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간
- 타인의 인생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혜린님과는 취업준비생 시절 언론고시 스터디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스터디 모임 후, 10년 넘게 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 듣곤 오랜 만에 연락이 닿게 되었습니다. 혜린님이 쓴 ‘엄마의 책장’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그간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 왔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업부터 결혼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던 에피소드를 보면서 혜린님에게 성공과 실패는 지금 어떻게 재정의가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이기에 두 키워드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밀도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적임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라는 키워드로 에세이 한 편을 요청했습니다. 현재는 농부의 아내로, 그리고 출간 작가로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성공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서른이 넘어 문득 내가 왜 그렇게 ‘성공’에 목매달며 살았을까 생각했어요.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고 물을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 제 생각이라 여기는 것들이 어떻게 제 것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분석했어요.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더라고요. 바로 가정, 학교, 교회. 저는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별 의심 없이 믿고 따르며 살아왔어요. 어쩌면 주입되었을 수도 있는데, 스스로 한 생각이라 여기면서요. 세 곳이 모두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가르치는 것이 다르지만 동일한 것이 있었어요. 바로 성공.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 결국 그 결과물인 대학이죠. 대학은 성공의 척도로 이후 취업, 명예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가정도 그 뒷받침을 해요. 차려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아마 대부분 그럴 거예요.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모두 엄마 몫이고, 돈은 아버지에게 타서 쓰고, 돌이켜 보면 공부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어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학벌이니 부모님도 별 의심 없이 당연히 저를 그렇게 키우셨겠죠. 그런데 교회에서도 그 가치를 배웠어요. 좋은 대학에 가고, 괜찮은 곳에 취직한 사람은 ‘성도의 교재’ 시간에 일어나서 인사를 해요. 교인들 모두 박수를 쳐주죠. 감사의 떡도 돌려요. 수능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취직, 결혼 걱정 없이 복 받을 수 있다고 말해요. 결국 모두 ‘성공’이라는 말로 만나더라고요.
성공하고 싶었고, 성공해야만 삶이 살아지는 줄 알았어요.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 가고, 보란 듯이 취업해야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다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부모님조차 제가 성공하지 못 하면 뒤돌아 설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어요. 기대에 못 미치면 친구들도 나를 무시할 것 같고, 친척들 볼 면목도 없고, 선후배도 나를 배척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부모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제 삶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었어요. 원래 제 얼굴에 난 뾰루지는 저만 신경 쓰이잖아요. 그걸 그때는 몰랐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너무 아나운서가 하고 싶은 거예요. 아나운서 할 만큼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데, 부족한 걸 아는데도, 그냥 해보지도 않고 묻어 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는 교육대학원 입학을 한다고 하고, 과외로 돈을 벌면서 아나운서 학원에 다녔어요. 언론 고사 스터디도 하고요. 안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어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학원 졸업은 다가오는데, 보는 시험마다 떨어지고, 당연히 임용고사 준비는 안 되어있고, 정말 막막했어요. 엄마한테 용기 내서 '사실 아나운서 시험 준비하고 있다'고 말 했는데 엄마가 “그래?” 뭐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거예요. 원래 엄마가 감정 표현을 잘 하는 분이 아니라 그런가보다 했어요. 정말 백수가 되고, '이건 정말 내 길이 아니다' 생각했을 때 다시 엄마한테 어렵게 말했어요. “나 아나운서는 포기하려고….” 엄마가 막 웃으면서 “넌 그게 될 줄 알았어? 엄마는 기대도 안 했어”라는 거예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데, 너무 시원한 거 있죠. ‘성공 못 해도 난 엄마 딸이구나’, ‘실패해도 잘 살 수 있구나' 엄마가 웃는데 저는 막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때가 스물여섯이었어요. 정말 어린 나이인데 정말 조급했어요. 친구들은 모두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는데, 저는 도서관 아니면 갈 곳이 없었죠. 다시 임용 준비를 할까 하다가, 소설가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사실 제가 꿈꿨던 아나운서는 글 쓰는 아나운서였어요. 여행 작가도 하고 싶었어요. 손미나 아나운서가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선생님을 하더라도 글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요. 김애란, 윤성희 같은 소설가 프로필을 찾아보니 모두 20대 후반에 등단을 했더라고요. ‘아, 등단만이 살 길이야’ 정말 도서관에 박혀서 열심히 썼어요. 책 읽고, 자료 찾으면서, 동화, 소설, 수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요. 각종 신문사에 글을 보냈지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1월 1일 신문을 펴서 떨리는 마음으로 심사평을 읽었죠. 혹시 후보작에라도 내 이름이 올랐을까 싶어서요. 근데 어디에도 제 이름은 없었어요. 그 겨울, 저는 잠시 절필을 했어요. 아무도 모르지만.(웃음) 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어요.
열심, 최선 제가 배운 삶의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그렇게만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고요. 재수할 때 1학기 때는 학원을 다니고, 2학기 때는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어요. 재수하고 나서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는 이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외롭고 힘들었지만, 저는 정말 책상 하나는 열심히 지켰어요. 그런데 결과물은 정말 형편없는 거예요. 실패한 나를 내가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 무렵 결혼할 때가 되었고, 만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자연스레 결혼을 했어요. 1년 뒤에 아이를 낳았고 육아가 시작됐죠. 그 시간이 참 행복하면서 힘들었어요. 지금껏 붙잡고 온 모든 가치가 뒤집힌 느낌, 아내, 엄마가 되자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건 아니니까요. 육아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를 가장 힘들 게 한 것은 저였더라고요.
‘넌 실패했어’, ‘아나운서도 못 됐잖아’, ‘선생님도 아니잖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글이잖아’ 몇 년 동안 제가 저한테 늘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육아를 하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는데, 늘 쫓기는 느낌이었어요. ‘이제 아이들이 크고 나면 뭔가를 해야 할 텐데, 뭘 해야 하지?’ 막막했어요. 저는 사실 ‘경단녀’조차 되지 못 했으니까요. 단절된 경력이라도 있는 게 참 부럽더라고요. 아이가 조금 크면 나는 이제 뭘 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까 이것저것 또 기웃거리기 시작했죠.
그 무렵 임용 고사 준비를 다시 시작했어요. 그나마 가장 쉬운 길처럼 보였죠.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자격증도 있고, 지금까지 어쨌든 걸어온 길이니 해 볼만 하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해 3월부터 근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둘째가 세 살이었는데, 밤에는 교육학 강의를 듣고,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초등학교 수업을 하고, 정말 힘든 거예요. 남편에게 푸념하듯 말했어요. “나 요즘 너무 힘들어” 남편이 또 웃으며 답하더라고요. “그거 아무도 너한테 시킨 사람 없어. 너 혼자 그러고 있는 거야” 근데 그 말이 차갑거나 아프지가 않고, 참 따뜻했어요. 뭔가 한 대 맞은 느낌. ‘그러게, 아무도 안 시켰는데, 난 또 왜 이렇게 나를 못 살게 굴고 있었지?’ 잠시라도, 뭔가 ‘성공’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나 봐요. 아이와 놀아주면서 고전 문학 강의를 틀어 놓고, 차타고 이동할 때는 혼자 이어폰 끼고 문법 강의를 듣고, 그렇게 살았어요. 열심히 산다고 삶이 잘 풀리는 게 아닌 걸 수없이 겪었으면서, 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그러다 임용 준비는 그만 뒀어요.
결국 ‘성공’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신화인 것 같아요. 가정, 교회도 함께 돕고 있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가치. 저는 지금껏 타인의 시선에서 본 ‘성공’을 꿈꿨어요. 번듯한 학벌, 안정된 직장, 넓은 아파트, 좋은 차, 훌륭한 결혼 생활. 다들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말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죠. 마흔을 앞두고 ‘성공’을 다시 바라봐요. 결국 인생은 내가 걸은 만큼, 내가 보고 경험한 만큼이잖아요. 아무리 누군가 설명해줘도 제가 겪기 전에는 알 수 없죠. 제가 삶을 걸어보니,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니 ‘성공’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성공’은 ‘나’를 아는 거예요. 톨스토이가 말했어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지를 아는 일부터, 나는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게 편하고 불편한지 알아가는 것, 그렇게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의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타인의 시선에서 본 ‘성공’을 꿈꿨다면, 이제는 정말 나 자신의 잣대로 본 ‘성공’을 이루어 가려고요. ‘나’라는 사람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교사, 아나운서, 작가 제가 꿈꾼 것은 모두 실패였어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고, 늘 습관처럼 ‘꿈’을 맴돌았어요. 어느 순간 꿈은 덫이 되어서, 그 글자만 보아도 아프더라고요.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첫째가 세 살, 둘째가 한 살 때 정말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치우고, 달래고, 재우고 하는 무한 반복의 시간 속에서 완전히 제가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육아서를 시작으로, 에세이, 심리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기록 차원에서 독후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전의 글쓰기가 목표가 있는 글쓰기였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쓰고 싶어서, 쓰고 나면 마음이 좀 정리가 되니까, 정말 ‘나’를 위해서 썼어요. 혼자 읽고 쓰는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남편이 은혜 받았냐고 물어볼 정도로 삶이 정리가 되고요. 같이 읽고 쓰면 더 좋겠다 싶어서 강사로 나가는 도서관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어요. 어딘가에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작년 3월 첫모임을 가졌는데, 정말 말도 못 하게 좋았어요. 저도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 모였는데, 아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편했고, 첫날 이야기 나누며 많이 울었어요. 저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게 보통이었더라고요.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어요. 함께 읽고 나누니, 사고와 삶이 마구 확장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작년 여름 즈음 ‘경기 히든 작가 공모전’을 봤어요. A4용지 40매 분량을 보내서 10명 1차 선발을 하고, 글쓰기 교육 후에 4권이 출간되는 거였어요. 제가 그때껏 썼던 원고를 모아보니 40매 정도가 됐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1차 선발이 되었어요. 숭례문학당에서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그렇게 밀도 있는 글쓰기 강의는 처음이었어요. 출판사 대표님이 제 원고에 대한 피드백도 그때그때 해주셨고요. 그때 피드백 중에 기억나는 게 있어요. ‘착한 엄마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고. 곱씹어보니, 저는 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기독교적 가치관이 만들어 놓은 저죠. 글을 써도 바르고 착하게 끝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런데 그걸 깨야할 때가 온 거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몇 달을 치열하게 읽고, 쓰고, 고쳤어요. 공모전 최종 발표가 있던 날, 윤혜린 《엄마의 책장》이 선정된 것을 보고 울었어요. 제 인생에서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게 이루어진 게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지금 제 삶이 참 좋아요. 학교와 도서관에서 그림책,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해요. 올해 초에 책을 냈고요. 강사이자 작가, 정말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삶의 모습인데, 너무 ‘나’같고 좋아요. 돌고 돌아서 어떻게 이곳에 도착했는지 참 신기해요. 결과로 보면 모두 실패였지만, 과정은 고스란히 제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나’이상이 되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으려고 저를 구겨 넣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를 자세히 살펴보니, 저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다 프리랜서가 더 맞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20대 때는 그걸 몰랐어요. 어떻게든 안정된 곳으로 저를 집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썼죠.
요즘도 자주 실패해요. 강사라는 직업 자체가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개발해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이력서를 내야하고, 강의 계획서로 평가도 받아야 하고 그렇죠. 크고 작은 공모전에 글도 써서 보내는데 수상자 명단에 없을 때가 더 많아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 있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바뀌었어요. 이전엔 경쟁에서 실패하면 ‘괜히 또 헛짓을 했구나’, ‘시간 낭비만 했구나’ 싶었는데, 어쨌든 그 과정은 제게 남잖아요. 공모전에서 떨어져도 어쨌든 글 한 편은 제 것이니까요. 공모전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밤늦게까지 공들여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죠.
최근에 브런치에 ‘아픔도 슬픔도 지나면 따뜻하다' 라는 글을 썼어요. 철 지난 소리 같고, 너무 어른스런 말이지만, 실패도 지나고 나면 따뜻하게 남더라고요. 그런 실패의 시간이 없었다면, 길고 긴 육아의 시간이 없었다면 《엄마의 책장》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테고요. 인생의 어떤 순간을 성공, 실패라고 단정 짓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아요. 그냥 이제는 한 순간을 명명하지 않고, 더 길고, 더 크게 보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성공 아닌 것이 없더라고요.
혜린님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어요!
[궁금증1] 저를 포함해서 혜린님과 같이 실패를 반복했거나 실패 중인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요. 지나고나면 추억이 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괴롭잖아요? 그때 기분이나 감정은 어땠나요?
[궁금증2] 실패에 대해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게 주변의 시선도 있지만 생계에 대한 공포, 불안도 한 몫을 할텐데요.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셨나요?
[궁금증3] '잠시라도 뭔가 성공을 위해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나를 아는 것이 성공'이라고 재정의하셨는데 나를 알아 가는게 정말 어렵고 오래 걸리 잖아요? 지금은 '성공'을 위한 스트레스는 없나요?
[궁금증4] 슬럼프 혹은 삶의 시련을 겪고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 활동들이 있을까요?
[궁금증5] 제가 '성공과 실패'의 키워드에 대해 혜린님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처럼 특정 키워드에 대해 혜린님이 궁금한 분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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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린
- 에세이스트 & 강사
-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 브런치 : brunch.co.kr/@helen223
- <엄마의 책장>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