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유라 Mar 08. 2021

웃음 나는 방풍 피자처럼

눈에 보이는 야채가 다는 아니라서


채소를 마트로 배우면, 마흔이 되어도 처음 보는 채소가 흔한 법이다. 마트가 알려주지 않는 채소는 먹을 수 없는 것이라 믿고, 철마다 반짝하는 제철 채소는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굳이 관심을 두며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핑계를 위해서도 두루 맞겠다. 사계절 만나는 채소의 기본 - 양파, 당근, 배추, 오이, 상추, 시금치, 파 정도? - 에 충실했다. 마트를 신뢰했고, 먹거리를 마트에 일임했다.


지금이야 산나물, 들나물, 바다나물 등 온갖 채소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흔하게 보기 힘든 채소들은 백화점 식품관이나 생활 조합 등의 특정 거래처에서만 볼 수 있었다. (재래시장과 친하지 않았던 나의 시점에선 그랬다.) 총각이 야채를 팔기 시작하면서 생활을 협력해서 살아가는 곳도 나오고, 초록가게도 보이고, 살림한다는 곳도 나오고, 아이가 쿱하는 곳도 나오고 그랬다.


산책길에 냉이가 흐드러졌음에도 그것이 냉이인지 민들레인지 구분조차 어렵던 삶은 반짝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진귀한 제철 채소를 눈앞에 보이지 않게 했다. 어릴 적 아빠가 산에서 해 오곤 하셨던 두릅이, 캐 온 것인지 꺾어 온 것인지 뜯어 온 것인지 모르고 된장에 푹푹 잘도 찍어 먹던 내가, 동네 마트에 두릅 나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단 이유로 잊어버리고 살았다. 찾아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재료 따라먹는 음식이 아닌 요리법에 따른 음식이었으니 먹을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른이 된 후에도 동네 마트엔 두릅이 없었다. 자연스레 두릅은 산촌에서만 먹는 촌스런 음식으로 추억했다. 우연히 백화점 프리미엄 식품관의 일을 의뢰받아하던 어느 날, 자료 수집 차 마주한 채소코너에서, 세 줄기에 만 원하는 두릅나물과 마주쳤다. 알 수 없는 시장의 흐름에 적지 않은 당황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입에 세 줄기씩 먹던 내게 아빠는 대체 얼마어치의 두릅을 해 먹인 걸까. 반짝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제철 채소의 숙명을 당시에는 이해할 길이 없었다.




방풍나물을 처음 본 건 결혼하고도 한 참 지난 어느 날의 시댁에서였다. 봄이 시작되던 때였나 보다. 제철음식이 좋은 건 계절을 기억하게 하고, 계절 따라 나오는 음식들과 추억들을 또렷이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살짝 데쳐 소금과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쳐낸 그것을 아홉 살의 찬이가 오물오물 잘도 씹어먹던 모습이 선명하다. 어린이가 방풍나물 먹는 모습이 신기하다며 모두가 찬이를 신통하게 바라봤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풍을 예방한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방풍나물은 과거에는 주로 약재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요리 식재로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한다. 방풍나물은 황사와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중금속을 해독해 주며, 비염이나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에도 좋으며, 바닷가 모래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특유의 향과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맛을 가지고 있다고. 히야~ 이렇게나 요즘 시국에 찰떡같은 채소라니, 과연 곁에 두고 먹을만하다.



아이가 잘 먹으면 엄마는 반응한다. 아이에게 좋다 하면 엄마는 움직인다. 반사적으로 여쭈었다, 마트에 이런 나물을 파는가고. 동네 마트에 파는지는 잘 모르겠고, 당신은 저기~저 모래사장 옆 절벽가에 많이 있길래 뜯어 왔노라 하셨다. 모래사장이라면 동네 바닷가의 그 모래사장? 그 옆의 절벽? 낭떠러지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25층 높이는 족히 됨직한 그 절벽의 ‘가’에! 자연 그대로 돋아난 나물이라고 했다. 채소를 길에서 배운 어머님과 마트에서 배운 나의 간극은 심히 두터웠다. 나물 보기를 돌 같이 하던 나에게 바닷가에 흔하다는 방풍나물의 자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산책 삼아 찬이 손을 잡고 오르내리던 그 절벽가에 방풍 나물이 있다. 암벽등반가로 분한 어머님 모습이 떠올랐다. 자석 같은 두 손을 철커덕철커덕 암벽에 붙이고 양다리는 엇갈리게 기역자를 그리며 암벽을 밟고 섰다.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에 온 몸을 맡기고 흔들흔들 리듬을 타다가 ‘끙차~’ 소리와 함께 나물을 뜯는 풍경이라니. 어머님의 말씀은 그리 들렸다. 풍을 예방한다 해서 방풍이라지 않은가, 약초라지 않는가. 산에서 나는 산삼과 견줄 포스로 그려지는 방풍나물은 절벽 등반쯤 해줘야 약효가 제대로일 듯했다. 





계절을 음식으로 기억하는 찬이가 마침 방풍나물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과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방풍 향에 작은 아이는 폭소하고, 찬이는 잘 먹었다. 이 계절을 추억하게 할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더 만들어가고 싶다.


할머니의 텃밭을 게을리 보던 엄마는 마흔이 되어서야 방풍을 알았지만, 할머니의 텃밭이 가까운 너희는 바라볼 호기심이 생겨나길 바란다. 오늘 먹었던 피자가 독특한 맛으로 기억되고 작은 관심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설령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보일지라도, 그들이 있기에 우리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천천히 알아가길 바란다.



음식이란 입으로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코로 맡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을 보고, 혀와 이와 목 넘김으로 식감을 느끼는 것이라는 걸 후에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음식의 효능을 보게 되고, 오장육부와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함께 먹는 것임을 알아간다. 그리고 오늘 하나를 더해, 자연을 바라보며 느껴야 할 것은 ‘경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간다. 예사로 걷는 길가에, 좁은 흙을 비집고 돋아나는 것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간다.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그것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함께 순환한다는 걸 깨닫는다면, 함부로 버리고 함부로 대할 이유는 애초에 없을 것이다.




무심코 걷는 길가에 돋아난 이름 모를 채소처럼, 눈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주변에는 참 많다. 장애는 있으나 힘은 없고, 가난은 있으나 친구가 없고, 시간은 있으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 인생에 방풍 같은 약초가 되어줄지 모른다.


알던 채소만 먹고살기에도 바쁜 오늘의 저녁 식탁에, 한 번쯤은 모르고 지나던 채소 하나 추가해 보며 색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도 좋겠다. 방풍나물로 활력을 얻듯 마음을 넓게 만드는 시야는 관심으로부터 넓어지기에, 작은 노력으로 얻는 인생의 맛을 오늘의 식탁 위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마트에 진열된 방풍 나물이 또렷하게 눈에 보인다.







<흔한 피자 만들기 레시피>

1. 강력분 200g, 소금 4g, 설탕 10g, 드라이이스트 4g, 올리브 오일 15g을 섞어 반죽(10분)한다.

2. 반죽에 랩을 씌워 상온에서 1차 발효(40분)한다.
3. 적당한 크기로 분할, 둥글리기, 중간 발효(20분)한다.

4. 용기에 담아 젖은 수건, 랩을 씌워 2차 발효한다.

5. 밀대로 밀어 도우 모양을 만들고, 포크로 구멍을 낸다.

6. 토마토소스, 방풍나물 등 기호에 따라 토핑 한다.

7. 180도 예열된 오븐에 20분간 구워낸다.


*방풍나물을 올릴 때, 방풍 줄기를 최대한 줄이고 잎사귀 위주로 올리면 향에 민감한 아이들도 잘 먹을 정도가 된다.






        

이전 05화 봄동이 배추요, 배추가 봄동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