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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n 07. 2020

근데 말야. 진짜 둘째는 계획한거야?  

82년생 육아대디



화장실 문이 빼꼼 열렸다. 아내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아유. 그럴 줄 알았다.


"여보~~~ 두 줄이야~~~~~"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둘째가 이렇게 옵니다!"


5월의 봄, 우리에게 둘째가 다.


아내는 둘째를 간절히 원했다. 나 역시 '그래도 둘째 있어야 첫째랑 오손도손하지' 하는 마음에서 아내의  바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리에  둘째가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나도 여동생이 있고, 아내도 오빠가 있고. 남매 생활로 평생을 보냈으니 우리 당연히 딸이든 아들이든 둘째까진 낳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속도의 차이었다. 나는 순풍을 타고 천천히 배의 키를 몰아 두 번째 대륙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쾌속선을 만들어 선원을 다그쳐서라도 하루 바삐 대륙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원은 바빠지고 하늘에선 천둥번개가 치고 선장과 선원 모두 파도 위에서 함께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추긴 변수가 있었다. 아내 주변의 맘들이 첫째를 낳기 무섭게 바로 둘째를 가지고 이듬해 순서표라도 받아둔냥 차례차례 순산하는 터에 아내 마음에 잔뜩 먹구름이 꼈다.

"왜 나만 둘째가 생기지 않는 걸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라, 사람마다 다르다, 난임 부부들도 한번 봐라, 그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내의 귓속엔 하나만 들렸다.


내 둘째는?


찬물을 끼얹는 병원의 '오진'도 한몫했다. 의사가 아내 난자의 나이가 이미 자연수정이 힘든 늙은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진단 내린 것이다. 아내는 그날부터 죽상이 되어서는 핸드폰 이곳저곳을 뒤지며 시험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보 이제 자자 그만." 소리에도 아내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끌 줄 몰랐다.


시험관도 이제 지원금이 많네.
운동 열심히 해 자기.(난 검사로도 멀쩡한데)
그냥 우리 서원이한테 둘째 사랑까지 줄까?
입양은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렸지만 사실 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태평하냐고 타박을 줄 때마다 나는 "생겨. 걱정 마!"로 일관했다. 어떻게 아냐 물으면 간단히 답했다.


감으로 알지.


까마득한 총각 시절, TV 소리 병풍 삼아 아빠와 술 한잔 마시는데 무슨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교육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가 저런다고 애가 말을 듣겠냐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애는 때린다고 마음이 고쳐지지 않아. 말할 때도 절대 욕을 섞으면 안 돼. 알았지?"

"애가 저렇게 기세 등등한데 저걸 오냐오냐 해서 뭐가 되겠어요?"

"아냐. 애는 그렇게 키우는 게 아냐. 특히 아들 낳으면 절대 때리지 마라."

"아참나. 결혼도 안 했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어떻게 알아요?"

"첫째는 아들이야."

"하하하. 아빠가 하느님이에요 그걸 맞추게. 아니 그러다가 딸딸딸 나오면 어떡하려구요?"

"아들이 첫째로 나오게 되어 있어."

"점 봤어요?"

"내가 그런 거 언제 보냐? 그냥 아는 거야."


그냥.


그냥이라는 말이 대충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첫째를 낳고 느꼈다. 아니 그냥. 바람도 아니고 예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내림도 아니고 그냥 어떤 느낌적인 느낌 그런 것.


아내가 서원이를 낳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가 둘째를 가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느꼈다. 원체가 어디 아픈 체질도 아닌지라 병원도 건강검진 외에는 다닌 없었던 데다, 작년 하반기의 폭풍 같은 야근 생활을 마치고 아내는 올봄 쑥쑥 기력을 회복했다. 주말이면 산이며 들이며 놀러 가자 졸랐다.


왔네. 왔어.


임밍아웃 후, 많은 분으로부터 축하의 연락이 닿았다. 특히 둘째를 낳은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과 직장 동료로부터 깨알 같은 이모티콘과 잔잔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아내는 개선장군이 되어 '둘째 맘 모임'의 당당한 멤버로 자리에 입성하여 따발총 같은 수다 타임에 몰입했다. 톡톡톡톡 빛 사이로 막 지나가는 메시지 입력 소리에 우핫핫핫 아내의 흡족함이 배어 있었다.


축하인 듯 축하 아닌 축하 같은 축하를 해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말 끝에 꼭 이 질문을 붙인다는 점이었다.


"근데 말야. 둘째는 계획한거야?"

물론이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사람, 당혹스러워하는 사람, 근심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호 담긴 얼굴을 지어 보였다.

 '대체 그런 계획을 왜..?'

조언인지 조연을 하려는 것인지 조바심을 내는 것인지 당최 모를, 그들은 둘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 펼쳐질 음울한 비디오틀어주었다. '그래도 축하해'라는 자막과 함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우릴 지켜보는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모두 둘째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들에게 우리는, 적어도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두려운 길을 걷는, 그러니까 '그 소문에 의하면 그 동굴에 거대한 용이 사람들 잡아먹는다는데!' 하는, 지옥의 가시덤불 숲을 향해 걷는 가여운 사람이다.


내 주변에 둘째 있는 집은 아무것도 못한다더라, 부부끼리 싸우느라 바쁘더라, 내 생활은 아예 없다더라, 넌 이제 집콕 인생이 펼쳐질 거다, 이거 들은 이야기만 잔뜩 모아서 한 보따리를 안겨주는데 풀어보면 모두 두려움의 택이 붙어 있었다.


그래 맞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겠지. 어쩌면 더 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도 휴일이면 나는 반나절은 아무것도 못 한 채 종일 집 청소를 하고, 평소엔 집에 오면 애랑 놀기 바쁘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분리수거하고, 아이와 목욕 놀이하며 집콕 생활을 한다. 이 생활 앞으로도 계속된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팔뚝만한 몸이 내 품에 감길 때 닿는 황홀경,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갓난아기의 숨소리를 고요히 새겨듣는 클래식, 속싸개 겉싸개에 남은 아기아기 한 그 향내를 기대하는 맑은 .


더 끈끈하게, 아침이면 아내와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 보내고, 우당탕탕 저녁밥 먹이고, 울면 달래주고,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함께 노래 부르고, 같이 블록을 쌓아 올리고, 아이들이 웃으면 나도 한 번 더 안아는 것.


셋째가 와도 두 팔 벌려 안아줄  있는 냥 느껴지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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