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다양한 생각
살다보면 많은 차이에 봉착한다. 회사 임원과 일반 직원 사이의 차이, 세대 간의 차이 등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차이가 있어도 좀 괜찮을 텐데 보통은 차이가 생기면 갈등으로 발전되곤 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불철주야 열정적으로 일하는 임원 A가 있다. A는 이미 3대가 먹고 살만큼 돈이 많아서, 직원들 사이에서 취미로 회사 다닌다는 말까지 나오는 사람이다. A는 모든 직원들이 자기처럼 야근도 많이 하고, 회사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에서 턱없이 부족한 직원들에게 한 마디 한다.
아니, 돈 필요 없는 나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일하는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치열하지 않은 거죠?
A와 직원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임의로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을 구분하여 가정해 보자. 상위 계층의 경우,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사회적인 입지도 평균 이상으로 다져 놓은 상태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탄탄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건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경우의 수는 거의 없다. 큰 위협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건 (-)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를 만드는 것에 있다. 그 (+)에 선택과 집중할 에너지가 충만하다.
*. (+)는 자아 실현, 동기부여, 열정, 꿈, 도전정신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반대로 하위 계층의 경우, 의식주부터 탄탄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고, 장기적으로도 입지를 다져놔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전략과 고민을 세워야 한다. 선택에 따라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협할 경우의 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할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상위 계층은 기본이 갖춰져 있어서 원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고, 하위 계층은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위협이 될 만한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상위 계층 입장에선 자아 실현과 같은 고귀한 영역에 집중하기는 커녕, 신경도 쓰지 않는 하위 계층을 답답하게 여기게 된다.
*. 상위 계층이라고 하면 본인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탄탄한 입지를 가진 것도 포함된다. 본인이 망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하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으로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다.
기본적으로 상위 계층은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 및 소속의 욕구가 충만하다. 충만을 넘어 3대까지 충족될 만하다. 낮은 수준의 욕구인 결핍욕구가 충족되니 높은 수준의 욕구인 성장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자존, 인지, 심미, 자아 실현이 그것이다.
하위 계층 입장에선 기본적인 욕구가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장욕구에 집중할 에너지는 없다. 결핍욕구의 충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 갈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결핍욕구를 충족하고 성장욕구로 넘어가게 된다. 성장욕구를 넘어가게 되면 결핍욕구 단계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며 훈계(?)나 충고(?)같은 말을 하게 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을 빗댈 수 있을 것 같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이라고 임의로 가정을 해 보았으나 당연히 절대적인 원칙이나 구분은 아니다.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보면 된다. 위에서 말한 저변 환경의 차이는 꽤나 크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상위 계층에 대한 하위 계층의 이해보다는 하위 계층에 대한 상위 계층의 이해가 더 중요하다.
온갖 위협의 대응에 에너지를 써야하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욕구에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저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간과하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이론까지 들어가며 차이의 매커니즘을 설명했는데 사실 거창한 건 아니다. 모든 관계에 있어 차이로 인한 갈등은 개개인의 저변 환경의 차이를 상호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글을 쓴 이유가 뭐냐고?
생계가 중요한 사람들이 왜 치열하게 일하지 않냐고 열내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해줄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