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세이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수박씨를 골라내서 먹었다. 어머니는 수박을 먹을 때 눈에 보이는 수박씨는 젓가락으로 다 골라낸 후에 식탁에 내 놓으시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씨를 담는 그릇을 따로 내 놓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집이나 식당에서 수박이 나오면 수박씨를 다 골라낸 후에 먹는다. 일단 입에 먼저 넣고 입에서 씨를 골라낼 수도 있지만 골라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수박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게 싫었다. 혹여나 골라내지 못해서 수박씨를 씹기라도 하는 날이면 길 가다가 개똥을 밟은 것처럼 찜찜했다.
아내의 집(처갓댁)은 우리 집이랑 반대다. 포도도 그냥 씹어 드시고, 수박도 그냥 씨까지 다 씹어 드신다. 이런 게 가족문화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처갓댁에서는 씨를 담는 그릇이라는 건 없었다. 아마 내가 씨를 골라 먹는 걸 보고, '되게 까탈스럽게 먹네'라고 생각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혼 후 종종 나도 씨를 그냥 씹어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여전히 발라내고 먹는 게 더 맛있다.
엊그제였나? 회사를 마치고 처갓댁에서 저녁을 먹었다. 후식으로 장모님이 수박을 주셨다. 씨가 골라져 있었다. 순간 마음이 찡했다. 뭐라고 표현을 해야하나...고민 끝에 결국 아무 말도 못했다. 수박씨를 고르지 않고 드시는 장모님이 사위에게 직접 씨 고른 수박을 주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