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말표신발은 어디로 달아났을까?

by 강수화

사진:인터넷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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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나 신발 등을 살 때 여간 힘들고 까다롭지 않다. 유별나게 멋에 신경 쓰는 사람도,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 탓도 아니다. 오로지 애매모호(?)한 나의 신체 때문이다.

1962년생인 나는 그 시대 한국 여성의 평균 키에 한참 모자란다. 반에서 작은 순서로 1~5번을 넘어간 적 없으니.

신장이 짧으면 짧은 대로, 바지나 소매 길이 등을 몸에 맞게 자르면 간단하다. 키에 어울리지 않는 가슴과 허리 엉덩이 사이즈가 문제였다.

브래지어 사이즈는 ‘밑가슴둘레 75, 컵-사이즈 D’이다. 신장 170cm이상의 동양 여성들에게조차 그리 흔치 않은 사이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엉덩이 둘레도 신장에 비해 만만찮아 브랜드별 55나 66 사이즈를 입는다. 반면 허리는 이 세 불균형과 또 다른 엇박자로 비율에 맞지 않는다.

상ㆍ하의 할 것 없이 옷을 사면 곧바로 ‘수선실’로 직행하는 게 수순이다. 줄이고 늘리고 자르고 덧대고….

기성복을 사자마자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곧바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다른 종(種)인 듯 신비한 존재로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수선의 기술도 나날이 늘어 단골집에 맡기면 알아서 척척 고쳐주니, 이럭저럭 적응하고 산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참을만(?)하다.


내 신체 중 가장 ‘난코스’는 발이다. 225~230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치수지만, 엄지발가락이 유난히 길고 발볼이 좁아, 길이가 맞으면 폭이 넓고, 폭이 맞으면 길이가 답답하기 예사다. 모양ㆍ디자인보다 사이즈 위주의 선택이 먼저다. 그마저 신고 다니다보면 엄지발가락이 아프거나. 폭이 넓어져 헐렁하기 일쑤다.

어쩌다 제조업체 직원이 잠깐 졸았든지, 한 눈 팔다 잘못 제작된(?) 옷이나 신발이 꼭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복권에라도 당첨된 양, 색깔별로 구매하는 ‘고약한’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남편 옷도 모두 내가 코디해주기에, 그가 옷 방에 드나들 일은 없다. 그러나 신발장은 연중무휴 셀프시스템 가동 중이어서, 각자 알아서 신고 다닌다.

아이들이 올망졸망할 때는 쑥쑥 커가는 발들로 큰아이 것을 동생에게 물려주느라, 아이들 신발들로 가득했었다. 내 신발은 창고 선반과 현관 구석 등에 아무렇게나 처박히기 일쑤였다.

아들들이 점점 커가며, 하나 둘씩 독립세대로 집을 떠나자, 숨어있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빼앗긴 지분이 너무 억울했던지, 하나 둘 그 자리를 점령해 들어갔다.

어느 시점부터 맨 위 세 칸에 남편과 아이들 슬리퍼 등이 차지하고, 나머지 7칸이 모두 내 소유로 등록되었다.

신발장 열 때마다 남편의 잔소리가 예사였다.

-거 참 희한한 종(種)일세, 왜 똑같은 신발을 두 세 개씩…, 당신이 이멜다야?

-내 발 사이즈가, 말하자면 희귀질환이야, 어쩌다 맞는 게 있으면 색깔별로 사서….

-병이다 병! 근데 이상한 점은, 우리 집에서 대소사 치를 때는 신발장이 텅 비었던데, 무슨 곡절이지?

-아아 그거? ‘너거 아부지’가 언제 신발장 열고는 ‘아들 신발은 몇 켤레 안 되고 온통 며느리 것만 보인다’며 어찌나 무섭게 꾸중하시는지, 행사 있을 때마다 박스에 때려 넣고 창고에 숨겨놓았었어, 그러니까 시댁 식구들이 집에 와서 냉장고나 신발장, 옷장 등을 열면 안 되는 거야! 국회에서 세금 축내는 기생충들 그런 법안 발의해서 통과시킬 생각은 안하고….

-아무래도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

-대신 당신은 가장 전망 좋은 ‘펜트하우스’ 지분 주었잖아. 아래 것들 내려다보며 부릴 수 있도록!

-비워라 비워! 저렇게 많으면 고르기도 힘들지 않아? 뭐든 단순화시켜야 머리가 맑아, ‘텅 빈 충만’ 몰라?

-그러게, 내가 뭐랬어, 당신이 청와대 들어갔더라면 나의 비정상적 쇼핑 행태가 완전히 고쳐졌을 텐데, 영부인은 신체 사이즈가 국가기관에 기록돼, 그날그날 입을 옷이 척척 대령된다잖아, 비행기 트랩 오르며 손 흔드는 연습까지 다 마친 상태인데… 당신이 준비 안 된 거잖아!

-기이한 궤변인데… 이상하게 내가 잘못한 생각이 들지?

-그치? 그러니 잔소리 뚝!


살다보면 상대에게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싸우기보다 자포자기 쪽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든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신발장에 점점 무심해져갔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내 신발은 하나 둘 ‘영지’를 늘려갔다.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얽매인 계’에서 해외 이곳저곳을 다닐 일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샌들이 필수여서, 가장 아끼는 것으로 고이 모시고 갔다.

정작 현지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까닭에 숙소 내에서만 신었다.


어느 여행지에서 돌아온 며칠 후, 그 나라 호텔에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그것을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부랴부랴 여행사와 현지가이드에게 연락했으나, 호텔에 없다는 말만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뒤이어 투숙한 고객에게 물었으나 모른다고 했단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멀리 타국에서 일어난 일에 애간장이 녹을 따름이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로 날아가 호텔 CCTV를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 나라 대통령과 공조하여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지난 7월 어느 토요일, 외출 시 드레스코드에 맞는 샌들이 필요해 백화점에 들렀다.

브랜드별 매장을 돌던 중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났다. 디자인ㆍ모양까지 마음에 들어, 왕자가 숨겨놓은 신데렐라 구두처럼 가슴이 설렜다. 색깔별 세 켤레를 샀다.

최대한 간편 포장을 부탁하여, 부직포주머니에 넣은 하나의 쇼핑백을 받아들고 신발 매장을 나왔다.

다른 볼 일 보느라 여러 층을 돌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른 아침, 남편과 함께 지인 결혼식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서울이 아닌 지방이어서 마음이 바빴다.

어제 산 샌들에 어울리는 옷으로 코디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신발장을 열었다.

“!”

머리가 하얘졌다. 어제 신발쇼핑백을 들고 여러 층을 순회하며 다닌 기억은 있으나 집으로 들고 온 기억이 캄캄했던 것이다.


남편이 차 시동을 걸겠다며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온 신발장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고, 혹시 창고 방에 숨겨놓았나 싶어, 선반을 샅샅이 뒤졌지만 머리만 헝클어질 따름이었다.

갈 길이 바쁘기도,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의 눈치가 두렵고 불안하여 아무 신발이나 끼어 신고 나갔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 앉아서 종일 신발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백화점에 전화를 하려니 아직 개점 전이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여 혼주에게 눈도장만 찍고, 남편에게서 벗어나 백화점 분실물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신발이라곤 들어온 게 없단다.


다닌 매장마다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한결 같았다.

매장에서 발견했다면 나의 정보가 저장된 직원은 나에게 전화를 했을 테고, 모르는 매장에서는 분실물센터로 보냈으리라. 아무래도 낯선 고객이 들고 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오후 3시 무렵 서울로 돌아왔다.

차에서 총알처럼 튀어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어제 다닌 동선 대로 매장을 돌았으나, 빈 메아리만 들려주었다.

-고객님 그러지 말구요, 분실물센터에 가셔서 CCTV확인 요청 드려보세요,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


난생 처음 ‘안전관리실’이라는 분실물센터를 가보았다.

수백여 대의 모니터가 사방에 달린 그곳은 한 마디로 현대판 감옥 같았다. 인간의 몸 속 구불구불한 천엽까지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눈들이 'CCTV'란 이름으로 모든 인간을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숨조차 쉴 수 없을만큼 위압적인 공포가 몰려왔다. 바야흐로 인간이 인공지능의 노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괜히 왔다는 후회가 일었지만 이미 포로가 된 몸이어서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 사이, 한 직원이 나를 자신의 책상으로 불렀다.

-어제 매장에서 신발 구매한 시간과 매장을 나와 다닌 동선을 순서대로 그리거나 적어주세요.

나는 초등학생처럼 직원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며, ‘차카고 성실하게’ 과제에 임했다.

잠시 후 직원이 신발 구매한 매장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본인이 맞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나머진 자신들이 하겠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타인의 행동을 함부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

잃어버린 신발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안도감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몽유병 환자처럼 어디를 다녀온 거야?

-….

울고 싶은 머릿속으로 여고동창인 진혜정 시인의 ‘말표신발 분실사건’이 생생히 떠올랐다.



말표신발을 기어이 신고

학교에 간 날은

옆 분단 창호네서의

셋방살이도 견딜 만했다

숱 없는 단발머리가

하늘까지 닿았다

고무줄놀이할 때도

저만치 벗어 두고

집에서도 아끼느라

흰 고무신만 신었는데

복도의 신발장에서

사라져버린 말표신발

색깔이 덜 예쁜

범표신발을 살 걸 그랬다고

고흐처럼 자책하며

면도칼을 빼들던 날

눈썹만 남은 달 하나

절뚝거리며 떠올랐다

<그때 말표신발은 어디로 달아났을까>: 진혜정(1962~) ≪루트안의 이층집≫ 중



2

분실신고 이튿날 오후, 백화점에서 전화가 왔다.

-강수화 고객님이시죠?

-네에.

-분실물 찾은 듯하니, 오셔서 확인하시겠어요?

-!


신고 당일에도 느꼈지만, ‘안전관리실’로 들어서는 순간 표현 못할 위압감에 몸이 먼지처럼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어림잡아 백여 대 넘는 CCTV가 매장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표정, 미세한 동작까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던 까닭이다. 다시 그곳을 가려니 꼭 내가 신발 훔친 범인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하며 얼굴을 대조하고는 서류를 내밀며 노란 형광펜 표시된 곳마다 이름과 서명을 하도록 일렀다. 모든 절차를 마치자 비로소 쇼핑백을 보여주며 본인 게 맞는 지 물었다. 잃어버린 세 켤레, 그대로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맞습니다. 근데 누가 가져갔는지 볼 수 있을까요?

-원하시면 보여드립니다. 단 사진 촬영 등은 안 됩니다.

-….


직원은 그날의 내 동선부터 다시 차례차례 보여주었다. 이 층 저 층을 옮겨 다니는 나의 ‘아바타’를 보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실제의 나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이는 후줄근한 아줌마(?) 모습에서, 엄마가 느껴져 저릿한 슬픔이 일었다.

몇 층을 돌다 지하 2층 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어서는 화면에서 정지시키며, ‘분실지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빈손으로 털레털레 일어서서 나가는 ‘엄마’가 보였다.

이어 직원이 그 자리에 앉는 누군가를 보여주었다. 나보다 몇 살 더 들어 보이는 아줌마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을 쭈뼛쭈뼛 살피는가 싶던 그녀는 음식도 주문하지 않은 채 쇼핑백을 들고 자리를 나가버렸다.

CCTV가 그녀 동선을 역추적해 들어가며, ○층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구매영수증을 토대로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물적ㆍ심적 피해보상 받기 원하시면 원만한 합의를 하도록 중재하겠습니다.

-네에에? 찾은 것만도 고마운데, 무슨 합의라뇨?

-그렇다면 여기서 종결해도 될까요?

-저어…저기요, 저분에게 신발이 필요하다면 한 켤레 드리고 싶어서요.

-큰일 날 말씀입니다. 저 사람은 엄연히 범죄자예요, 이렇게 많은 CCTV로 감시하는 이유가 저런 ‘도둑’을 잡기 위해서인데, 설마 몰라서 그러세요?

-‘도둑’이라는 표현은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물건을 두고 간 건 엄연히 제 잘못이고, 견물생심은 누구나....

-고객님 같은 분만 계시면 우리 부서가 더 이상 필요 없을 테죠, 하루에도 몇 건씩 매장 내외 분실사고가 일어납니다, 어쨌거나 더 문제 삼지 않겠다니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이 다시 내미는 서류에 서명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었다. 세 켤레는 분명 사치요 낭비였다.

마음에 드는 한 켤레 정도만 가졌어도, 문제 삼지 않았을 터였다.

‘말표신발’을 찾았지만 내내 우울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CCTV에서 본 그녀가 그 옛날 엄마로 빙의되는 듯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집안이 뒤죽박죽된 셈이었다.

몇 달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엄마는 차마 중학교는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지, 나를 데리고 읍내 5일장으로 갔다. 당시 교복은 기성복이 나오지 않아 양품점에서 맞춰야했다. 양품점은 엄마의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부둥켜안으며 한바탕 통곡을 치렀다. 사람들이 밀려들자 여전히 울음이 가시지 않는 소리로, 내 몸 치수를 재고는 다음 학생들을 차례차례 불렀다. 양품점에서 옷값을 주고 나왔는지 기억에 없다.

이제 교화인 운동화를 살 차례였다.


당시 읍내 5일장은 17 개 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이어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사람에 치이고 떠밀리며,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읍내 장에서 가족구성원을 놓치면 ‘동아약국’앞에 만나기로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엄마는 비좁은 시장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생선비린내, 돼지 국밥, 콩나물국 등, 음식냄새 가득 풍기는 질척한 골목길을 돌고 돌아, 이윽고 신발매장이 쭉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가게마다 신학기를 맞아 새 신발을 사려는 부모와 아이들이 넘쳐났다. 대부분 학교들의 교화가 같은 색상ㆍ디자인이었던 듯, 곤색(감색)에 하얀 끈 서너 칸 묶게 돼 있는 운동화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설레고 눈부신 신발들의 행렬에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내 발이 몇 문인지 물었다.

-이것저것 만지지 말고, 가만있어봐라!

내 물음에 동문서답을 하고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뒤따랐다.

-집이 용주면 ○○리 ○○○번지라예. 중학교 들어가는데, 신발 외상으로 줄 수 있는교? 한 달 후 돼지새끼 팔고 드릴기요.

-5일마다 옮겨 다니는 장돌뱅이한테 무슨 외상인기요? 저리 가이소!

-장날마다 이 자리에 있는 거 아이라예?

-내가 아지매가 누군 줄 아는교?

-우리집 양반이 군청에서 일하고 있는 ○○○입니더.

-공무원이면 돈도 잘 버는데, 무신 외상으로 달라카요?

-….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아직 아버지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남모를 자존심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게마다 돌며 똑 같은 ‘레퍼토리’로 외상을 구걸(?)했지만, 하나같이 거절당했다.

더더욱 나를 비참하게 한 사실은, 아버지를 팔다, 돼지 새끼를 낳으면 갚겠다고 했다가 그마저 약발(?)이 먹히지 않자 어느 가게에서부턴 나를 팔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야아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내내 전교 1등 했심더, 믿고 주시면 꼭 은혜 갚도록 키울라 캅니더….”


화려하고 번듯한 가게들에서 모두 퇴짜를 맞은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맨 끄트머리에 있는 리어카 장사에게로 갔다. 앞 매장들 부스러기나 주워 먹게 생긴 가장 허름한 가게였다.

이번에도 분명 모진 소리로 모욕당할 게 뻔해, 나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잠시 남자 주인과 무슨 말을 주고받던 엄마가 나를 손짓해 불렀다.

-아재가 외상으로 준단다, 부지러이 공부하여 아재처럼 어려운 사람 도아라이.

-아아 니가? 똘똘하게 생긴네, 발에 맞는 거 신어바라.

나는 그 신발을 신고 중학교를 졸업하여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며, 대기업에 취직하여 남편과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궁핍한 환경에 너무도 간절했던 엄마와 나처럼, 그 아줌마도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가난한 딸에게 주고 싶었거나, 백화점 신발을 신어보고 싶었거나….’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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