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주째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딜 다니자니 위험하고, 헬스 끊어봐야 작심삼일, 에이 이러나저러나 하다 말면 그만인데 그럴 바에 집에서 하자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홈트레이닝이 눈에 들어왔다.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아저씨들이 훈련소 조교를 연상케 하는 챙 모자를 쓰고 나와 박자에 맞춰 단순 운동만 반복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제법 칼로리 소모가 크다.
* 식단 조절에 들어갔다. 아침은 나또 위주로 먹는다. 저녁은 가끔 폭발할 때 외에는 건강식을 먹는다. 점심은 식판 밥 담는 칸에 밥, 반찬을 딱 먹을만치만 담아 먹는다. 밥 담던 주변에서 다들 갑자기 왜 그러냐 묻는다.
옷이 안 맞아요.
그것도 있지만 사실 건강이다. 첫째는 점점 몸으로 놀아줘야 하고, 둘째가 나오기 전에 더더욱 근육량을 늘려놔야 한다. 간수치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힘들다. 멋진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건 상관없다. 오로지 살기 위해 한다.
* 자기 전 30분, 일어나서 30분을 운동의 원칙으로 두고 있다. 저녁 컨디션이 좋을 땐 1시간 코스를 밟기도 한다. 운동과 식단 조절을 병행하니 체중이 미약하게나마 빠지고 있다.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군인처럼 시간 맞춰 운동하는 건 뭔가 재미없는 일이다. 그저 이제는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다. 살을 뺀다는 건 글쎄 살을 뺄 수 있을까 가끔 의문이 나지만 일단 하고 본다.잔꾀 안 쓰고 무식하게 하는 게 정도다.
* 당분간 평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특별한 일이란 귀한 친구가 친히 전주로 찾아오거나, 취향과 학문의 뜻이 맞는 소수의 동지들이 모이는 때를 말한다. 술을 줄이니 공허하다. 특히 집에서 한잔 두 잔 마시는 걸 즐기는 나로서는, 그러면서 글의 갈피를 잡는 나로서는 그 두 가지 행복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구슬픈 일이지만 5킬로 이상 체중을 감량할 때까지 이 수칙을 지키도록 한다.
* 주말은 늘 청소와의 전쟁이다. 이제 화장실 청소는 아예 아내가 할 수 없다. 냄새에 취약해져서 음식 쓰레기 근처도 못 간다. 마침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
* 지난 주말, 애가 있는 힘껏 놀았는지 대청소하는 세 시간 내내 잔다.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샤도네이 한잔에 묵은 신문 좀 보려 했더니 아내가 침실 가서 애 깨우란다. 쩝.
* 아들은 깰 때 예민하다. 정신이 든다 싶으면 엄마부터 찾는다. 이번에도 역시다. 깨운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주방의 엄마한테 달려간다. 사과주스 달란다. 아빠가 줄까 했더니,
"싫어! 아빤 술이나 마셔!"
"무슨 소리야? 아빠 이제 한 모금 마신 거야!"
그걸 듣고 아내가 빵 터졌다. 아니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난 억울해서 아니 누가 보면 매일 집에서 술 퍼먹는 알콜중독자인줄 알겠다고.
가장의 본분을 다 하고 마시는 이 한 잔의 슬픔이란.
* 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보이는 책이 있다.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엘리아데의 '성과 속'. 내용이야 뭘 알겠냐마는 겉표지의 추상적인 그림에 매료되었는지 기어 다닐 때부터 항상 내 책장에서 그것들만 꺼내어 빤히 쳐다봤다.
* 반년 전부터 세 가지 책이 늘어났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육식의 종말', '사피엔스'. 세 가지 책을 늘어놓고 물고기, 소, 발자국을 계속 외친다. 오늘은 나보고 사피엔스를 집어주며 말했다.
"아빠. 이거 읽으세요."
"아... 그건 두꺼운 책이라 또 보고 싶진 않아요."
"이거 읽으세요~~~ 이거요~~~"
그럼 그냥 너가 읽어...
* 아이에게는 매일 읽어야만 하는 바이블 같은 그림책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동물에 가족을 대입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얼룩말, 엄마는 기린, 아빠는 악어란다. 불변이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양 할아버지는 북극곰, 서울 할머니는 코뿔소, 광주 할머니는 고래라고 한다.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격에 상징을 부여하는 데 상상력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 아이는 요즘 알파벳 노래에 푹 빠져 있다. 발음하는 것에 매우 관심이 많다. 마침 본인을 얼룩말이라고 자꾸 하길래 "얼룩말은 지브라"야 했더니 빤히 쳐다보며 따라 하길,
"찌발"
순간 빵 터짐에 애가 바로 내 반응을 캐치해서 계속 "찌발"을 외친다. 아차 싶어 절대 그 발음이 아냐 지브라 지브라 반복해도 욘석이 당황한 내 얼굴을 실실 보며 그 발음만 한다. 혼내도 소용없다. 가까스로 화제를 돌려버리긴 했는데.
아... 어린이집 가서 이러면 큰일인데... 아... 폭망인데... 얼룩말인데...
* 아이가 샤워하고 나와 "엄마 뱃속에 아기 있어!" 외치길래 "맞아. 서원이 동생이야." 했더니,
"남자애야."
순간 얼음. "누구라고?" 다시 물으니 똑같이 남자애라고 한다. 엄마한테 가서 말해봐봐 했더니 다다닥 달려가 말한다. 아내도 깜짝 놀라며 "여자는 아닐까?" 물으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남자애 같아."라고 말했다.
우와. 서원이랑 똑같은 슈퍼 에너지맨이 탄생하면 우리집 우와 우리집 우와 신난다 후하하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