들켜볼게.

-허허허허~~핥핥핥핥….

이런저런 농담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두어 시간을 보낸 후, 아들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아들이 벗어놓은 허물(?)들을 세탁하고 정리하느라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남편은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여전히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그의 얼굴에 나간 정신을 부르는 듯한 시늉으로 나의 손을 어른거렸다.

"어어? 아아!"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했어? 군대에서 연애하던 다방 아가씨, 아니면 담요 몰래 훔치다 들킨 일?

-야아 정말 귀신은 속여도 당신은 못 속이겠군.


남편은 1980년대 후반 ROTC 소위로 임관하여 강원도 최전방 특수무기지원부대에서 복무했다. 이듬해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 서울 여의도 임시부대로 차출되었다. 직책은 군수보급품 담당 ‘인사과장’이었다. 행사 준비는 4개월 전부터, 여의도광장을 통째로 빌려 시작했다.

장소만 서울일 뿐 군부대나 다를 바 없었지만, 밤이면 별 대신 네온사인이 보이고, 주말 외출 시 도시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일 등에서 설레고 벅찬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외출외박이 허용 되는대로 아름다운 서울을 마음껏 호흡했다.


어느 주말, 친구가 면회를 온다는 소식에 면회실로 가니 그의 소속 부대원이 면회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여의도에서 구성된 임시 부대원이었다. 기혼자였던지 아내로 보이는 여성과 갓난아기와 서너 살로 보이는 두 아이와 함께였다.

직속상관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서며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동시에 황급히 왼손에 있던 검정봉지를 뒤로 감췄다.

-뭐냐?

-저어, 저기, 네에, 빨랫감입니다!

-….

당시 보급품 중 가장 빈번하게 없어지는 품목이 군용담요였다. 재고확인을 가장 철저히 하도록 명령이 하달되는 품목 중 하나였다.

아내와 아이들 옷차림에서 궁색함이 느껴져 더는 묻지 않고 친구와 함께 먼저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주말이었다.

사무실에서 남편과 주임상사, 중사, 세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그 병장이 외출허가를 받으러 왔다. 남편이 직인을 들고 막 찍으려는 순간, 주임상사가 황급히 남편의 손을 제지하며 병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병장 ○○○, 상의 탈의 실시!

우물쭈물하며 옷을 벗지 않으려하자 중사가 강제로 윗옷을 벗겼다.

“!”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노끈으로 칭칭 동여맨 몸을 둘러싸고 있는 건 담요 였다.


-과장님, 이XX 당장 영창 보내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담요가 5분의1이나 줄어…, 어떤 놈인가 했더니 바로 너 같은 쥐새끼였군, 허어! 이XX가? 차렷, 열중 쉬엇, 뒤로오 돌앗….

주임상사와 중사가 번갈아가며 그를 욕보이자, 남편이 두 사람을 말렸다.

-○○○병장! 오늘 외출 금지다!

-네에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의 바들바들 떠는 얼굴엔 지난 번 봉지를 들먹이지 않을까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막사로 돌아가게!

그러자 주임상사와 중사가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난리를 피웠다.

“소대장님! 이런 놈 봐줬다간 자기들 뿐 아니라 과장님까지 영창 갈지 모릅니다,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벌을 줘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담요가 매주 수십 개씩 사라진다 싶었는데….”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한 임시 부대였으므로 행정반 사무실이 일반 군대 같지 않았다. 주변엔 천막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막사가 빙 둘러있었다.

군데군데 틈으로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보는 눈알들이 반짝였다.

하는 수 없이 10kg군장 메고 운동장 다섯 바퀴 뛰라고 명령했다.

-과장님! 열 바퀴는 돌려야 합니다. 이런 놈은 뛰다가 죽어도….

-다섯 바퀴만 시키게! 기온이 너무 높잖아.

-아닙니다, 과장님,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해 세꺄야! 빨리 군장 메고, 실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편은 떠밀리듯 그를 한여름 여의도 광장으로 내몰고 말았다. 기온이 33~35도를 웃도는 8월의 혹독한 날씨였다.

몇 바퀴째였는지…, 그는 기어이 실신하여 의무실로 옮겨졌다.


국군의 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각자의 부대로 복귀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날 사무실로 그 병장이 불쑥 찾아왔다.

-충성! 중위님, 주소를 알고 싶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로 전국 각 부대에서 임시 차출된 군인들이었으므로 각자 소속부대가 달랐다. 장교는 일반병사들의 소속부대를 알려면 알 수 있었지만 병사들은 상관의 소속부대를 알기 어려웠다.

-부대로 돌아가면 곧 제대하겠군.

-네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더라, 가족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게!

-네에! 저어… 부대가 어디신지… 아니면 집 주소라도….

-각자 열심히 사는 것으로 ‘퉁!’치자!

병장은 기어이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아들이 2박3일의 짧은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국가의 몸인 군인신분에게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남편에게 들은 「군용담요」에 얽힌 이야기를 써서 딱지로 접어 아들 군복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족방에 둘째아들의 글이 올라왔다.

“충성! 김중위님 주소를 알고 있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필승!”


(202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