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이 안내문을 따라가세요] ...정말?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대표들과 미팅하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비다 보면 안내문을 자주 보게 된다. 무의식중에 지나치고 말 흔한 안내문들이지만 아무래도 자꾸 눈길을 두게 되는 것은 직업병인 것 같다. 장애인의 쉽고 편한 이동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다.
다양한 안내문들 중 정말 빈번하게 마주치는 안내문들은 지명,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화살표나 숫자, 기호로 가리키는 안내문들이다. 특히 2호선이나 9호선 환승역처럼 안내문을 보지 않고는 환승하는 것이 어려운 공간들이나 초행길일 경우에는 더욱 유심히 안내문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뚝섬역에서 꼭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나는 이 안내문을 보고 6번 출구를 찾기 위해 오른쪽으로 5m를 갔다. 처음 가 보는 뚝섬역이니 이 안내문은 나에게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그 곳에는 2호선 전철 개찰구가 있었다. 당황해서 안내문이 있는 곳에 다시 돌아왔더니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찬찬히 안내문을 해석해 봤다.
1. 엘리베이터와 6번 출구는 5m 오른쪽으로 가면 있다.
2.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5m 오른쪽에 6번 출구가 있다.
3. 엘리베이터 옆으로 5m 가면 6번 출구가 있다.
이 중에 답이 있을까?
주변에도 물어봤지만 단 한 명도 이 안내문이 가리키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이 안내문은 '6번 출구에서 5m 더 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안내문이 부착된 위치상, 사람들은 이 곳에서 오른쪽으로 5m 가야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으로 해석하기 쉽다.
이 안내문을 의도에 맞게 고치려면 아래와 같이 수정해야 한다.
1. 안내문은 개찰구 바로 앞에 부착
2. 방향은 왼쪽을 향하도록
3. 엘리베이터는 2m 앞으로
4. 6번출구는 7m 앞으로
누구라도 앞서 예시로 들었던 안내문을 보면서 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 안내문이 부착된 곳이 엘리베이터 바로 옆이니, 사실상 엘리베이터를 안내하는 의미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안내문은 형식상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도 이 안내문을 기획하고 부착한 사람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니거나, 뚝섬역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비단 뚝섬역 뿐 아니라 장애인 리포터와 함께 여행을 할 때도 이런 경험을 자주 했다는 생각이 났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보기에는 안내문 부착 위치가 너무 높거나 안내문이 가르쳐주는 대로 갔는데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던 경우들. 또는 아예 다른 뜻의 안내문일 때도 있었다.
나야 비장애인이다 보니 뚝섬역의 잘못된 안내문을 보고 다시 되돌아오는 데에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만일 휠체어를 탄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필시 개찰구 쪽까지 갔다가 다시 안내문 쪽으로 되돌아오는 데에 큰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내문을 통해 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장애인의 입장에서 봐야 할 때 필요한 노력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최근 보았던 안내문 중에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안내문을 보자.
현재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40m 가면 화장실이 있고, 60m 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다. 또 1번, 5번, 6번 출구도 찾을 수 있다. 이 안내문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였을 때 필요한 공간을 찾을 수 있는지 쉽게 알려준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아니라, 초행길인 사람들 역시 쉽게 바른 길로 향할 수 있는 안내문이다.
이런 안내문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아직도 다양한 공간의 여러 안내문들은 이용자 시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오늘도 유아차와 함께 외출을 한 누군가의 가족, 휠체어를 타고 직장에 출근하는 친구, 어느새 할아버지가 된 부모님, 처음 이 길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바른 정보를 줄 수 있도록 잘못된 안내문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정책이 시행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