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로또를 산다. 복권방에 들어서면 무심한 척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잔잔하게 출렁이기 시작한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뇐다.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아.” 숫자를 고를 때는 진지하다. 아이 생일, 아내와의 기념일, 한때 운이 좋았던 날들. 숫자 하나하나를 고르며, 마치 잊고 살던 삶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기분이다.
로또를 사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다. 그건 내 삶의 틈새에서 작은 가능성을 꺼내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현실보다 더 풍성한 상상 속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로또를 ‘당첨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하기 위해’ 산다. 현실에선 상상도 못 할 삶을 잠시라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티켓.
그것이 바로 복권이다. 당첨자 발표 전까지의 며칠, 나는 다른 삶을 산다. “만약에 1등이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돈으로 여행을 갈까? 좋은 사람들에게 조용히 나눌까? 작은 도서관을 하나 지어볼까? 조금 떨어진 곳에 내 글쓰기 작업실 만들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 마음은 이미 풍요로워져 있다. 이렇게 하루를 버티는 사람도 있다.
기대 하나가, 상상 하나가, 무너질 듯한 일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준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저축하지.” “확률도 없는 거 왜 사?”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기대하는 마음이 어떤 위로를 주는지. 상상하는 기쁨이 삶을 얼마나 반짝이게 하는지. 나는 결과가 전부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 과정이 아름답고, 기다림이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로또가 주는 진짜 선물이다.
어쩌다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내 몫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다. 티켓을 버리는 순간, 허탈함보다는 담담함이 남는다. 그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다. 이 상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기대를 품고, 각자의 상상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 있다.
그 마음은 다르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행운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우리를 살게 한다.
나는 생각한다.
행운은 당첨 번호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대할 수 있는 마음 자체가 이미 큰 행운이다.
사람은 기대할 때 가장 인간답다. 어쩌면 철학자들이 말한 ‘삶의 의미’란, 이 기대를 품을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는 상상을 낳고, 상상은 삶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대는 배가 된다. 행운을 꿈꾸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1등을 뛰어넘는 기쁨이다.
나는 친구와 대화 속에서 그 기쁨을 느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속마음을 나눈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게, 나의 기대와 상상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가진 행운은 티켓 속 숫자가 아니라,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였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작은 기대를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은 로또를 사고, 가끔은 그보다 더 소중한 대화를 나누며, 작은 기쁨 하나를 정성껏 품는다. 그리고 그 기쁨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는 또 다른 하루를,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