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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13. 2021

샥슈카, 해먹다가 비로소

내 영혼을 위한 토마토스튜


음식으로 몸을 위로하는 나이가 됐다. 제대로 먹어줘야 굴러가는 몸이 됐다. 날씨 따라 흔들리는 몸체를 갖게 되면 급노화의 길을 걷는다던데, 몸체 부팅이 여간 쉽지가 않다. 영혼을 달래는 닭고기 수프보다 몸을 달래는 바디푸드(헬린이를 위한 푸드 말고;;)가 필요했다. 으슬으슬 비가 오고 꾸물꾸물 빛도 없던 날, 그 게 먹고 싶었다.



지옥에 빠진 계란 두 개. 지옥의 불 구덩. 지옥의 눈깔. 헬 같은 계란. 헬창에겐 계란 두 개. 에그 에그 지옥. 데블스 에그 등으로 불릴 것 같은 음식, 에그인헬이 먹고 싶었다. 편한 말로는 토마토스튜.     



평소에 즐겨먹지 않던 음식이 좋아지면 신상에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던데, 불안한 몸뚱이 달래는 차원에서라도 차려 먹고 싶었다. 무심결에 먹을 적엔 몰랐는데 육신의 에너지가 떨어지니 너의 몸엔 이것이 필요하노라~ 일러주듯 뿅하고 떠올랐다. 몸을 달래줄 푸드는 바로 에그인헬밖엔 없다는 듯 다른 음식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 번 생각 나버린 노란동자 두 개가 지워지지가 않았다. 지오기가 에그 힘드네...랄까...



샥슈카라고도 불린단다. 아니 원래 이름이 그렇단다. 중동 음식인 줄도 몰랐다.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에 가면 흔하게 보이길래 심드렁하게 먹곤 했다. 주식은 하지 않아도 유튜버 슈카는 좋아서 음식도 샥슈카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토마토는 싫어도 불구덩이처럼 변절한 지옥 같은 뜨끈한 토마토 국물 맛은 또 좋아해서 생각이 났다. 몸이 으슬으슬 힘이 없고 매가리가 없을 때 이거 한 국자 먹고 나면 말라죽어가던 필레아페페가 기운차게 살아날듯 개운하고 기운 나고 할 거 같더라.     



에그 에그 인헬을 어뜨카면 먹을 수 있을까.. 에그인헬을 해주는 식당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을씨년스런 날씨 뚫고 나가기는 부담스럽다.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먹고 오자니 오다가 다시 생각날까 두렵다. 배달앱을 켰다. 만들어주는 데가 없으니 배달이 될 리가 없다.



시골 살이에 필요한 건 뭐다? 궁하면 만든다. 리틀 포레스트가 괜히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귀찮고 용기 없는 시골러들을 위한 제일의 동기부여 영화다. 베이글이 먹고프면 반죽 굴려 만들어 먹고, 쿠키 먹고프면 버터 말아 구워 먹는다. 베이글 공장 가동 전력을 살려 만들어 먹기로 했다. 중동의 원천 레시피는 힘들겠지만, 백종원님을 필두로 한 K-요리 레시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떠오르는 대로, 먹고픈 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소파에 가지런히 누워 필요한 재료를 둥실둥실 띄웠다. 큐민 등의 향신료만 빼고 모든 재료가 집에 있다. 월계수잎도 스치긴 했으나 패스. 요리 영상 대여섯 개 정도룰 휘둘러보니 나름의 레시피가 그려졌다. K-요리 만쉐이~



소고기에 소금 후추를 뿌리고 편마늘이랑 볶다가 껍질 벗긴 토마토를 잘게 썰어 볶았다. 양파도 잘게 썰어 같이 끓이다가 한 움큼 끓으면 준비된 야채를 한꺼번에 썰어 넣고 시판 소스 넣고 다시 끓인다. 보글보글 끓는 팬에 계란 두 개를 하나씩 깨어 올리고 모차렐라치즈 올리고 계란이 익을 때까지 뚜껑 덮고 익힌다. 다 익으면 파마산 치즈가루 솔솔 뿌려 고수 한 줄기 정도 넣어 보기 좋은 그릇에 낸다. 고수가 없다면 바질잎도 좋다.



보글보글 빨갛게 읽은 스튜 위에 하얀 계란 두 개가 오붓하다. 뚜껑을 여니 뜨끈한 김이 모락 나고 얼굴에 스팀 한껏 뿌리며 잘 익은 소고기와 토마토향이 어우러져 진한 향을 낸다. 음~ 스멜~부터 힘이 나는 것, 의외로 맛난 것, 보신의 기운이 눈으로부터 전해지는 것. 목구멍이 뜨끈해지고 얼얼했던 몸이 노곤해졌다. 기운 없던 몸을 한껏 덥혀주니 살 것 같단 말이 절로 났다.     



사람이란 신기하지. 몸을 위한 위로의 막을 내리니 마음을 위한 위로가 필요하단다. 저장 되지 않는 매일의 비타민처럼 이제는 허기진 마음을 달래주라 한다.     



샥슈카 해 먹다가 비로소, 이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김혼비가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댔다면, 샥슈카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뭐. 어떤가! 우리나라 전통 음식은 아니더래도 적당히 K-음식화되어 우리 입맛에 맞는 레시피로 생활 깊숙히 들어와있는 샥슈카 같은 글이 쓰고 싶다.



먹을 때는 모르지만 몸 아플 때 먹으면 기운 나는 글, 누구보다 나를 먼저 달래주는 글, 다시 꺼내 보고 싶은 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글, 뻘건 것이 매울 것 같지만 의외의 단백함에 자꾸만 생각나는 글, 보기보다 건강한 글, 영혼을 달래기엔 부족하지만 몸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는 글, 재미 좀 줄래다가 실패한 듯 애처롭고 정이 가는 글, 만들다 자꾸 불어나 나눠먹고 싶은 글, 읽고 보면 의외로 단순한 글.. 샥슈카 같은 글이 쓰고 싶어졌다.



정통은 아니지만, 어디서 구르고 구르다 누군가엔 도움이 되는 글을 말이다. 내 영혼에 토마토스튜 같은 글이 자꾸만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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