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정답 증후군

Season.1 취업학개론

by Ten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

사회생활 5년 차인 선배가 갓 입사한 후배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 후배가 타로를 볼 수 있었기에 진심반 장난반으로 상담을 요청했던 것이다. 고민은 후배 입장에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걸까?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5년 정도 일을 했으면 전문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신입사원은 선배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그 선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그 신입사원도 5년 차를 넘어섰다. 매일매일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이 일을 내가 하고 싶었던 걸까..’

자기만 이런 생각이 드나 해서 주변 동료나 선배들에게 이야기하니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좋아서 일하냐? 돈 벌려고 일하는 거지.. 다들 이렇게 살아.. 싫으면 퇴사해야지”



무소유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생각해보자.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 말이다.

소변, 대변을 누는 법을 배운다.

숟가락, 젓가락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배운다.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법을 배운다.

한글을 배운다.

..


생각해보면 끝도 없다. 이렇게 우린 태어나자마자 계속 배운다. 그리고 반대로 배운 대로 하지 않으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배운 대로 답을 적어내지 못하면 점수가 낮았다. 그래서 우린 객관식과 단답형 유형에 익숙하다.


부모한테도 가르침을 받고, 학교에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선후배 관계도 명확해서 선배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계속 배워왔다. 물론 배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해진 것만 주로 배웠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 말이다.

주입식 교육은 2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첫째는 정해진 답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과는 빨갛다. 이과를 가야 한다. SKY를 가야 한다. 법대를 가야 한다. 공대를 가야 한다. 등등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방향성을 그냥 정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강남역에서 논현역으로 가는 방법은 도보, 택시, 지하철, 버스 등이 있는데 버스만 타고 가라고 알려주는 격이다. 다른 방법은 존재도 알려주지 않거나 존재는 알려주지만 설명 없이 버스만 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정보만 가르치는 것이다. 2+2=4, 피타고라스의 정리, 현재 완료, 중앙집권체제 등등 말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인문학이 없는 학습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왜 살고, 왜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며 살기 때문에 약속이란 게 있고, 기본 상식이란 선을 맞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입해야 할 기본 약속과 정보, 이론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육이 주입식 교육뿐이라면 사람은 생각 없이 사는 기계가 될 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논술 시험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 필자의 경우 대학시절 문학 관련 수업에서 A+을 받은 적이 있다. 근데 그 과정이 참 아이러니하다. 시험을 앞두고 해당 과목을 조사해보니 족보가 있어 족보를 공부했다. 추가적으로 탐색하다가 해당 교수의 논문을 찾게 되었고 논문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외웠다. 그리고 시험에서 외웠던 논문을 그대로 작성해서 냈다. 그게 A+이었다. 물론 모든 과목이 그렇진 않겠지만 달달 외워서 쓰는 방법이 대학에서도 통한다는 게 뭔가 씁쓸했다.


결국 지금까지 교육에서 얻은 것에서 내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무소유의 상태다. 어렸을 적부터 왜 내가 이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난 무엇을 좋아했는지, 좋아한다는 느낌이 뭔지, 나는 왜 이렇게 결정하게 됐는지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정의가 다른 게 이것뿐이겠는가? 사랑, 노력, 우정 등 모든 단어들의 정의가 다르다. 열심히 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당신이 ‘열심히’라는 단어를 정의해 본 적이 없다면 타인에게 열심히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방황

대학이 별거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대학이다. 고등학교 때보다는 훨씬 열려있다. 고등학생 땐 교과서와 문제집, 학원만 열심히 다니면 점수가 곧잘 나왔다. 그리고 공부 외에 딱히 할 거리도 없고 말이다. 근데 대학생은 문제집이라는 게 없다. 그냥 전공서적만 있을 뿐이다.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거다. 논문도 찾아봐야 하고 관련 서적도 읽어봐야 하고 말이다. 동아전과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대학생 때 공부만 하나? 아니다. 동아리도 하고, 외부활동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자기가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 대학 입학하고 과활동, 반활동, 동아리 활동 없이 공부만 하다가 졸업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환경에 마주하면 적지 않게 당황한다. 십 수년간 정해진 틀 안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알아서 척척 정리하고 진행하지 않으면 졸업과 함께 멘붕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시절에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준비가 되지 않아 회피용인 경우가 많았다. 뭘 해야 되는지 정리된 것도 없고, 용기도 없으니 만만하게 그동안 한 공부를 더 해보면서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간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만 버리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가마니

정해진 틀 안에서 모범적으로, 수동적으로 열심히 살다가 갑작스럽게 능동적이어야 하는 환경에 처해지는 게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멍 때리기 마련이다. 속된 말로 선택 고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냐는 말이 있는데 당연히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인다. 가만히 있는 것도 나의 선택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선택인 것이다.


가마니로 있다 보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얽혀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용한다. 이용당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내가 좋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좋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나를 이용하는데 내가 잘 되는 가능성을 고려해서 이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봐야 하겠다.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세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 자기주도적으로 삶을 이끈다.

둘째, 선택을 보류하며 일단 흘러가는 상황대로 지낸다.

셋째,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둘째, 셋째 방법은 가마니의 삶인데 가마니의 끝은 그리 좋지 않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 위에 떠있는 돛단배와 같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배는 나아간다. 내가 저으면 젓는 대로 배가 움직인다. 양갈래의 길이 나왔을 때, 가만히 있어도 배는 물의 흐름에 따라 나아간다. 내가 열심히 저으면 배의 흐름과 다른 길로 배는 나아간다. 같이 강을 지나가는 배를 따라갈 수도 있다. 결국 가만히 있는 것도 선택인 것이다. 시간이란 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대학 동기 톡방에서 친구가 주식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 작전 들어간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투자하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거액을 투자했다. 결과는 쪽박. 그리곤 친구를 욕한다. 이렇게 타인에게 의존도가 높으면 남의 탓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 해당 종목이 대박이 터졌어도 친구 욕을 하게 될 거다. 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냐고 말이다. 인생에 답이 없는데 같이 강을 타는 배가 저리로 간다고 해서 같이 간다면 결국 그건 나의 선택이다. 남 탓할 필요 없다.

가마니로 있을 경우 탓은 더 심해진다. 말한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내 선택을 대신하게 된다.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대신 선택을 한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게 된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도 선택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답을 내지 않는다면 평생 남 탓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탓을 한다고 한들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해답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만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러니 과정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서 밀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정해진 영역 안에서 정해진 답을 찾는 연습만을 해왔다. 학교 밖은 정답이 없다. 오히려 오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답이었던 것들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서는 오답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나만의 해답을 찾으면 된다.

정답만을 갈구했던 사람에게 해답을 만들어 보라는 숙제는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게 정답일까? 이게 최선일까? 하는 두려움에 여기저기 묻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비율을 점차 줄여라. 타인의 삶에 녹아있는 경험과 지혜는 참고만으로 충분하다.


누군가가 굉장히 맛있다며 초콜릿을 주었다. 먹어보니 이만 아프고 너무 달아서 뱉어버렸다. 인생이 이와 같다. 남에게 좋다고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남의 정답이 내 정답은 아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용기가 생겼다면 다음 할 일은 해답을 찾기 위해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해답을 찾는 과정에는 결국 내가 문제를 바라보고 파악하는 프레임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 프레임은 내 경험과 신념, 가치관에서 비롯되는데 이것을 잘 정리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답을 찾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울 것이다. 본인만의 해답이 없는 사람은 기업에서 좋게 보지 않는다. 해답을 찾아야 한다.


반전

해답을 찾는 일도 어렵지만 해답을 찾아도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갈구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해답을 찾은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훈계 혹은 현실을 모른다며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해답을 찾을 때 타인에게 다시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것은 정답을 찾아 떠 돌았던 습관 때문이다.


>> 생각해 볼거리

누군가 당신에게 "뭐 먹을까?"에 대한 질문에 “아무거나”, “너 먹고 싶은 걸로”라는 말을 얼마나 하는가?

당신이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가?

당신이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취업을 왜 하고 싶은 건가? 취업한다는 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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