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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Oct 30. 2020

나는 아직도 부모님이 고프다.

마흔을 앞두고 남기는 혈육지간의 기록



누구나 집집마다 사연 없는 집은 없습니다. 사연만큼 풀기 힘든 문제들도 많습니다. 피로 섞인 인연은 공식처럼 '일 더하기 일은 이' 같은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품에 안고 사는 것들이 많습니다. 부모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것들이 참 꺼내기 어려운 것들이죠.


글쎄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는 부모님의 생애사에 대해 굉장히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의 삶은 온전히 제가 짊어지고 갈 인생사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은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부지기수이죠. 대부분 유년기, 청소년기의 중요한 선택은 가족과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님이 결정해 주신대로 삽니다. 거기서부터 물음표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대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회사를 포기하셨을까? 엄마는 잘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두셨을까? 부모님도 연세가 드시고 저도 제법 나이를 먹었습니다만, 아직도 이런저런 질문에 부모님은 딱히 명쾌한 답변을 해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들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겠죠. 또는 아직도 말씀해주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구요.


평생 종가의 종손 소리 들어가며 살았습니다만, 정작 저는 양가의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듣지 못했구요. 삼촌들이 저 어릴적에 친할아버지 독립투쟁을 하셨다는 둥, 힘이 장사였다는 둥 영웅담을 들려주곤 했지만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만약 독립투쟁을 그 정도로 하셨다면 해방까지 감옥에서 지내셨거나 그곳에서 순국하셨겠죠. 그렇게 장사으면 아빠가 분명히 저에게 에피소드 하나라도 알려주셨겠죠.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아빠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할아버지를 진득이 겪어보셨던 작은 엄마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제가 강씨 무슨 파 27대손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사실 의문입니다. 27대 직계 종손이면 한 세대를 20세로 쳐도 540년의 역사입니다. 그 정도면 대종이죠. 엄청난 역사가 있거나, 재물이 있거나, 하물며 그에 따른 유물이라도 남아있는 게 정상입니다. 무슨 파를 세우신 분은 참판을 지내셨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확인해본 바로는 저의 6대조 할아버님의 형님께서 장자셨고 형제가 많았으나 정작 그 대의 자손이 모두 끊기고 유일하게 저의 혈육이 되시는 할아버님만이 손을 이어 장남의 장남을 이루셨다는 것은 확인이 됩니다.


제 집안을 제 스스로가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사실은 마땅히 짚고 가는 것이 종손이라는 굴레에 살고 있는 저에게 합당한 것이 아닌가 싶어 이런 글을 씁니다. 족보를 따라 제법 거슬러 올라가도 관직에 오르신 분이 없습니다. 모두 학생부군입니다. 정말 군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사신 것인지,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사셨는지 남은 바가 없습니다. 친가의 남은 유일한 기록은 아빠와 형제, 그리고 저뿐입니다. 친할머니는 손주에게 별 관심이 없으셨던데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공을 들여 남기고 싶은 마음도 딱히 들지 않습니다.


저는 친가보다 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외고모 할머니의 손에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가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제가 강씨면 어떻고 김씨면 어떻습니까. 그저 형식상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죠. 두 분을 통해 제가 직접 겪은 김가의 역사가 있고, 엄마 역시 그 바통을 이어받아 칠십 년의 역사를 써 나아갔으니 당연히 비등한 입장에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엄마는 강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까지 갖추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입장이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집안 문제에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선대의 이야기들은 대개 파편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고 듣고 느낀 내용들에 대한 삼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나름의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회상하다 언젠간 입을 통해 전해졌던 내용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릴 테니까요. 제가 살면서 느낀 바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표현했습니다. 기쁜 것은 기쁜 만큼, 열 받는 것은 열 받은 만큼, 당시의 상황을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감정일 수 있수도 있겠구요. 그러나 팩트에 기초하여 쓴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저는 다른 재주는 없어도 기억력은 매우 좋아서 당시의 상황을 VR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거진 1년 반 동안 썼나 봅니다. 두서 없이 쓴 내용들을 정돈하고 편성하어 스무 편의 브런치북에 담았습니다. 이 회고록은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제 아들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아내, 나의 아빠와 엄마에 대한 단상을 읽고,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나중에 조금이라도 부모자식 간에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이렇게 약  세기 간의 우리 집에 대한 기원을 마칩니다.


앞으로의 글은 예술분야에 더 관심을 두고 써 나아갈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자 강석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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